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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5. 2023

프랑스 시장에서 'Smile' 그려달라고 하기

내가 만난 8살에서 60살의 프랑스인들


우리 학교 앞에는 매주 장이 열린다. 어렸을 때 아파트 단지에 열리는 그런 장이라고 보면 된다. 

학교에서 지역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소소하게 진행했고 나와 내 친구는 '드로잉'을 주제로 잡았다.


Fanzine 이라고, 단체 프린트물을 일컫는 말인데 우리는 총 8개의 페이지, 8개의 컬러로 리소그래피 Fanzine 을 완성하기로 했다. 표지로는 장터에서 많이 보이는 허브를 스캔해서 서로의 이름은 원형으로 디자인 마무리 했다. 




예전에 한 디자이너님께서 회의를 할 때 이미지가 아닌 언어로 하려고 노력하신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동그라미 라는 키워드로 작업을 할 때 동그라미를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는 순간 우리 머리속의 동그라미는 그 그림과 비슷하게 뻗어나가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기 어렵다는 의미이셨다. 


그 인터뷰를 읽으면서 참 공감이 많이 가서 마음 깊이 새겼었다. 영어와 불어를 공부하고 다른 나라의 이방인으로 살면서 많이 느꼈던 것은 '언어'란 나의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방법이고 그 틀이구나 이다. 내가 아무리 불어로 설명한다고 해도 한국에서 존재하는 단어나 그 개념들이 이곳에서는 없는 것이며, 낯선것이고 새로운 것들이 된다. 



솔르윗 작가가 '이미지'와 '언어'의 인식 관계에 의문을 던지면서 누군가는 그의 작업을 보고 아 맞아, 이름이 없는 것은 , 언어로 정의되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인식 조차 되지 않는다. 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 왔을 떄,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단어와 그 언어세계에 맞게 끼워 넣으려고 노력한다. 마치 내가 한국의 단어들을 친구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최대한 비슷한 단어나 그 뜻을 느낄 수 있는 상황들을 다시 설명하는 노력 처럼 말이다. 




다시 프로젝트로 돌아오자면, 우리는 종이와 펜을 내밀었을 때 어떻게 해야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드로잉 프로젝트에도 여러방법이 있다. 드로잉을 서로가 이어가서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도 있지만 우리는 하나의 단어가 주어졌을 때 각자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하는지를 보고 싶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단어들을 찾기 시작했고, 기본 도형들보다는 재미있고 따뜻한 뉘앙스가 내포된 것을 생각하다가 "미소, 스마일"을 떠올렸다. 홍보하는 팻말에 큰 미소를 그려넣는 것이 어떠냐고 친구가 제안했지만 난 '언어'로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내 의도를 이해하고 함께해준 친구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장터에 나가 사람들에게 그림을 부탁했다. 


여기서 발견한 신기한 점들이 있다. 


1. 웃는 입만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만난 20대 여자 1명은 우리의 부탁에 쑥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그림을 그렸다. 웃는 입을 그리더니 끝났다고 했을 때 난 꽤 당황했었다. 내 기준에서 스마일은 최소 눈2개와 입1개 였다. 이렇게 동양사람들은 사람의 눈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서양사람들은 입을 처음으로 인식한다는 실험이 사실이구나...를 1초 느꼈다. 


2. 드로잉이라는 작은 활동이 사람들에게 미소를 선물했다.


물론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 우리의 팻말을 보고 흥미롭다는 듯이 많은 분들이 쳐다보셨다. 어떤 아주머니는 하고 싶다는 눈빛을 계속 보내셨고 어린아이 같은 설렘을 보이시면서 고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우리의 작은 행동으로 장터에 미소를 선물할 수 있어서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당시 계속 반복되는 학교와 일상으로 번아웃 같은 느낌도 받고 무언가 답답했기 때문에 나에겐 참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3. 어른들은 '나 그림 못그리는데 허허.. ' 아이들은 '내가 그릴래요!! 좋아요 !'


장터의 끝까지 갔다가 우연히 옆에 초등학교를 발견헀다. 이런것에 부끄러워 하지 않는 나는 친구를 데리고 달려갔다. 철장이 있었지만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을 주목시키기 위해 팻말을 흔들면서 그림 그릴 사람~ 을 외쳐댔다. 조금 후, 많은 아이들이 달려왔다. 종이가 그만큼 남아있지는 않아 당황했지만 너무 행복했다. 예상하지 않은 따뜻한 일들이 그날 참 많이 일어나서 마음이 뭉클했달까. 


아이들은 철장 앞에 거의 메달려 내가 먼저 그리겠다고 손을 들었다. 나도 모르게 영어가 나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프랑스 시골에서 갑자기 운동장 밖에 한국인이 그림 그릴 사람~ 외치다가 영어로 말을 한 경험은 좀 그들에게도 특별하지 않을까 싶다. 


그림을 부탁한 어른들은 대부분 두려워 하셨다. 난 그림을 못그리는데 하면서 무안함 반 설렘 반의 표정을 보이셨다. 반면 아이들은 설렘 가득한 얼굴로 두려움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4. 동음이의어의 웃픈 해프닝


한 명의 미스터리 할아버지를 만났다. sourire (미소)를 그려달라고 했는데 동일한 발음인 souris (쥐)로 알아들으시고 허허, 자 그려볼까~ 하면서 쥐를 그려주셨다. 그리고 모두에게 나이를 물어보았는데 유일하게 나이는 비밀이라고 거절하셨다. 그의 대답에 그럼 저희가 알아서 적을게요~ 20살 맞으시죠 ? 라고 했는데 엄청 좋아하셨다. 전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나이 깎기 수법이였다. 





이렇게 리소그래피 인쇄를 준비한다. 실크스크린 기법과 동일하게 전체를 검정색으로 보내야 한다. 맨 마지막 그림만 유독 다르게 보이는데 저게 바로 쥐 다... 사실 이것도 그의 그림을 너무나도 좋아했던 반 친구와 fanzine을 선물로 드리기 위해 같이 갔다가 그것이 쥐였음을 알게 되었다. 


핑크색으로 완성한 우리의 A3페이지를 포함해 fanzine을 완성하고 일주일 후 참여해준 사람들에게 나눠드렸다. 학교에 전달해드리기 위해 갔다가 감사하게도, 한 반에 직접 들어가서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전달까지 하게 되었다. 아주 재미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내부에 들어가본지 10년은 더 된 것 같은데 그것도 프랑스 초등학교 교실 입성이라니... 나의 옛 시절이 떠오르면서 참 기분이 묘했다. 어떤 프로젝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또 재밌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예상 밖의 일들을 겪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때 더더욱 의미있고 힘이 나는 것 같다. 


이게 인생의 매력이겠지.

앞으로도 예상 밖의 두근거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겁먹지 않고 웃으면서 다 해버릴거다. 

벌써 좀 설렌다. 




프랑스인들이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를 언급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C'est la vie ( 이것이 인생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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