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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Mar 12. 2019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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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 김동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정현종 시인은 간파했다.

누군가가 나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실로 긴장되고 설레이고 즐거운 일이다. 나의 집으로 오는 사람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운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방문객으로 인해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가 열리고 새로운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질 수도 있다. 성경에서도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천사를 대접한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방문객을 정성을 다해 환대해야 하는 것이다.  하물며 한나라의 수장이 우리나라를 방문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마 어마한 일인가? 우리는 우리의 삶을 크게 바꿀지도 모르는 그를 성심껏 환영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환영은커녕 험한 말을 하면서 그가 올 수 없도록 겐세이나 놓으면 되겠는가? 자기 집에 오는 손님을 환대하지 못한 사람의 삶 속에서는 어떤 뜻밖의 행운이나 새로운 즐거움을 만나기 힘들다. 그런데 그들은 왜 자기에겐 그런 행운이나 은혜가 오지 않느냐고 하소연한다.

지난달 나는 우연히 일터에서 처음 만난 한 베트남 여대생인 엘라의 즉석 초대로 한국 방문 시 베트남을 경유하면서 그녀의 부모님 집에서 1박 2일을 보낸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호찌민 공항에 내려 그녀의 가족을 만나 함께 집으로 가서 하룻밤 숙박하고 아침에 손수 만들어준 베트남 국수를 먹고 동네를 둘러보았는데 아주 특이하게 생긴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3층 정도의 빌라처럼 지어졌는데 창문들은 없고 작은 구멍들만 있는 페인트를 칠하지 않은 회색빛 시멘트 건물들이었다.  궁금증이 생겨 엘라에게 물었더니 새집 건물(bird nest building)이라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도 이런 새집 건물을 일곱 개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이 이 새집 건물에서 작은 금빛제비처럼 생긴 새인 금사연(Swiftlet)들이 입에서 나오는 타액으로 천장에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있으며 사람들이 일 년에 서너 번 그 제비집을 채집해서 털과 이물질을 깨끗이 제거한 후 음식 재료로 파는데 이것이 바로 옛날 중국 황제의 음식을 만드는 '연와'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큰 잔치를 '연회'라고 하는데 제비집 요리인 '연와탕'이 나오는 잔치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제비집(Bird nest)의 가격은 1kg 당 300만 원이 넘는 고가에 팔리고 있다. 미용과 장수에 효과가 있다는 제비집으로 요리한 수프는 옛날엔 중국에서 왕족만 먹을 수 있는 진귀한 로열 푸드였는데 지금은 돈 좀 있는 중국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어 아주 비싼 값에 판매되고 있지만 진품의 공급이 부족해 가짜 제비집 요리가 많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엘라 엄마가 연와탕을 직접 만들어 우리 부부에게 주어서 먹어보았는데 아주 특별한 맛이었다. 그리고 식사 후 엘라가 들려준 그녀의 아버지가 이 제비집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웠다. 11년 전 가난한 30대 부부였던 엘라 부모가 집에서 음료수를 파는 작은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한 말레이시아 사람이 들어와서 음료를 사 마시면서 아버지와 대화하다가 혹시 자기가 새집을 짓도록 땅을 구입하는 걸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했단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말레이시아에서 제비집 건물을 지어 제비집 판매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마침 그 동네가 제비집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입지 조건이 되는 것을 알게 된 그가 엘라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땅을 사서 제비집 건물을 지어 성공을 거두었고 그를 도왔던 엘라 아버지에게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사업을 같이하여 가난한 구멍가게 주인이었던 아버지가 11년 만에 3층짜리 집을 지어 살면서 제비집 건물을 짓는 사업을 하고 있고, 엄마는 제비집 가공과 판매 사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딸을 호주에 유학 보낼 수 있었고 40대 중반 부부인 그들이 매달 외국여행을 하면서 아주 풍요롭게 살고 있었다. 자신의 집에 있던 작은 구멍가게에 방문했던 한 사람을 성심껏 환대하고 도왔던 것이 그의 인생과 온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것이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13년 전 한 사람이 브리즈번 언더우드에 있는 우리 집을 방문했었다. 당시 나에게는 낯선 한국 전통 서예인 혁필을 하면서 세계를 여행하는 60대 중반 대머리 아저씨였다. 본인이 세계 최고의 혁필 가라며 허풍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성심껏 그를 도와 일자리도 알아봐 주고 픽업도 해주고 정보도 주면서 몇 달을 옆에서 도와주었다. 그러던 중 그동안 나의 도움에 감사하다면서 보답으로 혁필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해 처음엔 한사코 거절하다가 계속된 권유에 혹시 나중에 지인들 방문할 때 예쁜 글씨로 좋은 문구를 써 선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혁필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6개월 후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취미로 배웠던 혁필이 직업이 되었고 마음속 꿈으로 간직되었던 호주 전국 여행과 세계 여행의 꿈을 모두 이룬 것이다. 호주 해안을 따라  바퀴를 돌았고 엘리스 스프링과 울루루, 킴벌리 벙글벙글, 다윈과 카카 투 공원, 퍼스와 칼구리 금광과 에스퍼란스 트와일라이트 비치, 애들레이드와 널라보평온, 멜번과 그레이트오션로드, 캔버라와 스노이 마운틴, 시드니와 브로큰힐, 케언즈와 화이트헤븐비치, 타즈마니아 호바트와 론세스톤 크레이들 마운틴 등 호주 방방 곳곳을 지난 12년간 일하면서 여행했다. 그리고 스위스 융프라우에 가던 중 취리히에서 일했고, 터키 이스탄불 탁신 광장 거리와 그랜드 바자르에서 일했고, 이태리 밀라노 엑스포와 두오모 광장, 스페인 테네리페 섬에서도 일하면서 여행했다. 로마, 런던과 파리, 마드라드와 바르셀로나, 몰타의 발레타와 보스니아 사라예보, 아프리카 모로코까지 여행했다. 여행하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은 그동안 나를 가두었던 좁은 기독교 세계관의 틀을 깨뜨렸고 보다 진실한 세상과 진리를 마주하게 되어 더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상과 삶을 갖게 했다. 한 사람의 방문객이 나의 삶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또한 호주 곳곳을 여행하면서 우리를 환대했던 몇몇 사람들은 아주 좋은 친구가 되어 지내고 있다. 다윈과 퍼스, 애들레이드, 호바트와 론세스톤, 시드니엔 언제든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민자들을 보노라면 왠지 모를 외로움이 느껴진다. 아마 내가 외로워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민 와서 살면서 마음을 터놓고 교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까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민사회라 작은 일에도 금방 마음이 멀어져서 좋은 친구를 얻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외로운 마음 붙들고 있지 말고 마음을 열고 방문객을 맞을 준비를 하자. 집에 여분의 손님방 하나 예쁘게 꾸며 놓고 지인들과 손님을 맞자. 방문객이 오면 평범한 삶에 새로움이 생기고 남은 인생에 뜻밖의 행운이 올지도 모르니까.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람 사이에 필리아(우애)를 키우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즐거운 사람이어야 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그의 아들에게 가르쳤다. 생각해 보면 내 마음에서 계속 필리아를 키워가지 못했던 사람들은 교제 중 정직하지 못하고 나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계속되는 만남이 그렇게 즐겁지 못했을 때, 몇 번의 만남에도 아무런 유익이 없었을 때 관계는 더 이상 진전을 못했던 것 같다. 매일 우리는 스스로 더 좋은 사람 즐거운 사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과  우애를 깊이 쌓아갈 때 우리의 삶이 더 즐겁고 더 새로워질 것이다. 그러니 이제 한 사람이 나에게 올 때 온 마음으로 그를 환대함이 옳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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