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뒤에 숨겨진 진짜 문제는 뭘까?
내가 이전에 다니던 회사는 현재 인원 대비 80%에 가까운 입사율과 60%에 가까운 퇴사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 수치가 말하고 있는 메시지는 “도망가길 잘했어.”이다. 나의 퇴사 과정은 ‘도망’이라는 단어가 아주 적합했다.
이전 회사는 입찰받은 프로젝트 업무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회사였기 때문에 팀 또는 사원 개인에게 적절하게 프로젝트 담당을 배정하여 운영하는 구조였다. 내가 담당하던 프로젝트가 항상 있었고, 회사에서는 나가는 사람들의 뒤통수에 항상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일찍이 퇴사를 고려했지만, 선뜻 그만둘 수 없었다. COVID-19로 인해 대한민국의 경제와 여러 활동이 어려워지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회사의 입찰 계약에도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해를 계획하며 세웠던 프로젝트들이 엎어지고 내가 담당했던 프로젝트도 엎어진 프로젝트에 속해있었다. 처음 며칠 간은 바쁘지 않은 일상에 적응했다. 적응을 마치고 당시 현재를 돌아보니 지금이 퇴사 적기라는 생각이 들어 팀장에게 퇴사와 관련한 업무 상담을 요청했다. 그렇게 추노가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나의 퇴사 의사를 반려한 것이다. 하지만 짧은 고민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나의 인생을 위해 강력하게 퇴사를 주장했고 퇴사 의사를 밝히고도 일주일이 걸려 퇴사를 했다.
대학원 진학에 낙방하고 취직을 위해 많은 기업을 알아보던 과정에서 내가 본 현실은 암담했다. 아동 청소년을 향한 꿈을 가지고 입학했던 학교에서 즐겁게 배우던 학문은 사회에서 가치보다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기업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사이트를 통해 내가 지원을 목표로 하는 회사의 대부분은 입사율보다 퇴사율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이전에 다니던 회사를 알게 되었다. 나는 회사의 신념과 대한민국 미래를 보는 비전이 오랫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해 입사를 결심했다. 이곳에서 일하면 많은 것을 배우고 내가 꿈으로만 간직했던 일들을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 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마지막은 추노였다. 오랜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이 도망치길 잘했다는 믿음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이전 회사의 첫 신입사원이었다. 첫 신입사원이 도망치기를 결심하는데 걸린 시간 동안 이전 나의 회사는 서두에 이야기한 퇴사율이 입사율보다 높은 회사가 되었다.
첫 신입사원 입사 후 2년여 시간 동안 10명이 넘는 사원이 입사와 퇴사를 했다. 내가 퇴사하기 직전 회사 인원이 13명인 것을 생각했을 때 적은 비율이 아니다. 이 인원이 나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을 때 생각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을 갈수록 퇴사를 결정하는 원인은 회사를 분명히 향해 있었고, ‘탈출’을 목표로 한 퇴사자들이 늘었다.
무엇이 추노를 만드는 것일까?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인력 교체를 겪으며 회사 또한 배운 것이 있었다. ‘사원은 믿으면 안 된다.’라는 것. 사원에게 믿고 맡겼던 일들에 불필요한 작업과 보고체계가 생겼다. 업무자 입장에서 회사가 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처사였기 때문에 내 프로젝트라는 사명감에 ‘잘한’ 프로젝트보다는 보고하기에 무리가 없는 ‘예쁜’ 프로젝트로 목적이 변하게 되었다. 점점 업무에 흥미와 열정이 식기 시작하며 ‘정말 이곳이 나의 오랜 꿈을 이뤄줄 곳인가?’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답이 없는 논의는 무의미한 일이다. 원인과 결과가 서로 얽혀있는 문제에서 원인을 하나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퇴사하는 것은 회사가 문제인가? 개인이 문제인가?’ 하는 명제 또한 무의미하다. 답이 없는 논의이며, 결국 문제의 원인을 하나로 정해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논의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경우 회사는 퇴사자를 비난하며 개인의 특이점 때문에 떠났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결국 ‘왜 사람들이 자꾸 나가는가?’ 하는 논의에 있어 순환구조를 읽지 못하고 퇴사자 개개인의 탓을 하기만 한 것이다.
회사는 1년 미만 근무자의 퇴사는 개인의 불성실함으로 치부해버렸고, 1년 이상 근무자의 퇴사는 무책임함의 결과라며 비난했다. 퇴사자의 입장에서는 연봉, 복지, 개인의 비전 혹은 워라밸이라 하는 개인 생활, 어떤 것도 보장받을 수 없는 스타트업, 중소기업에 입사한 목적은 더 큰 목표를 위한 단계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면접에서 알 수 없었던 사내 분위기, 자세한 복지 내용, 일하면서 유지할 수 있는 사생활의 정도를 파악하여 열악한 상황을 이유로 그만뒀다. 또는 사내 정치와 작은 괴롭힘이 원인이 되기도 했다. 회사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가기 때문에 사원을 신뢰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이유로 또 다른 사람들이 나갔다. 다시 회사는 역시 사원은 믿을 수 없다며 그 입장을 공고히 했다.
나에게 회사가 물질적으로 혹은 인생에 어떤 것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업무에서 얻는 성취감을 주고, 그 과정에서 얻는 회사와 나의 끈끈함이 더해졌다면 이곳이 내가 경력을 쌓을 곳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 그 마음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만 ‘내’ 일이라 생각하고 더 잘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떠난다면(개인적으로 혹은 사주 입장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 안에 숨어져 있는 순환구조를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