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6시에 받은 진단서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늘 노력한다. 노력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백번 참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행동은 어쩔 수 없는 세대 간의 차이다.
노력하지만 결국, 그들만의 리그에서 어쩔 수 없는 늙어가는 꼰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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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본 고등학생 3명 중 A가 가장 활발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A를 픽했다.
A는 내게 매번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해 말했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고, 잘 모르기 때문에 그녀와 대화가 어색했다.
대화는 잘 통하지 않았지만, 일을 전달했을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름 잘 해냈기 때문에 뽑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
한 달 남짓 다닌 뒤 A는 몸이 아파 2주 동안 입원했다. 퇴원하고 돌아온 다음날 출근했을 때 나는 A를 이해하기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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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하고 돌아온 뒤 A는 말이 너무 많았다. 아픈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산만했고,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였다.
말은 많았지만, 컨디션을 회복하고 회사로 복귀한 뒤 내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라면서 건네준 포토카드, 스티커 등을 주면서 설명할 때만 해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래, 좋아할 수 있지!
삶의 활력소가 있는 건 좋은 일이니까.
어릴 적 팬클럽에 들었던 적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공감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해는 하되, 일은 제대로 하길 원했다. 회사에 A와 같은 또래의 친구 2명이 퇴근할 때까지 일을 끝내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도 '그러려니' 싶었다.
하지만 당연히 퇴근할 거라고 생각하고 애초에 제대로 업무를 끝내지 않았다. 시간이 되었으니 집에 갈 준비를 하는 모습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A야, 퇴근하려고?
거래처에 오늘까지 넘겨야 한다고 했었잖아.
마무리는?
내 말에 A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었다. 당황한 기색이 보여서 잠시 고민했지만, 마무리를 내가 하더라도 어느 정도 끝내고 가는 게 맞지 않겠냐고 물었다.
A는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한숨을 백번도 넘게 쉬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억지로 자리에 앉아 있는 A에게 오늘은 정리하고 퇴근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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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A는 6시에 출근하여 우울증 진단서를 내밀었다. 전날의 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고 한다. 진단서를 받아왔고,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겠다며,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에 갔다.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웃음이 났다. 마치 코미디 같았다. 퇴근 후에 꾸역꾸역 우울증 진단서를 받으러 병원에 간 모습도 재밌었고, 퇴사하고 싶은 핑계로 진단서를 받아온 그녀의 모습에 나는 감동하기도 했다.
전날 퇴근하면서 또래 동료들에게 퇴사할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이해하려고 노력이라 했을 것이다. 정말 극심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하루아침에 우울증이 생겼다면 오히려 내가 미안했을 일이다. 하지만 퇴사하고 싶은 마음에 내민 진단서는 핑계처럼 느껴져 실망스럽기만 했다.
다만, 퇴사를 위한 핑계로 진단서까지 받아온 A의 열정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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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라도 보여야
얼마 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알바를 관두고 싶은데 사장님이 무서워서 말을 하지 못하겠다 내용이었다.
유학을 간다고 해야 할지,
부모님이 아프다고 해야 할지,
조언을 얻고 싶다는 것. 부모님이 우리 아이 대신 퇴사를 말하는 상황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지만, 명확한 이유가 없다면 핑계라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다. 퇴사를 결심했다면 솔직하게 이유를 밝히거나, 하다못해 진중한 모습이라도 보이는 게 맞지 않을까.
예전에 '내가 소중해'라고 말하고 관둔 사람이 있었다. 타인보다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게 맞지만,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책임감 없는 행동을 볼 때면 점점 팍팍하기만 하다.
A를 보며 생각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고,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방식이 너무 성의 없게 느껴졌다. 그저 상황이나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가 불편하기만 했다.
하지만 퇴사를 결심한 A도 내면에서 깊은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고 싶은 마음으로 한 행동과 퇴사를 고민하면서 느낀 피로감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그녀가 조금만 더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면 나는 더 공감했을 것이다.
회사를 관둘 때 조금의 배려는 보였으면 좋겠다. 상사나 회사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이 떠나는 자리를 채워야 할 누군가를 생각한다면 책임감이 생기지 않을까.
누구나 퇴사를 원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퇴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을 얼마나 진지하게 마무리했는지가 중요하며, 다시는 볼 일 없다고 해도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게 현실이다. 다른 이를 생각해서 퇴사할 때 조금의 배려가 있다면 어떨까.
어차피 우리 모두는 일개 직장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