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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Jun 24. 2020

용기

Courage


몇 년 전 저녁 11시가 넘었는데 머물고 있던 카라반 팍(Caravan Park) 옆 캐빈(Cabin) 앞에서 여러 명의 남자들이 계속 크게 얘기하는 소리에 피곤했지만 잠들기가 힘들었다.

호주에서 처음 여행하면서 카라반 팍 숙소에서 머물 때 인상적인 일이 저녁 8시만 넘으면 아주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머무는 여행지 숙박지인데도 밤이 되어 어두워지기만 하면 아주 고요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한국의 캠프장이라면 밤늦도록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로 일찍 잠들기 힘들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테니까 그랬나 보다.

옆 캐빈에 인도계 젊은 남자들이 여러 명 놀러 온 모양인데 저녁 9시 반 이후엔 정숙해야 한다는 카라반 팍 규칙에도 불구하고 밤 11시가 넘도록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잠옷 위에 겉옷을 걸치고 밖에 나가 "밤이 늦었으니 그만 떠들고 안으로 들어가 달라"라고 말하니 젊은 세 놈이 새까만 얼굴에 눈을 뻐끔거리면서 알았다고 해서 그만  들어왔는데 혹 이들이 무슨 못된 짓을 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스럽기까지 했었다. 아내도 "좋게 말했죠?"라고 염려스러운 투로 물었다. 다행히 염려와 다르게 바로 조용해져서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여러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언젠가 가족과 함께 브리즈번 사우스뱅크 인공해수욕장 공원에 갔을 때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그에게 다가가 "이곳이 금연구역인 줄 몰랐느냐?"라고 말해주었더니 금방 담배를 끄던 기억이 났다.

난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잘못을 언급해 주어 고치도록 하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용기가 안 나서 한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하기도 하고 공격적인 반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목소리가 떨리기도 하지만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엔 자주 직접 나서는 편이다.

이런 내 버릇이 한국에 갈 때면 때로 예기치 않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수년 전 한국 방문 시 속초에 갔다가 제일 유명하다는 찜질방을 갔을 때 있던 일이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크게 눈에 띄는 경고문구들이 '금연'이었다. 특이한 건 화장실 밖에 뿐 아니라 화장실 칸막이 안쪽 문에도 "금연을 지키지 않으면 퇴장시킴"이란 경고문이 크게 적혀있었다. 의아해하며 일을 보는데 옆 칸에서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옆칸에 대고 "그곳은 금연 문구가 없습니까? 흡연 시 퇴장시킨다고 써져 있는데요"라고 말했는데 처음엔 멋쩍은 듯 "그런가요? 알았습니다"라고 말하더니 조금 후 "그런데 아저씨 말씀이 조금 듣기 그러네. 나가면 다 알만한 사람인데 나이 든 사람 가르치려고 하시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자칫 싸움이 날까 덜컥 겁이 나 "아, 죄송합니다. 제 목소리가 좀 무례했나 봅니다"라고 말하고 그 사람이 날 알아보지 못하게 재빨리 화장실 밖으로 나왔었다.

성서에서도 절대 좋은 게 좋다고 대충 넘어가라고 말하지 않고 "speaking the truth in love, 진실(리)을 사랑으로 말하면서"는 말이 있음을 알고는 더욱 용기를 내어 잘못된 것은 잘못된 거라고 말해야겠다 생각하게 된다. 단,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공동 선을 위해서 사랑의 마음을 갖고 부드러운 말로 비판하는 것이다. 이게 어렵지만 노력해야 한다. 또한 누군가 자신이 속한 단체나 사회의 공동 선을 위한 건전한 비판을 할 때 아무런 동조 의견의 말을 못 하고 침묵하는 것은 비겁하다.


용기란 SNS에서 비난의 글만 쉽게 써대는 것만이 아니고, 그것은 잘못이라고 잘못한 사람 앞에서 직접 조용히 말하는 것 아닐까?


(사진: 호주 퀸스랜드주 북쪽 Cairns의 카라반 팍에서 해가 막 진 후 큰 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 흑백사진 아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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