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매니큐어

파리의 하루

by 윤소을




손톱에 색을 직접 칠해본지 거의 10년이 지났다. 샵에 가서 남이 해준 네일을 받아본건 한번.

파리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죽잠바와 쨍한 컬러들 그리고 특히 네일 색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짧고 정리되지 않은 내 손톱에도 색을 주고 싶었다.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연애 초반에 너는 매니큐어에 관심없냐고 물어봤었는데 나도 이제 프랑스에 녹아들고 있는걸까.


오늘은 쇼핑을 하고자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알바해서 번 100유로 지폐를 챙겨 나왔다. 툭 가볍게 걸칠 가죽 옷이나 하얀색 뽀글이 옷을 사고 싶었다. 두번째 방문한 파리의 제일 큰 H&M 매장을 둘러보며 마지막 남은 아이템을 발견했다. 재고가 거의 남지 않아서 할인을 크게 하고 있었고 색상이며 핏이며 다 모두 내꺼였다. 기쁜마음으로 쟁여두고 한바퀴를 더 돌았다. 나는 체크패턴보다는 단색이 잘 어울리고 연한 파스텔 색감보다는 쨍한 원색이 더 잘 어울린다. 예쁜 연분홍 목도리가 있었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오래 입은 줄무늬니트를 대신할 기본템 줄무늬 가디건을 골라 약속장소에 갔다. 약속이 끝나고 다른 매장으로 넘어와 우연히 매니큐어 매대를 발견했다. 고민 끝에 쨍한 버건디 색을 골랐다.


코로나에 걸린건지 일주일 내내 몸이 아프다. 정확히는 목이 아프고 미열은 있다가 없다가 한다. 체코에서도 목이 많이 아팠는데 여기 와서도 건조한 환경에 적응하는듯 큰 액땜을 새해맞이로 하고 있다. 덕분에 나에게 가습기는 필수템이라는걸 알았다. 중고구매로 가습기를 두개나 갖게 되었다. 오늘 밤은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겠다.


외국에서는 병원을 거의 못 가기 때문에 약과 자기치료로 연명하고 있는데 나도 나와 맞지 않는 약이 있음을 알았다. 카페인에 약한 나는 카페인 성분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약은 호흡이 힘들 정도로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Menthol 맨톨과도 잘 안 맞는 것 같다. 꿀과 몇가지 잎의 성분이 들어간 사탕을 샀는데 먹을 때마다 이상하게 심장이 빨라지고 확 긴장이 된다. 검색해보니 멘톨에는 마취 성질이 있어서 가벼운 인후염의 통증을 완화시키는데 널리 사용된다고 한다. 여러 잎의 성분이 들어간거라 뭐랑 정확히 안 맞는지는 모르겠다. 체코에서 약을 잘못 먹고 아픈 이후, 약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또 느꼈다.


집에 와서는 크리스피 도넛 두개를 전식으로 먹고 로제파스타를 해 먹었다. 목감기용 가루약을 먹고 매니큐어를 발랐다. 고약한 매니큐어 냄새가 너무 싫었지만 열손가락의 빨간 포인트는 너무 예뻤다. 나를 내가 더 예쁘게 가꾸고 싶다는 마음이 확 들었달까. 나를 더 사랑하자가 말로만 하는게 아니라 정성을 쏟고 직접 움직이는것임을 또 한번 느꼈다. 코랑 목이 건조하기 때문에 샤워실에 일찍부터 물을 틀어놨다. 습해진 샤워실에 들어가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 섰다. 드비쉬의 노래를 틀어놓았다. 최근에 우아한 유령이라는 클래식에 빠진 이후로 클래식을 거의 매일 틀어놓는다. 위에서 쏟아지는 물을 온 몸으로 느끼며 피아노 연주를 귀로 듣고 꽃단장을 끝낸 손으로 계속 머리를 쓸어넘겼다. 평안하고 아늑하고 고요하며 충만한 느낌이었다. 딱히 단어로 퉁치고 싶지 않은 순간인건 확실했다.


샴푸를 끝내고 젖은 머리는 끝만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한다. 그리고 트리트먼트를 머리 끝에서 뿌리쪽으로 바른다. 적어도 3분은 두어야 되서 양치를 하거나 바디워시와 얼굴 폼 클렌징 또는 얼굴 각질 제거를 한다. 트리트먼트를 헹굴때는 최대 1분만 소요되는게 좋다고 한다. 전에는 머리는 수건으로 물기만 털고 따로 드라이기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머리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해서 잠옷을 입은 후 바로 차가운 바람으로 머리를 말려준다.


나는 냄새에 예민해 향수에도 관심이 없다. 인위적인 걸 추가하는 느낌이라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만의 향으로 플러팅을 하라는 장영란의 말처럼 향은 잔상이 오래 남아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면 사용할 수는 있겠다. 내 방법은 아니지만. 글을 타이핑하는 순간에도 빨간 손톱들이 연주하듯 움직이는게 너무 귀엽다. 그치만 스멀스멀 느껴지는 주유소 매니큐어 냄새. 예전부터 매니큐어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유는 그렇게 되면 손톱이 숨을 못 쉰다는 말 때문이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데.. 안타깝다.


쨍한 버건디, 이 빨강이 주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두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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