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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시니 Dec 06. 2020

# 1. 커피는 원두만 좋으면 장땡이지




나는 자세가 꽤 나쁜 편이다. 나쁜 자세의 불편한 점은 근육통이다. 하지만 입사를 하고 난 뒤 내 좋지 않은 자세는 나의 몇 부분의 근육에 뿐만 아니라 상사에게도 불편한 것이었다. 자세로 인해 위엄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상사 한 명은 ‘어깨를 펴라.’ ‘똑바로 서라.’ 등 여러 말로 나의 자세를 지적했고, 직접 어깨를 펴주기도 했다. 그 상사는 자세에 이어 표정에 대해 지적했다. 의도적으로 거울을 주변에 설치하여 좀 더 걸맞은 자세와 표정을 익힐 것을 요구했다.


많은 사람은 ‘나’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 그중에서도 직업으로 설명한다. 직업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은 가치 있게 생각하는 요소, 능력, 전문성 등 다양한 ‘나’를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 많은 역할이 부여되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역할에 나를 맞추게 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내가 선택한 회사에서 그리고 사회에게서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관련한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나름의 역량을 키워갔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역량뿐만 아니라 걸맞은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자세는 대부분 외모, 모양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사실 나는 맛 좋은 커피가 비싸고 유명한 컵에 담기는 것과 내 부엌 찬장의 컵에 담기는 것에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커피 맛을 높이는 것에 중점을 좀 더 두는 편이다. 같은 이유로 난 자세에 대해 이 자세를 오랜 시간 유지했을 때 스스로 느껴지는 아픔에 대한 불편감 이상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타인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사춘기와 졸업하며 나에 대한 가치는 외부의 모습이 아닌 내면의 모습, 개인 역량으로 평가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집중하고 가치를 높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과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할과 모습에 맞추어야 하는 것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좋은 안목으로 컵을 고르는 것이 나에게는 특별히 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속해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하던 당시엔 내가 조직에 맞지 않는 것 같고, 부족한 내 모습이 확대되어 보였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잘하지 못 하는 일을 보완하는 과정은 나를 좀 더 단단하게, 이 회사에 맞게 만들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꾸준히 성장하던 나의 내면도 성장을 멈추고, 못 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스스로 더욱 무능력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첫 사회생활에서 나와 회사 사이 견해차에서 현명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합의점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주변의 평가나 조언에 귀를 닫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를 성장하는 일을 밀어붙였다고 해도 사회초년생인 나는 건강한 심리관리가 어려웠을 것이다. 모두가 no를 외치는데 꿋꿋이 yes를 외쳐 다른 사람과 부딪혀지는 부분에 다치지 않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선택한 방법, 회사에서 요구하는 데로 모양을 갖추고 가치의 방점을 바꾸는 일 또한 건강한 방법이 아니었다. ‘이 건 나답지 않아. 그런데 나다운 게 뭐였지?’라는 생각을 매일, 매 순간 하며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문제에 열중했던 때보다 한 발짝 떨어져 볼 때 더 현명한 답을 찾기 마련이다. 회사생활이 생활하는 시간 16시간 중 8시간에서 10시간의 비중을 차지하던 때보다 퇴사를 한 지금 그때의 나와 상황을 돌아보았을 때 현명한 방법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회사의 요구를 무시하며 마이웨이를 걷는 것을 선택하는 것, 회사의 평가와 요구에 먼저 반응하는 것, 그 둘 사이 어디쯤의 태도를 갖는 것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의 경험을 돌아보며 조금 바뀐 나의 삶의 태도는 커피는 잔에 따라 미묘하게 맛이 바뀐다는 것이다. 좋은 커피잔을 알아보는 안목을 다른 것을 포기하면서 키울 필요는 없지만 미묘한 맛의 차이를 예민하게 눈치채고 그 미묘함을 일궈낸 동료의 노력을 알아주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잘 못 하는 일이기에 커피는 담기는 잔보다는 맛이 더 중요하다며 잔과 분위기의 중요성을 무시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못하는 것을 불필요하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하는 다른 사람의 능력을 인정하고 협업하는 것 그것이 진짜 필요한 자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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