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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Dec 22. 2021

고슴도치의 거리두기

쇼펜하우어의 관계의 미학

 코로나-19 판데믹 이전에 호주의 타즈마니아 섬을 여행하던 중, 산 길을 가로지르는 고슴도치를 보았었습니다. 야생 고슴도치는 처음 보는 거라 재빨리 차를 멈춘 후 급히 쫓아가서 고슴도치 사진을 찍었지요. 나뭇잎 속에 가만히 숨어있는 고슴도치를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살짝 건드렸더니 온몸에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방어하더군요.


 오늘 갑자기 고슴도치가 생각난 것은 항상 좋을 것만 같았던 우리 부부의 관계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의 기능이 약해져서 자신감이 줄어들어서 일까요? 아내의 작은 투정에도 마음에 상처가 나고 자꾸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려 합니다.


 문득 쇼펜하우어가 사람 관계에서 서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고슴도치처럼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고슴도치들은 서로의 체온을 합하여 추위를 이겨내려고 서로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런데 서로에게 몸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면 몸에 난 가시로 서로를 찌르게 되고 상처가 난 고슴도치들은 서로에게 다시 다가가기를 두려워하게 되지요. 하지만 혼자서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하던 고슴도치들은 다시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너무 가까이했을 때 또다시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주고받지요. 이렇게 여러 번을 반복하다 서로 찌르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두기를 한다는 거죠.


 사람들도 이처럼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을 만큼의 거리두기가 필요한데, 모든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이 적당한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는군요. 상대방에게 불만이 일어나고 화가 날 때 얼굴을 붉히며 바로 큰 소리로 비난하는 말을 쏟아낸다면 상대방에게 아주 큰 상처를 입히게 되지요. 그래서 부부관계에서도 예의를 지키라고 하나 봅니다. 서로 예의를 지키는 관계였다면 순간순간 일어나는 감정을 여과 없이 곧바로 표출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에게서 관계의 미학을 배우자고 합니다. 너무 멀리 가면 외롭고 너무 가까우면 서로 찌르니, 아무리 가까운 부부라고 해도 서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여 상대방의 삶에 너무 간섭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은 모두 자아의 욕망이 있고 자신의 삶의 문제와 평생 씨름하며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이 욕망은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채워줄 수 없지요.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해 주길 원하고 그것을 요구하지만, 상대는 근본적으로 그 욕망을 백 프로 충족시켜줄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 또한 상대로부터 채우길 원하지만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요. 상대의 욕망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며,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어떤 욕망이 충족된 듯하면 곧바로 권태롭게 되고 다시 새로운 욕망이 나타나 결코 완벽히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괴로운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덜 괴롭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을 가능 한 줄이는 것이고, 타자에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를 요구하지 않는 것일 겁니다. 이럴 때 우리는 서로 적절한 관계 속에서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저 유명한 레바논의 작가 칼릴 지브란도 그의 책 '예언자'에서 결혼하는 부부에게 서로 거리두기를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부부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사회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그의 유명한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인간이 엄마의 태로부터 분리되어 생긴 근원적 불안인 분리 감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 생각이 꼭 맞지는 않음을 느낍니다. 결국 우리는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고독한 실존적 존재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코로나-19 판데믹 시대에 고슴도치의 거리두기를 기억하며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를 다시 한번 조용히 읊조려봅니다.


< 결혼에 대하여 / 칼릴 지브란 >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니

영원히 함께 하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삶을 흩어 놓을 때에도

그대들은 함께 하리라

그리고 신의 고요한 기억 속에서도 영원히 함께 하리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리하여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그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그대들 영혼의 나라 속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으로

마시지 말라

서로의 음식을 주되  한쪽의  음식에 치우치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때로는  홀로 있기도 하라

비록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마음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으니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것처럼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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