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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22. 2023

언어로 표현되는 나를 직접 마주함에 대하여

바다에 들어가기 직전 그 설레는 첫 시작. 이곳은 어떤 바다인가.


흰 종이에 검정색 흔적들을 채워나간다. 나의 머리 속에서 떠다니는 생각들을 내 눈으로 마주하고 읽는 아주 구체적인 행동. 그 추상적인 것들을 '언어'라는 규범안에 넣어 '글자'로 표현하고, 한글자 한글자 적다보면 마침내 언어로 표현된 나를 만나게 된다. 


글을 쓸 때는 이 단어가 과연 적절한가 , 이 단어의 뉘앙스는 나의 의도를 잘 전달하는건가 등을 고려하며 힘겹게 그러나 또 동시에 거대한 바다를 헤엄치듯 아주 자유롭게 적는다. 펜의 소리 또는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나의 청각과 시각은 깨어진다. 


인간에게는 자기실현의 욕구가 있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다. 가끔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뇌에는 뭐가 들었는지 궁금할때가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 인간인걸까. 


나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단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관심이 절감된다. 그래서 내가 ’반쯤의 익명성‘ 뒤에서 글을 자유롭게 쓰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나에 대해 얘기하고 나의 사고방식, 가치관 어쩔 수 없이 표현될 수 밖에 없는 나의 아이덴티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삶을 몰래 보는것이 재밌다. 


‘모르는것이 약이다’와 ‘아는것이 힘’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전자이다. 이 세상엔 아무리 내가 그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나는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간접적으로(글,영상 등) 누군가를 알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그어놓은 선 넘어서까지 그를 알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간접적으로 나를 알게된 사람들은 과연 내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사람인지 무슨 옷을 입는지 등 알고 싶겠지만 아직까지는 ’반쯤의 익명성‘ 뒤에서 활발하게 존재하고 싶다. 


나는 초등학교때 2년 정도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에서 살았고 쭉 사교육의 동네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그 동네 친구들 처럼 많은 것을 지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난 내가 그때 받을 수 있는 지원은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 수능에서 기대했던 점수는 나오지 못했지만 몇십년동안 세상이 말하던 ‘대학’을 빨리 경험해보고 싶어 대학교에 들어갔다. 


나의 세상이 두번째로 커진 경험이었다. 서울 출신이 아닌 한국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된 세상이었다. 공대였다. 그리고 학점을 위한 공부는 재미있었다 그러나 3학년에 올라갈 무렵 등록금 납부 하루 전에 휴학을 했고 나는 그 추상적이고 안개 가득해보이는 터널에서 ‘나에 대해서 알기’ 라는 불빛 하나만 품은 채 혼자 유럽에 왔다. 그리고 예술을 공부하고 있다. 


나는 경험이 예술이라고 믿는다. 돈을 날리게 된 경우에도 난 ‘경험구입’이라고 말을 한다. 어렸을 때 익숙하게 배운 영어가 아닌 , 성인이 되고 나서 아예 처음부터 또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겅험이었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그들의 언어로 살아가는 이방인의 삶은 항상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오히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아기’가 된 순간들도 많았다. 


언어를 새로 배우면 그만큼의 세상이 커진다. 3개국어를 하는 나에게는 지금 3개의 아이덴티티가 있다. 프랑스인 남자친구가 물었다 ‘한국어에는 몇개의 단어가 있어?’ 한번도 생각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는 ‘한국어가 전세계에서 단어 수가 가장 많다는데?’ 라고 덧붙였다. 신뢰성 있는 통계는 아닐지라도 그만큼 한국어는 다채롭고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언어는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국어. 이 다채로운 언어로 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러던 중 ‘글쓰기 좋은 642 ( 샌프란시스코 작가집단 그로토 GROTTO )' 책을 발견했고 이 책의 질문들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했다. 더 다양하게 헤엄칠 수 있는 글의 소재를 던져주기에 흥미로웠고 또 다른 질문들을 스스로 연결지을 수 있어서 재밌다고 느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미 나에 대한 물음표가 가득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이 사람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변을 하는구나, 이러한 생각을 하는구나’로 내 바다를 즐겨주는 것 뿐이다. 생각보다 당신이 굳게 믿고 있던 생각과 다른 경우도 많아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다양성을 본다는 것은 자신이 그어놓은 선이나 만들어 놓은 세상을 깨고 넓혀가는 그 힘든 결정이 수반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부하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다. 


한가지 약속하는 것은 익명성이라는 그 선을 잘 지키면서 가장 솔직하게 글을 쓸 것이다. 평범하게 당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한 이야기일 뿐. 단지 ’가장 개인적인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라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 처럼 이 글들은 나에겐 이 세상 가장 창의적인 이야기이다. 그 창의적이고 특별한 바다에 뛰어들 나 자신 조차 무척 기대된다. 아직 나도 구석구석 헤엄쳐보지 못한 탓에 새로운 나를 만날 그 설렘과 기쁨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자, 이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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