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충성을 바란다.
일만 하기도 바쁜 회사에서 일보다 사람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많은 아이러니함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다.
잘 보이고 싶은 대상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떨면서 비위 맞추는 행동은 나와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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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는 군대 면제를 받았다고 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군대 면제라고 들었다.
한 번은 팀원 중 한 명이 2박 3일 동원훈련을 가야 한다고 전달했을 뿐인데 갑자기 나에게 화를 냈다. 꼭 가야 하는 건지 몇 번을 확인하고 세무사에게 전화했다.
세무사에게 직원이 2박 3일로 동원훈련을 가야 하는데 안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려보려고 했던 것이다.
대표는 세무사에게 말했다.
동원훈련 꼭 가야 하냐?
그거 안 가면 안 되나?
안 가면 불이익을 받게 되나?
군대를 아예 모르는 내가 봐도 국방의 의무는 무조건인데, 그걸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니 너무 신기했다.
세무사는 대표에게 동원훈련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불참 시 병역법에 따라 징역 또는 벌금을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표는 다시 세무사에게 물었다.
2박 3일이나 빠지는데 연차로 대체할 수 있나?
통화하는 동안 함께 있던 나는 대표가 세무사에게 하는 질문을 듣고 헛웃음을 참느냐 매우 힘들었다.
다행히 표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세무사는 연차와 별개라고 친절히 설명해 줬다.
세무사와 통화를 끝낸 뒤 대표는 매우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한 후 말했다.
빠지는 건 안되나 봐요.
보내주세요.
당연한 걸 생색내듯 말하는 모습과 앞에서 그걸 듣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싫었다. 이러한 질문을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코미디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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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는 군대를 면제받았지만, 늘 나에게 충성을 요구했다.
훈련소 외에는 별다른 것도 없었을 거 같은데 말끝마나 군대문화를 강조하면서 나에게 충성하냐고 질문했다.
다른 남자직원들의 행동과 비교하면서 왜 꺾일 줄 모르냐는 말도 여러 번 했다.
군대 문화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웃으면서 말하거나 아예 대답을 피한 나를 대신하여 대표는 자신에게 충성할 직원으로 그녀를 택했다.
A업무 대신 B업무를 위해 돌아온 그녀가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다시 회사로 부른 이유다.
대표는 내가 본인에게 충성하지 않더라도 그녀와 친해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친해지기를 바랐다.
함께 술을 마시고, 티타임을 즐기면서 친목도모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가 불편했던 나는 늘 거절했다.
그녀가 다시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대표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고 전해 들었다.
나와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대표가 아니라면 본인이라도 나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대표에게 호언장담하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했다.
그녀의 노력을 몰라주었던 나는 어떤 친목도모도 하지 않은 채 일만 했다.
정말 일만 했다. 일만 했을 뿐인데 언제부터인가 많은 오해가 쌓였다. 오해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구설수에 시달리는 일이 많아졌다.
심신이 피로하고 충성을 요구하는 대표와의 기싸움에 지쳤다. 결국, 회사에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나는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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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이 강요로 될까?
충성이란 단어 뜻처럼 진정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데 그저 강요만 하면 자동적으로 되는 걸까.
대기업이 아닌 이상 회사에서 대표나 임원과 잘 지내면 편하다. 일보단, 함께 하하 호호 친목도모를 하면서 적당히 비위 맞춰주면 회사 생활은 매우 쉽다.
세상 쉽게 월급루팡이 되는 길을 택하는 이도 분명 있다. 일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우선으로 생각하면서 본인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우월감에 빠져 정치질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친목도모를 하고, 싹트는 전우애로 함께 충성을 맹세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