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에서 참고하라고 보내준 기획안이 내 것이었다.
2025.'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기념' 저작권 공모작입니다. /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새로운 아이템을 론칭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매우 분주하게 보냈다. 어떤 광고를 진행할 것인지 전략을 짜는 일은 A부터 Z까지 어느 것 하나 내손을 타지 않은 게 없었다.
매일 동료들과 아이템 회의를 하고, 타임스케줄을 짜면서 보도자료 배포 및 sns 운영, 랜딩페이지 등의 기획안을 작성했다.
여러 번의 수정 끝에 기획안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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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안이 완성되고 회사 내부에서 회의를 거쳤다. A가 속한 팀 대신 나와 동료들이 함께 주말까지 반납하면서 제작한 최종 기획안이 확정되었다.
거래처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 내부에서 한 번 더 수정을 거쳤고, 이후 거래처에게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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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안을 보내기 전 거래처에서 먼저 나에게 연락이 왔다. 기획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차 연락했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다 완성되었는데 조금 더 다듬어서 보내겠다고 말했다.
거래처 대표님은 나에게 갑자기 pdf 파일 하나를 보냈다. 자신이 받은 기획안인데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알겠다고 하고 기획안을 본 순간 당황스러웠다. 나와 나의 팀원들의 이름만 쏙 빼고 누군가가 자신의 것처럼 pdf 파일로 만들어 이미 거래처 대표에게 보낸 것이다.
나는 물었다.
이거 누구한테 받은 자료인가요?
거래처 대표님은 내가 이렇게 묻자 선뜻 답을 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을 뿐, 누가 보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대표님, pdf 파일 누구한테 전달받은 자료인가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대표님은 내가 재차 물어보자 A에게서 받은 자료라고 말했다.
이후 내게 무슨 일 때문인지 물었고, 나는 알아볼 게 있어서 나중에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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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료들이 함께 만든 기획안이 A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말까지 반납하면서 열정을 쏟아부었던 기획안을 A가 도둑처럼 훔쳐가 본인이 만든 것처럼 어필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웃음이 났다.
원망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동료들에게 고생했다고 칭찬하는 A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저 가증스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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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참고하라고 보낸 기획안이 내가 준비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A는 왜 자신이 한 것처럼 저에게 말한 걸까요?
거래처 대표님이 이런 질문을 했을 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게요.. 제가 더 궁금하네요^^;
거래처 대표님은 회사에서 잘 풀었으면 좋겠다며, 보내준 기획안대로 진행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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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와 대화가 끝난 뒤 나는 한참 고민했다.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할 것인지. 혼자만 알고 침묵할 것인지 생각했다.
말을 하면 열정 뿜뿜 했던 의욕이 전부 상실될 것 같고, 말을 하지 않고 혼자 안고 가자니 답답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일을 진행했고, 결국 나는 동료 B에게만 말했다.
A가 우리 기획안을 먼저 거래서 대표님에게 보내줬어.
우리 이름 전부 빼고, pdf로 자신이 만든 것처럼^^
B는 그 말을 듣고 격렬하게 분노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냐며, 자신에게 고생했다는 칭찬은 왜 한 건지. 이름은 왜 빼고 보냈는지 등 몹시 화를 냈다.
그리고 물었다.
A에게 말했어요?
거래처 대표님이 팀장님한테 자료 보낸 거?
나는 아직 A에게 말하지 않았고,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B는 우리의 창작물을 누군가 악의적으로 도용한 정도가 아니라 훔쳤다는 사실에 분개했고, 대표에게 찾아가 말했다.
대표는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상급자가 공을 가져가는 일이 종종 있다면서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했다고 했다.
어떤 위로 없이 오히려 뻔뻔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응한 대표의 모습에 더 화가 난 B는 식어가는 열정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회사를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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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가 관둔다는 소식을 듣고 A는 내게 물었다. 별다른 이벤트 없이 갑자기 관둔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기획안에 대해 말했고, A는 당황하면서 웃었다. 웃음 뒤 사과는 없었다.
사과하지 않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과를 하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억지로 사과를 받고 싶지 않았고, 본인 마음 편하고자 하는 진심 없는 사과는 오히려 불쾌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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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일 못하고 정치질하는 상사가 밑에 직원의 공을 가로채는 일이 있었을 때 '뭐지?' 싶었는데 막상 경험했을 때 기분은 상당히 더러웠다.
더러웠던 기분과 달리 분노와 화는 쉽게 가라앉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싶었고, 오죽 일을 못하면 다른 사람의 열정을 훔쳤을까. 생각했을 때 A가 애처롭고 가여웠다.
마침표 하나까지도 A의 머릿속에서 나온 건 하나도 없으므로 본인이 한 것처럼 속여도 실력은 숨기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획안을 훔쳐간다고 해도 내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까지 훔칠 수는 없다. 실력이 되지 않아 자신의 동료들이 고생해서 만든 기획안을 훔친 A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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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건 없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억울한 일을 겪을 때마다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면 어느 누구도 회사를 다니기 힘들 것이다.
노력과 열정을 담은 창작물이 타인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면 두 번 다시 열정을 뽐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회사를 다니면 누구나 성과를 내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성과를 냈다.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 결괏값에 도달했다.
홀라당 성과를 가로챈다면 도둑과 다른 게 무엇일까.
1차적으로 내것은 내가 지키는 게 맞다. 소중한 나의 창작물을 다른 사람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지키고 아껴야 한다.
내가 만든 자료가 내 것이라고 당당하게 어필하려면 내가 지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뺏고자 마음먹은 사람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의 양심을 팔아가며, 훔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
영상, 문서, 이미지 등의 결과를 훔쳐도 '창작물에 대한 열정,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깊은 고뇌와 과정'은 훔친 사람의 것이 될 수 없다.
고통이나 노력 없이 얻은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자신의 것처럼 포장해 봤자 결국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자신의 것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창작물로 존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