나이 많은 남자직원들의 이간질, 모함
오래전에 소녀시대가 보이콧을 당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그때 싫으면 그만이지, 뭔 보이콧까지 하고 난리야?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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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내가 소녀시대가 되었다. 보이콧을 당할 때 나는 20대 중반이었다. 나보다 3살, 4살 이상 많은 남자직원들이 1명 빼고 전부 보이콧을 했다.
처음에는 일하는데 지장이 없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할 일과 그들이 할 일 중에 겹치는 것만 조율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내가 맡긴 일에 대해서 피드백이 없을 때부터 조금씩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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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콧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남자직원 중 한 명이 알려줬기 때문이다. 남자직원들끼리 모여 술을 마신 다음날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나보다 회사에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나를 꼭 선배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나에게 물었다.
선배, 남자직원들이랑 왜 사이가 안 좋아?
왜 이렇게 이간질하지?
질문에 별다른 답을 하지 않은 나에게 그는 남자직원들이 다 모여서 나와 말을 섞지 말라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회사에 일하러 왔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한테 그럴 필요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내 편을 들어주려고 했던 그도 나와 함께 보이콧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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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보이콧을 했지만, 끝난 이유는 간단했다. 보이콧의 주동자였던 A가 결혼할 때 자신과 함께 어울리는 남자직원들보다 내가 축의금을 더 많이 냈기 때문이다.
그 후 A는 달라졌다.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왔고, 나에게 언제든 결혼하면 꼭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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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A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떠났다. 사실 보이콧을 하기 전까지 매우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A가 주동자라고 했을 때 웃음이 났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내적친밀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A는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 그저 그런 사람인지 알아보지 못한 나를 탓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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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회사를 떠날 때 많은 것을 남겼다. 그중 나 때문에 관둔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가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도 많았고, 연차도 나보다 높았다. 하루에 한 번 이상 같이 티타임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 A가 나 때문이라고 했을 때 너무 옹졸하게 느껴졌다. 비겁하다고만 생각했다. 일이 지겹고, 대표가 싫고, 새로운 일을 도전하고 싶다는 이유 대신 나를 방패로 자신은 한껏 좋은 사람처럼 연기하는 가식이 너무 싫었다.
보이콧을 하기 전까지 A는 나와 티타임을 할 때마다 말했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
다른 일을 배워볼까 봐.
늘 이렇게 말했던 A가 관두면서 가장 나이가 어린 여자직원을 타깃으로 '너 때문에 관두는 거'라고 했을 때 나는 A가 비루하게 보였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은 아니구나.
나이가 많다고 나잇값을 하는 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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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한참 동안 자신의 꿈을 좇았지만, 결국 포기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회사를 떠났지만 중간중간 연락이 왔을 때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관뒀지만 회사에서 받아준다면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내비친 적도 많다. 나 때문에 관뒀다고 했던 A는 그렇게 몇 번이고 나에게 다시 회사로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나 때문에 관뒀다면서?
내가 있는데 괜찮겠어?
A에게 물었을 때 다 지난 일이라고 얼버무렸다. 나는 반대했고, A는 돌아오지 못했다.
A가 돌아온 건 내가 회사를 관둔 후다. A가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내가 떠나자마자 A는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매번 회사와 대표를 욕하고 일이 지겹다고 했던 A가 돌아왔다는 것을 들었을 때 코미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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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두는 이유를 말할 때
회사를 관두려고 한다면 그냥 자신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관두기 위한 명분을 찾을 때 남 탓으로 돌리는 것만큼 비겁한 게 있을까. 사람 관계는 늘 힘들다. 회사는 더욱 힘들다.
내편이라고 생각하고 전부를 줬던 사람도 뒤돌아서면 남이다. 모두가 생계를 위해 일할 뿐, 서로의 속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징징거리면서 매일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묵묵하게 일만 하는 사람도 많다. 단지 말하지 않았을 뿐, 그들이 나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라서 아무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연봉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업무가 맞지 않아서,
성장할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관둘 때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관두는 이유가 '그 사람' 때문에 힘들고 버틸 자신이 없을 정도로 정말 최선을 다 했는지, 아니면 '저 사람이 나 싫어해, 나도 싫어 관둘래' 회사를 관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저 사람' 때문이라는 핑계로 관두는 건 아닌지 말이다.
어차피 평생직장은 없다. 회사가 망하거나 싫거나 꿈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어딜 가도 인간관계는 지치고 힘들다. 그때마다 타인을 방패 삼아 관두는 겁쟁이가 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