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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Jan 30. 2022

청춘의 책들

나에게는 어릿한 이미지로만 남은 어린 날의 한 장면이 있다. 그 위로 최신의 기억이 층층이 퇴적된 탓에 이제는 꼭꼭 숨어버린 시절이 되었지만,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순간 난파선처럼 떠오르는 그런 기억이.


그때 나는 듬성듬성 여드름이 핀 소심한 아이였다. 대개 학교가 끝나면 내 방에 딸린 작은 베란다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놓여진 작은 낚시의자- 그곳은 사춘기 소년의 작은 피난처였다. 그 옆에는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쌓여있곤 했다. 


주로 일본 소설들- 이를테면 온다 리쿠, 오쿠다 히데오, 요시모토 바나나, 미야베 미유키, 청구기호 833.6 온.

주변 사람들의 전화번호, 생일, 약속, 이런 것은 일체 기억하지 못하는(심각할 정도로) 나 임에도 온다 리쿠의 책이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만은 또렷하다.


곳곳에 노란 페인트가 까져 맨살을 드러낸 낡은 시립도서관. 문을 열면 잠시간의 대리석 바닥, 왼쪽으로 틀어서 유리문을 열면 훅 끼쳐오는 온풍기 바람과 함께 높다란 서가들이 줄지어 섰고, 정면에서 몇 걸음 오른쪽으로 가면 이문열, 이청준, 임철우가 있었고 서가 끝 쪽 통로에서 몇 칸 건너가면 온다 리쿠가 있었다.


「밤의 피크닉」과 「유지니아」가 있었다. 이따금씩 그 책들이 떠오를 때면 힘이 탁 빠져버린다. 정체모를 감상에 벅찬다고 해야 할까. 온다 리쿠에 대한 일종의 스키마(schema)- 나에게는 그런 것이 있었다.


물론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책들, 그 도서관, 서가들, 베란다, 그것들을 품었던 한때의 시절에 대한 스키마라고 해야겠다.


사춘기의 내 세상은 집, 혹은 학교, 혹은 친구들에 있지 못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정신이 산란해버리고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은 상태가 돼버렸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그냥'이라고 밖에 말해질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다. 찬바람이 불어대는 한겨울에도 좀처럼 베란다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꾸물거리는 활자들은 생동했고 확장했고 편안했다. 터질듯이 불안하고 겁나는 이곳 말고 다른 세상이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소년에게는 더 없는 위로가 됐나 보다. 


언어가 창조한 어떤 세상- 그곳은 일종의 낙원의 섬이자 유배지였고 구원이자 마취제였다. 이곳은 온전하고 자기완성적이고, 안온하며 편안했다. 따뜻하게 드는 볕과 몽롱하고 나이브한 느낌- 그 모종의 알콜 혹은 모르핀적인 감각. 


나의 사춘기는 온통 활자들로 등치 됐고 학교와 친구, 집과 교복 같은 것들은 도서관의 서가 속으로 묻혀 사라졌다.


물론 영원히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몽상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순간- 이를테면 잠들기 전의 불 꺼진 방- 과 대면할 때면 엄습하는 불안과 고동이 입김을 훅 끼치며 속삭여대곤 했던 것이다.


"너에게서는 악취가 나. 너의 책들과는 다르게."


결정타는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차고 짠 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 약병을 던졌던 이문열의 젊은 날이 자꾸 생각나서였을까. 어느 겨울이 왔을 때 난 여느 아이들과는 다르게 동네 고등학교가 아닌 어느 시골의 외진 기숙학교로 떠났다. 어린 주제에 활자 대신 술과 담배를 배웠다. 부끄럽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그때서야 나는 책을 손에서 놓게 됐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10년이 지난 한 날, 온다 리쿠와 오쿠다 히데오가, 다자이와 이문열이 없는 시간이 지나던 때 문득, 이름 없는 무인도에 내버려진 난파선 같이 「밤의 피크닉」이 떠오른 밤이 있었다. 작은 베란다에 놓여있던 조악한 낚시의자가 편안하게 내 몸을 감싸던 감각이, 두개골 안쪽 구석진 곳에 유배된 뉴런 하나가 가지고 있던 감각 기억이 툭 꺼내졌다.


포털 로드뷰로 어릴 적 드나들던 도서관을 찾아보고 싶었다. 내 모든 고통과 불안과 도피와 악취가 잠겨있는 사춘기의 작은 바다, 000부터 999까지, 철학부터 역사까지,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품은 서가들이 잠시간에 그리웠달까.


그러나 널찍하나 투박한 주차장에 둘러싸인, 거짓말 좀 보태서 반쯤은 칠이 벗겨진 건물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통창으로 구획된 4층짜리 신축 도서관이 들어서있었다. 나도 모르던 어느 새에 도서관은 뽑혀 올려졌고 또 사라졌다.


그곳에서 청구기호 833.6의 서가는 어디쯤 놓여있을지 전혀 모를 일이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남쪽으로 튀어」,「이코」- 때때로는 이문열과 이청준, 다자이 오사무 그리고 이제는 작가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파편화된 흐리멍덩한 이미지로 남은 셀 수 없는 이야기들. 그것들은 각각의 개체로 기억되지 못한 채 하나의 군집으로 뒤섞였고, 어린 날이라는 안개 같은 추상으로 피고 사라진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참으로 시간이라는 '것'은 묘하다. 대단히 본질적인 것 같으면서도 실체가 없고, 너무나 당위적인 동시에 가변적이다. 시간은 때때로 공간으로, 촉감으로, 냄새와 습도로 물화(物化)하고 다가서고, 또 아득하게 사라진다.


이따금은 그립고, 구구절절 아팠던 나의 사춘기는, 온다 리쿠와 이문열과- 800번대 서가의 모습으로 물화했고, 활자의 물성(物性) 속으로 스민 시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면 만족할 따름이다.


문득 그것들에,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작은 방의 볕 잘 드는 베란다, 조악한 낚시의자, 그 옆에 쌓인 내 청춘의 책들. 내 도피처, 유배지, 아편이자 무인도. 


모두에게 깊이 머리 숙이며 되뇐다.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웠다고. 정말이지 힘들었던 그 시절 너희들 덕에 견뎠고 자랐고 지났다고.


그러니 너희들도 많은 새로운 기억과 사건과 시간들에 파묻힌 그 곳에서 안온한 잠에 들어도 된다고.


부디, 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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