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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울던 날, 악어의 눈물을 보았다.

위선적인 행동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by 한지예


앞뒤 다른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 앞에서 보여주는 행동과 달리 속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음흉한 사람들이다.


대화를 나눌 때 내 시선에 맞춰 아이컨택을 위해 옆으로 고개를 숙이거나 아예 눈을 피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심하게 빤히 눈을 마주치는 사람도, 반대로 아예 시선을 피하는 사람도 음흉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겉과 속이 하얀 도화지처럼 깨끗하고 투명할 수는 없겠지만,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음흉한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기를 스스로 칭찬하지만, 더 유난스럽고 부담스러운 행동 때문에 나는 피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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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4살 많은 그녀는 강약약강의 표본이었다.


말이 많았고, 늘 변명이 우선이었다. 피해자인 척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관종 같은 그녀가 나는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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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는 팀이 달라서 단둘이 있을 때가 없었다. 특별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지만, 가끔 화장실이나 탕비실에서 마주칠 때면 그녀는 내게 술 한잔하고 싶다고 말했다.


불편한 그녀와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요. 다음에 시간 되면 마셔요.


인사치레를 하면서도 나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그녀와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아 매번 다음을 기약하면서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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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상급자였던 그가 직원들과 돌아가면서 술을 마셨다. 그녀도 포함이었다.


그는 그녀와 술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내게 말했다.


혹시 그녀와 너 사이에 오해가 있으면 풀었으면 좋겠어.

너랑 술 한잔하고 싶다고 하던데,

시간 내서 약속 잡아보면 어떨까?


상급자는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신 후 그녀와 나눴던 대화를 전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말을 하니 그냥 듣고 있던 내게 말했다.


그녀가 많이 울었어.

너랑 친해지고 싶다고 하던데,

마음을 좀 열어보는 건 어때?


상급자는 그녀가 자신의 앞에서 울었다는 것과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하며, 함께 술자리를 가져보라고 계속 권유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계속된 권유인지, 강요인지 모를 압박에 결국 그녀와 술자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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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상급자와 술 마실 때처럼 나와 술을 마시면서도 울었다. 본인 말만 하면서 울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 억울하고 답답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울면서 자신도 예뻐해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저랑 팀도 다르고,

저보다 나이도 많은데 제가.. 예뻐해 줄 수 있나요.

회사에 일하러 오는 건데...


이런 대답에도 그녀는 내게 말했다.


팀장님이 팀원들한테 우리 애들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우리 애들이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한 명씩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팀원들을 우리 애들이라고 하면 다 알아들을 수 있어서라고 했고, 애들이라고 하기에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무슨 소리냐고 말했다.


그녀는 내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몇 번이고 울었다. 울다가 갑자기 그녀는 내게 물었다.


팀장님은 왜 저를 싫어하세요?

왜 안 좋게 생각하세요?


처음에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고 웃었지만, 여러 번 묻는 그녀에게 말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대접받으려고 하는 것.

자꾸 관심을 요구하는 것.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라는 것.


집에서는 모두 귀한 딸이지만, 일하러 온 곳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혼자만 공주대접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 보기 안 좋다고 말했다. 나이가 어린 여자 동료 중 그녀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이 없고, 다들 직책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매번 음식을 전부 세팅한 후에 오거나 동료들이 자신의 자리로 가져다줄 때까지 일하는 척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료들이 내게 그녀만 왜 아무것도 하지 않냐는 말을 여러 번 말할 정도로 늘 공주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녀는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했지만,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대화를 그만하고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나와 달리 할 말이 많았던 그녀 덕분에 나는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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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술자리를 한 뒤 그녀는 행동이 바뀌었다. 그중 하나는 피해자 코스프레였다. 내 앞에서 흘린 눈물처럼 다른 동료들에게 본인의 억울함을 어필하며, 나를 탓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아 풀고 싶은 마음에 함께 술을 마셨지만, 오해는 풀지 못했고 계속 자신을 미워하는 것 같아 답답하고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결국 상급자와 대표까지 나서서 나에게 그녀와 잘 지내보라고 말했다.


당혹스러웠다. 잘 지낼 것도 없이 애초에 마주칠 일은 점심때 빼고 거의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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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와 술을 마신 뒤 대표와 점심을 함께 하면서 내 이야기를 꽤 많이 했다고 전해 들었다.


내가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는 억울한 사연부터 일에 대한 폄하까지 서슴없이 말했고, 대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를 판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구설수에 시달리는 일이 많았고 욕도 먹고, 오해도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었다.


덕분에 화는 나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면서 억울함을 해명하기보다는 무시를 택했다.


마음은 평온했다.


내가 잘났기 때문이지.

내가 일을 잘해서 내게 적이 많나 봐.

원래 잘난 사람일수록 적이 많다고 하잖아.


긍정회로를 돌렸더니 마음속 소용돌이는 빨리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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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코스프레 좀 그만해.



회사에 꼭 한두 명씩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이 있다. 눈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변명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관종처럼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로 타인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그들에게 한마디 하면,


나는 그럴 의도는 없었어.

나는 그럴 의도로 말한 게 아니야.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너무 억울해.


라는 말과 함께 눈물로 그 상황을 모면하는 사람들을 겪을 때마다 너무 피곤하다.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들이 미성숙한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나 스스로 건강한 어른이 되는 것 밖에 없다.


그들의 행동에 날 선 반응보단, 휩쓸리지 않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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