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이라고 폄하했지만, 분명 실력이었다.

무당도 아니고 감으로 어떻게 일해.

by 한지예

내가 잘하는 건 잘났기 때문,

네가 잘하는 건 운.


내로남불이 심한 사람이 있다.


자신이 잘하는 건 실력이지만, 다른 사람이 잘하는 건 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자신의 실수는 정당하지만, 다른 사람의 실수는 크게 부풀리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매우 피곤하다. 자신에게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한없이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 사람은 애당초 나와 결이 맞지 않아 피하는 편이다.


.

.

.


나보다 4살 많았던 그녀는 말이 많은 포장의 달인이었다. 합리적인 척했지만 강약약강의 표본이었고, 늘 이기적이었다.


말과 행동이 매우 달랐으며, 사내정치에 능숙했다.


사내정치에 관심이 없는 나와 달리 여기저기 끼어들기 좋아하는 그녀와 나는 결이 맞지 않았다.


.

.

.


면접 때 대표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를 면접본 날 대표는 나와 저녁 식사 약속을 잡았다.


함께 식사를 하는 동안 대표는 그녀를 매우 칭찬했다. 매우 기대가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 잘 알려주고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20분 - 30분 남짓한 시간에 사람을 판단하는 대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면접 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좋은 말만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대표와 길게 대화를 나누는 건 피곤하기 때문에 알겠다고만 하고 끝냈다.


.

.

.


회의 때마다 열심히 필기만 하고 어떤 의견도 내지 않는 그녀의 열정 없는 모습을 보면서 대표는 어느 부분에서 기대를 했는지 궁금했다.


오히려 허위경력이 의심될 정도로 어떤 일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

.


그녀는 포장의 달인답게 누구보다 본인을 잘 포장했다. 회의 시간에 나온 의견을 정리했고, 대표와 따로 만나 자신의 의견처럼 떠벌리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료가 한껏 화난 상태로 나에게 말 했을 때 알게 된 사실은 생각보다 놀랍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어필하고 싶다면 뭐.

그냥 그렇게 살라고 해.


애초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기대는 사치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이미 인간관계에 꽤 염증이 생긴 후라서 그랬을까.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그렇게까지 자신을 어필하고 잘 보이기 위해 비위 맞추는 행동을 하는 그녀가 나는 오히려 대단하게 보였다.


.

.

.


자신의 성과처럼 떠벌리고 다닐 때까지만 해도 관심이 없던 때와 달리 나와 나의 팀원들의 성과를 폄하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화가 났다.


한팀장과 팀원들은 다 감으로 하는 거 같아요.

자료 좀 달라고 하면 대부분 그냥 하면 돼요.

그냥 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지?

자료 같은 건 없는데?


무당도 아니고 감과 운에 맡긴다는 말을 들었을 때 웃음이 났다. 감과 운도 실력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싶기도 했고, 그렇게까지 깎아내리고 헐뜯는 말을 하면서 자신을 어필하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 발악을 하는구나 싶었다.


노력을 운이라고 단정 짓는 게 화가 났지만 싸우고 싶지 않았다. 감정싸움을 해봤자 얻을 것도 없고 사과를 받는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애초에 별로였던 사람인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행동하는 모습에 그저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

.

.


내가 관두면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으로 그녀를 택한 대표는 그녀에게 많은 기대를 했고, 공들였지만 결국 그녀는 대표가 원하는 만큼 따라오지 못했다.


내가 관둔 뒤 나의 팀원들이 그녀를 대신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는 더욱 설 곳을 잃었다.


나와 친한 동료 C가 대표와 둘이 회의할 때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해 들었다.


대표는 그녀가 나를 대신할 적임자라고 확신한 만큼 엄청난 능력자라고 생각했다며, 정말 일을 그렇게 못하냐고 C에게 여러 번 되묻고 화를 냈다고 했다.


어쩌면 좋을지 방법을 알려달라며, C에게 오히려 해결방안을 찾아달라고 했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

.

.


결국 그녀는 정리되었다.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지만, 회사를 떠나야 했다.


나와 내 동료들에게 감과 운으로 일한다고 대표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감도 실력도 없는 포장의 달인이었을 뿐이다.


.

.

.


본인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늘 말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정치질을 좋아했고, 호랑이 권세를 빌린 여우처럼 본인이 뭐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고 다녔다.


일은 늘 뒷전이었고, 실력을 쌓는 것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우선으로 했다. 함께 밥을 먹고 커피타임을 즐기고 퇴근 후 술을 마시면서 돈독한 관계를 쌓았지만, 실력이 되지 않고 '운'과 '감'에 의존한다고 폄하했던 이들보다 발전하지 못해 결국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

.

.


말을 아끼고 실력을 쌓자.


회사에서 말이 많은 사람 중에 실력을 갖춘 사람을 겪지 못했다.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데 공 들일뿐이다.


본래 타고난 기질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을 험담하고 깎아내리기 전에 본인부터 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


그런 사람들 말이나 행동에 휘둘릴 필요 없다. 휘둘리면 내 마음만 곪을 뿐이다. 어차피 어딜 가도 그런 부류의 사람은 한두 명씩 꼭 있다.


잘하면 잘할수록 험담하고, 감이나 운이라고 그 사람의 실력을 깍아내리며,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하는 사람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내가 정말 이상한 걸까?

내가 유난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것보다 말을 아끼고 실력으로 보여주는 게 더 현명한 대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동원훈련 연차로 써도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