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어요.
가족 같은 회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어요.
가족 같은 분위기가 무엇일까. 주말 빼고 집에서 씻고, 자고 이 외에 활동은 아침이나 저녁 등이 있겠지만 선택사항이다. 모두가 똑같지 않을 것이다.
주말 외에는 가족 구성원이 매일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티브이를 시청하면서 하하 호호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회사가 가족 같다고?
사랑이나 관심은 집이나 연인관계에서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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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말이 많고 웃음도 많은 유쾌한 나와 3살 차이 나는 남자 직원이었다. 상사 비위를 적당히 맞추는 행동도 많이 했다.
나는 성격이 둥글지 못한 사람이라서 제대로 겪지 않은 사람이 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때 칭찬만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근거 없는 칭찬만 가득한 A와 나는 티키타카가 잘 되는 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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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보다 상급자로 들어갔지만, A가 회사 시스템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어서 많이 도와주려고 했다. 도움이 된 건 없지만, 아재개그로 나를 여러 번 웃게 해 줬다.
이직하고 일주일 정도 흘렀을까. A가 저녁에 술 한잔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된 상태에서 직원과 단둘이 술을 마시는 건 불편해서 거절했지만, 거절을 거절한 A는 기어코 나와 술 약속을 잡았다.
피할 수 없는 저녁 시간, 결국 술을 마셨다.
A는 나보다 술을 잘 마신다고 했다. 그래서 부담이 덜했다. 적어도 취해서 이상한 소리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
A는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나에게 말했다.
팀장님, 사실 저 너무 서운했어요.
왜 오늘 제가 무슨 일 있었는지 안 물어보세요?
다들 걱정하던데...
정말 이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소리인가. 옆에서 같이 웃고 떠들면서 일하고 대화를 나눴는데.. 해괴한 소리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나에게 A는 또다시 말했다.
팀장님, 저 혹시 마음에 안 드세요?
하하하. 웃기만 했다. 아무리 같은 직군으로 옮겨서 업무는 할 줄 안다고 해도 회사에 따라 다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 시스템을 적응하기도 벅찬데 무슨 싫어하고, 좋아하고를 따지겠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A는 말했다.
오늘 전화 때문에 자리를 비운 적도 많고,
표정도 평소보다 좋지 않았는데
왜 팀장님만 물어보지 않나 싶어서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관종인가 싶기도 했고, 가족 같은 분위기의 사람들은 서로 챙겨주고 챙김을 받는구나 싶었다.
나는 정신이 없어서 잘 몰랐다고 사과했다.
사과하면서도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수십 번 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싶기도 했고, 관종과 다르게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단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운함을 이야기하는 A가 이해되지 않았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수시로 체크하면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얼큰하게 술에 취한 A가 원하는 답은 분명 사과였을 것이다. 사과를 하는 게 서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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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서운한 게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도대체 출근 5일 만에 나에게 서운한 게 왜 이렇게 많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지만, 서운하다고 술 마시자고 하는 사람한테 그만하라고 할 수 없어서 어떤 게 서운한지 물었다.
팀장님, 제가 정말 간신처럼 보여요?
지난번에 oo님한테 딸랑거리는 사람 조심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나는 맞다고 했다. 이건 거짓말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라서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오죽하면 왕 옆에서 알랑방구 뀌는 사람을 간신이라고 하겠는가. 왕이 망한 대부분의 이유는 간신 때문이었다.
좋은 아이디어를 좋다고 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내거나 산으로 가는 소리만 하는 상황에서 역시 짝짝짝. 박수를 치고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는 건 정말 아니다.
나는 말했다.
응 맞아. 그런 행동은 간신 같아 보였어.
ooo님이 상급자라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계속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건 별로 같아.
A는 내 대답에 실망한 눈치였지만, 그 후로 조금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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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모든 배우는 착한 주연을 하고 싶지, 주인공을 괴롭히는 못된 빌런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도 많다.
틀린 것을 알려주고 잡아주고 고쳐주기 위해서는 누군가 악역이 되어야 한다.
악역의 역할은 대부분 내 차지였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참고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터져서 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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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은 누구나 하기 쉽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A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나서서 말하지 않았던 건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쳐주는 것보다 입을 다물고 대충 맞춰주는 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만큼 누구도 악역을 원하지 않는다. 듣기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싫은 소리는 상대방과의 관계 때문에 더욱 쉽지 않다.
듣기 싫은 소리라도 한 번쯤은 말해주는 게 상대방을 위한 배려다. 당장 기분이 상할 수 있지만,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방관이다.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배려라고 포장한 자기 합리화일 뿐, 결국 총대를 메고 싶지 않고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