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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Jan 23. 2021

F=ma라는 알고리즘,
「데브스」

알렉스 가랜드, <Devs>

<데브스>는 감독의 철학적인 야망이 상당히 많이 녹아들어간 작품이다.


흔히 이 같이 미래 기술을 다루는 SF류의 작품들은 기술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을 시도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물군상에 대한 일종의 흑백논리를 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데브스>의 경우 결이 조금 다르다. 


최첨단 테크기업인 '어마야'에서 개발하고자 했던 것은 극강의 성능을 자랑하는 양자 컴퓨터로, 어마야의 대표인 포리스트는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역학의 신봉자이다. 그가 믿는 세상은 인과론이자 결정론의 세계다. 


고전역학에서의 사건은 합당한 원인이 있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는 원인이 있다. 비유하자면 당구 같은 것이다. 큐대로 당구공을 치는 것이 원인이고, 그 당구공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된다. 이런 인과론의 세계에서는 원인을 알고 있다면 결과를 알 수있다. 


몇번 공을 어떤 각도로 어느 정도 위력으로 때리면 그 결과를 예측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언뜻 생각하기에 쉽지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인다. 우리가 경험하는, 적어도 경험했다고 인식 할 수 있는 물리세계는 고전역학에 의해서 기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현재의 상태, 즉 분자 단위의 모든 정보값만 알 수있다면 우리는 과거든 미래든 모두 볼 수 있다. 원래 우주적 단위에서 시간에는 방향이 없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과연 실존하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 하지 않아도, 시간에 방향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높은 곳에서 공을 떨어뜨리고 땅에 닿기전에 사진을 찍는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진만 보면 공이 떨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튕겨오르고 있는 건지 구분할 수 없다. 포리스트와 데브스가 만든 양자컴퓨터는 현재에 대한 정보값만 입력한다면 가공할 성능으로 모든 분자들의 운동을 계산할 수 있다.


한마디로 과거든 미래든 모두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것이다(실제 현재 우리의 수준에서도 선충 같이 극단적으로 단순한 형태를 가진 생물의 경우 어느정도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극 중에서 초반부의 데브스는 미흡한 성능으로나마 먼 과거 예수님의 형상을 시뮬레이션 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심한 노이즈가 생겨 정확한 형태를 분간하기는 힘든 정도 수준이었는데, 후에 데브스의 멤버 린던이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에버랫 해석'을 알고리즘에 포함시키자 아주 선명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게 된다. 아마 여기서 부터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이야기의 진행을 따라가기 힘들어 했을 것이다. 모두가 린던의 성과를 축하하는 와중에 포리스트는 화를 내며 린던을 해고한다. 


"너는 우리의 규칙을 지키지 않았어" 


그의 분노에 대한 설명은 이 한마디가 전부였다. 포리스트는 왜 화를 냈을까?


포리스트가 소유한 테크기업의 이름은 '어마야'. 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의 딸의 이름이다. 또 회사 캠퍼스의 중앙에는 아이의 모습을 한 거대한 동상이 있다. 포리스트가 데브스에 집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천문학적인 돈에도, 대단한 명예에도 관심이 없다. 오직 데브스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 양자컴퓨터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자신의 딸을 되살리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여기서 말하는 되살린다는 의미는 보통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이 사실을 알고 보면 포리스트가 린던에게 화를 냈던 이유가 설명될 수 있다. '에버랫 해석'은 양자역학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에 하나이다. 이중 슬릿 실험 같은 고전 역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일련의 '사실' 들에 대한 가능한 이론 중 하나로써, 말하자면 에버랫 해석의 경우 요즈음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차용됐던 다중우주 이론의 근거인 것으로 알고 있다.


분자단위의 모든 가능한 선택마다 분열된 각자 다른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에버랫 해석에 따르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각자 다른 우주에서 살아있기도하고 죽어있기도 하다. 포리스트에게 있어서는 이 에버랫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죄책감 때문이다. 포리스트는 교통사고가 나는 그 때 운전자이던 와이프에게 전화를 했었던 자신의 행동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만약에 세상이 인과론적이고 결정론 적인 성격을 가졌다면, 그런 그의 행동 역시 책임소재가 없어지게 된다.


모든 일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있으므로, 그 행위를 수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원인 소재가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세르게이의 스파이 행위가 발각됐을때 세르게이에게 '세상이 인과론적이라는 것은 용서라는 의미'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봤을 때, 비교적 노골적이게 들어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어마야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작중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맥락적으로 봤을때 다중우주 이론이 데브스의 알고리즘에 포함되었다면, 데브스가 시뮬레이팅 하는 특정 시점의 우주는 수많은 다중우주의 하나가 된다. 


즉 수많은 어마야중 한명일뿐, 정확히 한 시점에서 포리스트가 기억하는 '그' 시점에서의 어마야가 아니다. 머리카락 하나까지 정확하게 시뮬레이팅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그 라면, 충분히 에버랫 해석을 거부할만 하다. 


결국 <데브스>의 이야기는 자유의지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건이 향하는 하나의 지점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포리스트에게는 위에서 이야기했던 이유로 자유의지란 없어야하고, 또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릴리에게 있어서는 자유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르게이와 여타 다른 주변사람들의 죽음에 책임이라는 것을 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에 존재에 대한 해묵은 논쟁은 뒤로 하고서, <데브스>의 이야기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이 될까.


수많은 사건들을 겪은 후 결국 릴리는 데브스로 향하게 된다. 모두 예정된 수순이었다. 데브스에서 릴리를 기다리던 포리스트는 릴리에게 양자컴퓨터가 시뮬레이팅한 미래를 보여준다. 릴리가 권총으로 포리스트를 쏘게 되고 결국 그들은 둘 다 죽게되는 미래를. 짐깐의 시간이 지나고 릴리가 포리스트를 쏘아야할 순간이 됐을때, 릴리는 결국 권총을 던져버린다.


 어안이 벙벙해진 포리스트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이 상황을 지켜보던 데브스의 다른 멤버가 시뮬레이팅에는 없었던 일을 하게 되고, 그 결과 릴리와 포리스트는 죽게 된다.  결국 시뮬레이션에는 없었던 일이 벌어졌으므로 자유의지가 긍정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데브스>에서 감독의 태도는 조금 모호하다.


데브스의 시뮬레이션은 특정한 시점(릴리의 데브스 침입) 이전까지는 완벽하게 작동하다 그 시점 이후로는 작동하지않는다. 또 총을 던진 릴리의 행동에도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릴리가 데브스에 침입한 이전 시점까지는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시점 이후부터는 자유의지가 생겨났다는 뜻이된다. 


이는 연출적인 구멍일 수도 있지만, 릴리를 자유의지의 표상으로 생각한다면 이해가능한 부분이다. 시종일관 투쟁적이고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인 릴리. 그녀의 이름은 페미니즘 운동에서의 상징적인 존재인 '릴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고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인 하와 이전에 존재했던 여성으로써 상당히 도전적인 행동양식을 가진 인물이다. 데우스(데브스의 양자컴퓨터 시스템)의 힘 앞에 무력하고 체념적인 수많은 캐릭터는 그렇지 못했지만, 릴리 만이 최초의 자유인이라는 식으로 생각해본다면, 데우스 시뮬레이션이 릴리의 자유행동을 기점으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자유의지에 대한 감독의 태도는 오직 릴리에게만 긍정이었던 것이다.


 <데브스>에는 지루한 전개라던가 주제의식의 한계 같은 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특색있는 사운드와 예술적이고 섬세한 프로덕트 디자인, 형형색색의 감각적인 조명들만 보더라도 충분한 수작이며, 단순한 킬링타임 드라마 이상의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죽음을 맞이한 릴리와 포리스트는 데브스의 시뮬레이션 안에서 다시 재생된다. 포리스트의 말에 따르면 그곳은 '천국' 이며, 엄밀히 말해서 현실과의 차이점은 없다. 직관적으로 보자면, '우리의 정보를 가지고 인위적으로 재창조된 어떤 정보들의 총합'이 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시뮬레이션 안의 포리스트나 릴리는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잠에 들었다가 깨어난 것처럼, 숨을 멈추는 순간 의식이 꺼졌다가 시뮬레이션 안에서 모든 기억과 감각을 가진채 눈을 뜬 것이다. 만약에 그 상황의 내가 '나'가 아니라고 한다면, 지금의 내가 나일 수 있는 근거도 없다는 말이 된다. 


우리의 삶이 시뮬레이션이라면 어떨까? 언뜻 보면 유치 할 수도 있는 질문이 이제는 어쩌면 정말 현실일지도 모르는 일이 됐다. 자유의지의 동의어가 된 릴리는 이제 새로운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 아니, <데브스>가 또 다른 데우스의 알고리즘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어디있는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건 질문이다. 나를 나로써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는 그런 질문을 해야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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