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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Aug 25. 2020

내가 만일

If I were...

                     내가 만일

                                     / 김동관
 
 
내가 만일 깊고 넓어 측량할 수 없는 바다라면
깨어져 날이 서고 상처나 냄새 난 영혼들을 가슴으로 품어 안위하고 정화시켜 잠재우는 바다
밀려오고 밀려오는 아픈 파편들을 다듬고 또 다듬어 세월 지나 반짝이는 조약돌 되게 하는 바다라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내가 만일 하늘을 향해 익어가는 한 송이 해바라기라면
곁눈질 한번 없이 해를 향한 일편단심으로 키 커가고
노란 얼굴 까맣게 타 들어가는 죽음보다 강한 사랑 빼곡히 남기고 고개 숙여 이별하는 한 송이 해바라기라면
내 삶은 정녕 헛되지 않으리
 
내가 만일 어깨동무하며 곧게 커가는 푸르른 나무라면
비가 내릴 땐 같이 춤추고 뿌리가 말라갈 땐 서로 그늘 되어주고 넉넉하게 곁에 서서
두려움 없이 비밀과 아픔 나누는 한 그루 나무라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내가 만일 미사일 날리는 땅에 내리는 단비라면
마른땅에 곡식 타 들어가 허기진 한숨 소리 가득한 그 땅에
생명의 단비 되어 대포 쏘는 그 손 잡아 일으켜 세우고
주막으로 옮겨 상처 싸매 치료하고 떡 한 덩이 물 한 병 건넨 후
가던 길 향해 묵묵히 떠나가는 소리 없는 단비라면
내 삶은 정녕 헛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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