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한 발 더 내미는 일

평범한 하루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은 선택들

by 박윤


'인생의 해상도' 책을 읽고 있다. 새로 얻는 것도 있고 나도 똑같아 ! 하는 것도 있다.


여러 글을 쓰고 싶을 정도로 영감 가득한 책이었는데 '굳이'에 대한 글은 바로 쓰고 싶어서 챕터를 끝내자마자 핸드폰 노트에 빠르게 적었다.


이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에서 많이 쓰이지만 긍정적으로 써보고 싶다. '굳이' 라는건, 무언가를 한발자국 ‘더’ 나아간 것. 각자의 선을 긋고 얘기할때 누군가가 한발 더 나아가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게 얼마나 중요하고 따스한 손내밀기 인지안다. 정해진대로, 예상한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는 그 예상 밖의 따뜻한 행동.


이 긍정적인 굳이 개념은 유럽에서 배웠다.


예술학교 1학년때 난 굳이 이걸 왜 해 ? 담당이었을 정도로 도대체 왜 굳이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게 많았다.

그럴때마다 사람들은 왜 안돼? 그냥? why not? 라고 대답했다.


한국어에서는 익숙치 않은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굳이’가 '그걸 왜 해?'에 가까운 말이라면, 그쪽에서는 '할 수도 있지, 왜 안 해?'에 가까웠다. 같은 상황인데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고, 솔직히 좀 불편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일상에도 그런 선택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특히 서로 모르는 사이일 때.


예를들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갈때 한 아이가 무서워해서 아이의 손을 잡아서 같이 올라갔고 유럽 거대한 공항?에서 한국 노부부가 짐 때매 고생하고 계셔서 도와드릴까요? 해서 짐만 올려주고 바로 내 갈길을 갔던게 생각난다. 대단한 일은 아니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내가 하는 ‘굳이’ 들을 통해서 평범한 일상들이 해상도 있게 더 분명하고 더 생동감있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굳이’가 보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작년 하반기에 교회 제자반을 듣는데 감사하게도 매주 새로운 누군가에 의해 간식이 준비되있었다. 그중에 기억나는 분은 맛있다고 유명한? 김밥 (나는모르는)과 닭강정? 통을 준비해주신 분이다. 왜냐하면 그 간식 포장 통 전부에 말씀카드가 붙어있었기 때문.


타인의 따뜻한 '굳이'였다.


어떤 곳에 가서 어떤 말씀카드를 고를까 고민했을 설레는표정, 어떤 마음으로 샀을지 어떤 간식이 좋을까 고민했을 그 마음, 목사님께 인원을 여쭤보고 회사 쉬는시간에 주문을 넣었을 시간 그리고 하나하나 붙이기 위해 테이프를 찾고 하나하나 붙였을 마음들.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이건 상상력이 많은 N 이라서가 아니라 일상에서도 나는 나를 제3자로 보면서 그 상황을 흡수하고 관찰하고 물음표를 많이 던지기 때문일거다.


그 분은 익명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의 ‘굳이’ 가 너무 따뜻했다.


또 최근에 하얼빈 백화점에서 음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이 나와서 한국인이냐고 뭐좀 물어보자고 하셨다. 문제는 우리도 잘 못 알아듣고 약간 경계하는 마음으로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고 끝이 났다. 근데 집 가는 길에 그 사람이 계속 생각나서 혹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아니였을까 오빠랑 얘기해서 다음에 같이 또 찾아갔다. 이번엔 번역기를 켜서 동료 직원에게 보여드렸다.


그 직원과 연락이 닿아서 들어보니 한국에서 필요한게 있었고 마침 우리가 한국에 들어갔다오니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그 후, 그 친구는 너무 고맙다고 자기 위챗에다가도 올리고 음료도 공짜로 준 일이 생각난다.


이런 식으로, ‘굳이’는 가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게 평범한 하루를 조금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모든 상황에서 그 한 발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냥 그렇게 해본다.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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