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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23. 2023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20대 중반에 혼자 프랑스를 오게 된 결심

나는 당당하다. 적극적이고 활발하다. 그러나 '어른'의 세계는 참 거대했다. 수능이 끝나고 나를 보호 하고 있던 '수험생 세상'은 깨져갔고 그제서야 진정한 어른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때부터 였다. 간혹 세상이 나를 누르는 힘이 무겁게 느껴져 정신 분열이 올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 방금도 그런 느낌이 들어 얼른 글을 쓰고 있다. )


대학을 가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또 각자 달려가는 길이 다르다는걸 점점 깨달았다. 더이상 국수영탐을 위해 학원을 다니고 고3 ,11월 수능을 같이 준비하는 경쟁자들이 아니었다. 함께 1학기를 보내고 2학기가 시작될 줄 알았지만 동기 중의 한명은 반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난 배신당한 느낌이나 뒤통수 맞은 느낌 그 중간지점의 무언가를 느꼈고 내 무의식속 마음을 알았다. 난 그저 다수에 속해서 내가 있는 곳이 정답이길 바랬음을. 


대학교 화장실 문에 붙어있는 글귀를 보았다. '죽은 물고기는 강물에 그저 휩쓸려 내려가지만 깨어있는 물고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항상 깨어있기를 원했던 나는 진정으로 깨어있던 것일까 고민했었다.  '깨어있자' 라는 말의 힘은 참 크다. 지금도 이 말을 들으면 이 악물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2019년도 겨울, 처음 파리에서 살게 된 3개월. 참 외로웠다. 나는 프랑스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겨울에 보았던 파리는 차가웠고 불편했고 너무 낯설었다. 아주 좁은 방에 월세는 정말 비쌌는데 가뜩이나 누런 조명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파리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파리에 있지만 이 파리에 가고 싶다 라는 말을 중얼거렸고 파리에 살고 싶다는 댓글에는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아요' 라는 답변을 쓰고 싶었었다. 


샹젤리제의 불빛은 반짝였지만 따뜻하지 않았다. 평소에 잘 하지도 않았던 SNS는 거의 매일 들어가서 내 스토리를 공유했다. 무언가 허전했고 내 삶의 방향이 이게 맞는건가 하는 정답 없는 고민들로 머리는 복잡했다. 그래도 자유로웠다. 행복하기도 했다. 그저 많이 낯설었을 뿐. 그 3개월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낯설고 참 불편했지만 자유롭고 행복했다. 이다.


3개월이 지나, 확신의 답을 얻고 온 프랑스 탐방은 아니었지만 돌이키지 않고 그대로 프랑스 유학을 준비했다. 사실 코로나가 터지면서 혼돈의 시기였고 그때 아무것도 안하고 고민을 하기엔 시간도 많이 없었다. 게다가 , '과거의 나'가 내렸을 최선의 선택일거라는 생각을 믿고 싶었다. 시작도 안해보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눈 한번 딱 감고 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피하는게 지는건 아니니까. 다른 선택을 한 것 뿐이라고.


유학준비를 하는 동안에 참 좋은 사람들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럴수록 떠나는게 두려웠다. 지구 반대편에서 새로운 언어를 하며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담대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나도 새벽에 가끔 깨어 이 고요한 어둠을 혼자 프랑스에 내가 마주할 수 있겠지 라며 고민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무서웠나 보다. 그 이방인의 외로움이. 


불확실한 미래, 낯선 문화와 환경. 단순히 몇달살기가 아니라 최소 3년의 학업을 하는 것이다. 돌아올 때는 20대 후반이겠지 라며 지금은 고민조차 하지 않는 '나이'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결정을 주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정말 '두려움' 때문 이라면 , 그까짓 두려움 때매 잠깐 피하고 싶은 거라면 나는 인생을 살면서 그것을 만날 때마다 항상 피할건가? 인생에서 두려움을 마주하는 순간이 이게 마지막이 아니잖아. 


그렇게 난 생각을 고쳐먹었다. 오히려 두려움이 드는 일들이 어쩌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고 해야하는 일들 아닐까 생각을 했다. 익숙하고 안전한 것을 좋아하는건 살고 싶은 인간의 본능일까. 지금도 해야하는 것들이 있을 때 '두려움'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만 포기할까 그러면 내가 지금 딱 편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왜 두려움을 느낄까. 그렇다면 나는 이것을 왜 시작했을까. 냉정하게 내가 하고 싶고 해야될 것인가. 

'YES' 라는 대답까지 이어져 오히려 '그래 그럼 해야지. 할 수 있지. 하면 돼.' 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모두가 안다 '두려움은 실제 그것보다 훨씬 커서 막상 지나고 보면 뭐야 별거 없네' 라고 한다는 것을. 물론 두려움을 또 마주하게 되면 우린 전과 똑같이 다시 겁을 먹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번 반복되어 이제 두려움에 속아 넘어가지 않게 되면 '그래 나 어른 맞구나' 라고 느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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