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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Jan 04. 2022

언론이 '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미리 말하자면 나는 현대의 뉴스가 가지게 된 형태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현대의 뉴스란 단지 신문활자나 앵커의 목소리로만 전달되지 않고, 온갖 종류의 SNS와 함정 같은 전광판, 유튜브 썸네일과 카카오톡 링크를 통해 시도 때도 없이 우리의 눈을 비집고 들어온다.


어디 이름 모를 산기슭으로 들어가 살지 않는 이상에야 이런 뉴스의 폭격을 피할 방도는 없다. 한때 뉴스는 책임 있는 시민의 필수 교양이었지만, 오늘날 그들의 입지는 '레기'까지 추락하고 만다.


언뜻 보면 융단폭격에 비견될 만한 정보(뉴스)의 양적 비대화와 그들의 입지 추락은 그다지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위 두 가지 요소는 서로 긴밀하게 연동된 현상이다.


사람들은 흔히 가짜 뉴스, 편파보도, 과도한 상업성과 도덕성 결여가 언론을 망쳤다고 생각한다. 일면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오늘날 뉴스가 대면한 진짜 문제에 비하면 그런 일종의 '일탈'은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특정 언론사, 언론인, 업계 종사자의 부패 혹은 편파라면 언제나 있어왔다. 아니, 애초에 신문이라는 것이 정파지(政派紙)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론이라는 것의 모태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뉴스가 '객관적인 정보전달'을 사명으로 여기고 있으나, 그것은 구조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그들이 존경과 존중을 잃은 것은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고, 좀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의 사건인 것이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그것은 뉴스의 역할과 실제 현재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흔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려면,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의 진행방향에 대해 눈 뜨고 있으려면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에 오감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누군가


"저는 뉴스를 안 봐요. 전혀요"


라고 얘기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우매하거나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꽤나 있을 것이다. 또는 정치적으로, 혹은 이슈적으로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는 언론사의 뉴스에 분통을 터뜨리며


"저것 봐. 이래서 안 되는 거야.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야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은 오늘날의 뉴스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작업에 있어서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난 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영위할 시절에, TV나 전화 따위는 있지도 않을 그런 시간들 속에서 신문은 일종의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이자 바깥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창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수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턱이 없었고, 그들의 삶이 펼쳐지는 주 무대는 반경 10KM 이내의 마을이었다.


그때의 언론은 말 그대로 닿을 수 없는 세상과 접촉하는 매개체였다. 한번 제작되고 전달되는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따라서 정말 알아야 하는 소식만 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뉴스는 셀 수도 없는 많은 일들을 바다 같이 쏟아내며 수용자들을 익사시킨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다. 기사의 제작과 유통은 기껏 해봐야 타이핑 몇 번과 클릭 몇 번이면 끝이다. 언론사는 난립하여 무한경쟁으로 돌입했고, 이제 그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새로운 소식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며, 필연적으로 기사는 감량에 감량을 거듭한다. 끝끝내는 굵직한 고딕체로 타이핑된 열 글자 남짓한 헤드라인만 남는다.


자,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을까?


이제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창은 열 글자의 단문뿐이게 된 것이다. 이 시대의 기자들이 모두 이태백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는 실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절대 보여줄 수 없다. 뉴스의 시청자들이 보게 된 건 벌어졌던 일의 손톱 끝 정도가 돼버린 것이다.


어느 정치인의 실언, 어느 유명인의 불륜, 누군가의 범죄,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살인, 그중에서도 가장 자극적인 한 장면만을 우리는 본다. 그리고 그 사안에 대한 모든 판단을 끝마쳐버린다. 실언을 하기 전까지 그 정치인이 펼쳐온 공약과 정책이 무엇인지, 어느 셀럽이 불륜장면을 파파라치에게 찍히기 전까지 얼마나 오랜 기간 극악한 결혼생활과 이혼소송을 거쳤는지, 과연 아프리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그곳엔 어떤 사람이 사는 건지 수용자들은 모른다.


10cm짜리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깨어있는 눈뜬 시민이라고 자축하고 만족한다. 이것이 오늘날 뉴스 시대 비극의 전말이다. 더 이상 뉴스는 세상과 접촉하는 매개체가 될 수 없고, 그저 괜히 진지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적 스트레스를 10글자 남짓한 헤드라인에 꾸역 구역 쏟아부으며 드라마틱한 해소 효과를 여실히 만끽하면 그만인 것이다.


현대의 뉴스 속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의 유기적이고 서사적인, 그리고 긴 호흡을 가진 스토리 속에서 살아 숨 쉰다. 당신이라는 사람이 있기 위해서 당신이 작은 아기였을 시절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본다면- 오늘 오전에 있었던 작은 사건은 단독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 컷으로 이루어진 짤막한 장면 속에서는 진짜 그곳에서 벌어진 일은 있을 수 없고, 그저 수용자의 편견만이 있을 수 있다. 뭐랄까, 제 멋대로의 의미부여를 동반한-


"운전기사, 고용주를 돌연 살해한 후 도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헤드라인식 해석이다. 이런 식으로는 영화 속에 담긴 이야기와 접촉할 수 없다. 하나의 자극적인 컷만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 사건 속에 담지된 사회적 간극과 빈부, 인격말살의 드라마는 끊임없는 압축과 감량, 생략 속으로 사라지고 하나의 강렬한 장면만 남은 것이다.


'신속, 정확, 공정'한 소식 전달은 있을 수 없다. 신속하려면 정확할 수 없고, 의도적인 편집이 들어가는 이상 공정할 수는 더더욱 없다. 물론 난 우리 사회의 저널리스트들이 대부분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직무를 대하고 있다고 믿는다. 뉴스 속에서의 세상과는 다르게, 실제 세상에서는 악당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문제들은 단지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서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전형적인 헤드라인 식 사고인 것이다.


뉴스가 세상과 진정으로 접촉하는 매개체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변해야 할 건 일반적인 소비자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더라도 사실은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극소수의 정치인, 재벌, 언론인 때문에 생겨나지 않는다. 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건 평범하고 일반적인 시민들인 것이다.


수용자들이, 소비자들이 뉴스의 변화를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절대 변할 수 없다. 우리가 계속해서 10글자로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인격체를 대상으로 비현실적인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며, 한 장의 사진으로 정책을 지지 혹은 비난하고, 무엇보다 몇 초동안 휴대폰(TV)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 만으로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역할을 다 했다고 믿는다면,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고, 책임감을 느끼며, 함부로 말을 내뱉고 행동하기 전에 충분한 심사숙고와 사유를 거치기 위한 자료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사건의 '진짜' 원인과 재발방지를 원한다면, 몇 센티짜리 스마트폰 스크린과 10글자 남짓한 단문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과 접촉하기를 원한다면, 뉴스는 비로소 접촉의 매개체라는 저 자신의 본연의 역할을 회복할 것이다.


물론 그때가 되면 뉴스는 오늘날의 형태와는 많이 달라, 여느 철학과 과학과 문학과 형태를 구분하기 쉽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그들은 '레기'로 불리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뉴스를 얼마나 많이 보는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를 읽더라도 그것을 얼마나 어떻게 씹어 소화시키느냐를 배워야 할 때가, 비로소 왔다.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된다는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데 있다. _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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