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되기 전엔 가볼 수 없는 금지된 땅이라고 생각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에 와서 조선의 심장이라 불리는 평양에 드디어 도착했다.
약간의 긴장과 흥분된 마음으로 미리 작성한 입국카드와 세관신고서 그리고 검역신고서를 여권과 함께 출입국 관리소에 제출하고 입국 수속을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호주에서 왔다는 것을 안 직원이, 며칠 전 스웨덴에서 있었던 북미핵협상 실무자 회담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이번엔 조선이 미국의 변하지 않은 입장을 이유로 회담을 일방적으로 결렬시켰고, 미국은 도리어 회담을 지속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내어놓았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난번 하노이에서의 굴욕을 미국에 그대로 되갚아 주었다고 한다고 전해주었다. 직원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인다.
출국할 때도 다른 직원이 호주와 조선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보아 출입국 직원들은 조선의 국제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은 듯하다. 반면에 우리를 안내했던 해외동포국 직원과 운전기사는 이런 국제관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보였다.
출입국 문을 통과해 세관신고를 하는데 손전화기를 주라고 한다. 순간 비행기에서 승무원을 몰래 찍은 게 문제 되는 거 아닌가 살짝 긴장이 되었다. 가지고 간 두 개의 핸드폰을 전해주니 다른 데스크에서 검사하고 주겠다고 한다. 비밀번호를 열어 검사관에게 주니 사진과 동영상을 빨리 살펴보더니 문제없다고 돌려주어서 한숨 놓았다. 한 서양인은 읽던 책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중에 안내원에게 뭘 보는 거냐고 물어보니 여자 나체 같은 이상한 영상물이 있나 보는 거란다. 노트북에 영화가 들어있어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고 보관하다가 나갈 때 돌려준다고 한다. 조선인민들의 사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본주의 문화는 철저히 통제하는 것 같다. 조선을 방문하실 분들은 핸드폰에 혹 남몰래 보려고 야동 숨겨놓은 것 있으면 꼭 지우고 보여주시라.
출국장 밖으로 나오니 우리 안내원과 운전기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난 후 통일교 문선명이 투자해 조선에 조립공장을 설립해서 만들었다는 평화자동차를 타고 순안 공항을 빠져나와 평양을 향해 달린다.
날씨는 선선하고 화창하다. 중국 상하이와 선양의 뿌연 하늘과는 대조되게 평양의 하늘이 선명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낮은 건물들을 지나 코스모스 핀 시골길을 따라 한동안 달리다 보니 눈앞에 평양시의 높은 건물들이 보인다. 작년 9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 시민들이 TV를 통해 고층건물들이 늘어선 평양시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처럼 평양시는 현대식 고층 건물들로 꽉 들어찬 아름다운 도시였다.
조선에서의 첫날밤 숙소는 대동강변에 있는 평양호텔이다. 주로 재일동포들이 머무는 호텔이라고 하는데 너무 크지도 않고 직원들도 친절하다. 체크인하고 키를 받으니 제복을 입은 직원 둘이 우리 일행 두 명의 짐을 들어다 준다. 팁으로 1불씩 주고 방으로 들어와 보니 장판바닥이 깨끗한 방으로 창 밖으론 노래로만 들어왔던 한 많은 대동강이 보이고 아름다운 한옥으로 지어진 평양 대극장이 보인다. 호텔방에서 우선 핸드폰 충전할 수 있는지 콘센트를 확인해 보니 220V와 110V 두 가지가 다 있고 호주에서 가져간 충전기를 아답터 없이 바로 꽂을 수 있다. 멀티 아답터 콘센트로 되어 있어서 어떤 것도 다 가능한 듯했다. 욕실엔 수건뿐 아니라 치약 칫솔과 빗과 샴푸 린스 비누가 다 비치되어 있다. TV를 틀어보니 정부 채널 하나뿐이고 인터넷 와이파이는 없다. 인터넷은 쓸 수는 있는데 미리 신청해야 하고 가격도 최소가 200불이 든다고 해서 일주일간 인터넷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저녁 식사는 우리가 긴 여행으로 피로하다고 생각해 안내원이 우리를 평양호텔 내에 있는 식당으로 안내한다. 우선 그토록 궁금했던 대동강 맥주를 먼저 시켰고 식사는 안내원이 주문한 청국장을 나도 시켰다. 특별하게 조리된 청국장에 밥을 비벼 먹고 대동강 맥주를 한잔하니 여기까지 오기 위해 수고한 온갖 수속 절차와 20시간의 긴 여행이 마침내 보상받은 것 같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한식이 항상 그리운데 조선의 여행은 관광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싼 값에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조선에서의 첫날이 꿈처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