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금강산 관광

2019년 10월 9일-12일 여행기록

by 김동관

상하이 공항에 도착해서 전화기를 켜니 가족들이 나의 북한여행을 염려하는 카톡이 여러개가 올라와 있다. 왜 우리는 북한여행을 간다면 살아서 돌아오라고 안전을 염려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가보지 않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방송매체들을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때 할머니에게 달걀귀신 이야기 듣고 밤에 화장실도 혼자 못 갔던 것처럼 무지가 두려움을 낳게하고 미신을 믿게하고 맹목적으로 섬기게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 또한 페이스북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엔 지금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과 생각이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북한을 다녀 온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페이스북을 통해 듣기도 하고 만나서 그들의 경험을 직접 들어보면서 북한 여행이 어느 나라보다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 그래서 지금 북녘땅이 어떤 모습일까 흥분과 기대가 될 뿐 나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다.


사실 이번 여행을 확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올해 8.15 광복절 기념식이었다. 독립운동 유공자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훈장을 달아 주는데 본인이 죽고 없으니 그들의 자식이나 손주가 대신 훈장을 수여받는 모습이 큰 감동이었다.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바친 그분들의 희생이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잊혀지지 않고 그 후손들에게라도 독립유공자라는 명예가 돌아가는 모습에서, 자식이 셋에 손주가 셋이나 있는 나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통일운동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우선 북한을 방문해서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떠 올랐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그 많은 북한 실향민들 뿐만 아니라, 북한을 가보고 싶어하는 수많은 한국인들과 미국시민권자들이 있는데, 맘만 먹으면 당장 갈 수 있는 호주 시민권자인 내가 북한을 가보지도 않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내 후손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말이다. 남북이 평화와 협력으로 가는 첫 걸음이 북한의 실상을 바로 아는 것이고, 바로 알기위한 최선의 길이 직접 만나서 보고 대화해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상하이 공항에서 2시간 기다렸다가 심양행 비행기를 다시타고 2시간30분 후 심양(Shenyang) 공항에 도착해서 서둘러 출구로 나오니 만나기로 한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북한 비자를 대사관이 없는 호주에서는 받을 수 없어 중국 심양의 북한 영사관을 통해 발급받는데 북한 참사관이 심양공항에서 전달해 주기로 했었다. 김씨가 먼저 참사관을 만나 내 비자까지 같이 받아서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비자비와 비자 수속및 전달 서비스비로 미화 160달러(호주불 약 250달러)를 지불했다. 비자받기위한 비용이 상당히 비쌌지만 이제 북한 비자까지 받고나니 정말 북한을 간다는 실감이 났다.


그리고 심양공항에서 북한에 들어가는 또 한사람을 만났는데 통일티브이 대표인 진천규 기자였다. 이분은 북한을 17회나 다녀왔다고 하는데 현재 미국 영주권자 신분이라 북한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일단 평양행 고려항공 체크인을 마치고 게이트 찾아 들어가는데 출발 시간이 1시간 가량 남아 공항 식당에서 셋이서 신라면과 만두와 케잌한쪽을 점심으로 시켜 먹었다. 중국이라 음식 값이 쌀거라 생각해서 내가 사기로 했는데 호주달러로 39달러가 나왔다. 간단한 점심값이 꽤 비싸단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평양으로 향하는 고려항공을 탑승하는데 처음보는 여승무원들의 모습이 정말 예쁘고, 남한 여성들과는 뭔가 느낌이 다른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먼저 다녀온 이금주 선생의 글이 생각나 감히 사진을 못 찍고 있다 멀리있는 한 승무원을 소심하게 한컷 살짝 찍고 얼른 핸드폰을 닫았다. 승무원이 나누어주는 로동신문과 영문 잡지를 받아 보니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와있고 어느 농장을 현지 지도했다는 기사가 나와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곧바로 샌드위치와 음료를 제공해 주어 처음 북한 음식으로 샌드위치와 탄산단물을 맛 보았다.


심양에서 평양까지는 1시간 정도의 짧은 거리지만 고려항공의 단독 항로이어서 비행기 값으로 호주불 639달러(미화 약500달러)를 지불했다. 비행기 창 넘어로 북한땅이 보이고 압록강이 보인다. 드디어 북한에 왔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우리와 함께할 안내원과 기사와 함께

평양 도착과 평양호텔 숙박 10월 9일


통일되기 전엔 가볼 수 없는 금지된 땅이라고 생각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에 와서 조선의 심장이라 불리는 평양에 드디어 도착했다.


약간의 긴장과 흥분된 마음으로 미리 작성한 입국카드와 세관신고서 그리고 검역신고서를 여권과 함께 출입국 관리소에 제출하고 입국 수속을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호주에서 왔다는 것을 안 직원이, 며칠 전 스웨덴에서 있었던 북미핵협상 실무자 회담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이번엔 조선이 미국의 변하지 않은 입장을 이유로 회담을 일방적으로 결렬시켰고, 미국은 도리어 회담을 지속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내어놓았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난번 하노이에서의 굴욕을 미국에 그대로 되갚아 주었다고 한다고 전해주었다. 직원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인다.


출국할 때도 다른 직원이 호주와 조선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보아 출입국 직원들은 조선의 국제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은 듯하다. 반면에 우리를 안내했던 해외동포국 직원과 운전기사는 이런 국제관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보였다.


출입국 문을 통과해 세관신고를 하는데 손전화기를 주라고 한다. 순간 비행기에서 승무원을 몰래 찍은 게 문제 되는 거 아닌가 살짝 긴장이 되었다. 가지고 간 두 개의 핸드폰을 전해주니 다른 데스크에서 검사하고 주겠다고 한다. 비밀번호를 열어 검사관에게 주니 사진과 동영상을 빨리 살펴보더니 문제없다고 돌려주어서 한숨 놓았다. 한 서양인은 읽던 책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중에 안내원에게 뭘 보는 거냐고 물어보니 여자 나체 같은 이상한 영상물이 있나 보는 거란다. 노트북에 영화가 들어있어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고 보관하다가 나갈 때 돌려준다고 한다. 조선인민들의 사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본주의 문화는 철저히 통제하는 것 같다. 조선을 방문하실 분들은 핸드폰에 혹 남몰래 보려고 야동 숨겨놓은 것 있으면 꼭 지우고 보여주시라.


출국장 밖으로 나오니 우리 안내원과 운전기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난 후 통일교 문선명이 투자해 조선에 조립공장을 설립해서 만들었다는 평화자동차를 타고 순안 공항을 빠져나와 평양을 향해 달린다.


날씨는 선선하고 화창하다. 중국 상하이와 선양의 뿌연 하늘과는 대조되게 평양의 하늘이 선명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낮은 건물들을 지나 코스모스 핀 시골길을 따라 한동안 달리다 보니 눈앞에 평양시의 높은 건물들이 보인다. 작년 9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 시민들이 TV를 통해 고층건물들이 늘어선 평양시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처럼 평양시는 현대식 고층 건물들로 꽉 들어찬 아름다운 도시였다.


조선에서의 첫날밤 숙소는 대동강변에 있는 평양호텔이다. 주로 재일동포들이 머무는 호텔이라고 하는데 너무 크지도 않고 직원들도 친절하다. 체크인하고 키를 받으니 제복을 입은 직원 둘이 우리 일행 두 명의 짐을 들어다 준다. 팁으로 1불씩 주고 방으로 들어와 보니 장판바닥이 깨끗한 방으로 창 밖으론 노래로만 들어왔던 한 많은 대동강이 보이고 아름다운 한옥으로 지어진 평양 대극장이 보인다. 호텔방에서 우선 핸드폰 충전할 수 있는지 콘센트를 확인해 보니 220V와 110V 두 가지가 다 있고 호주에서 가져간 충전기를 아답터 없이 바로 꽂을 수 있다. 멀티 아답터 콘센트로 되어 있어서 어떤 것도 다 가능한 듯했다. 욕실엔 수건뿐 아니라 치약 칫솔과 빗과 샴푸 린스 비누가 다 비치되어 있다. TV를 틀어보니 정부 채널 하나뿐이고 인터넷 와이파이는 없다. 인터넷은 쓸 수는 있는데 미리 신청해야 하고 가격도 최소가 200불이 든다고 해서 일주일간 인터넷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저녁 식사는 우리가 긴 여행으로 피로하다고 생각해 안내원이 우리를 평양호텔 내에 있는 식당으로 안내한다. 우선 그토록 궁금했던 대동강 맥주를 먼저 시켰고 식사는 안내원이 주문한 청국장을 나도 시켰다. 특별하게 조리된 청국장에 밥을 비벼 먹고 대동강 맥주를 한잔하니 여기까지 오기 위해 수고한 온갖 수속 절차와 20시간의 긴 여행이 마침내 보상받은 것 같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한식이 항상 그리운데 조선의 여행은 관광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싼 값에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조선에서의 첫날이 꿈처럼 지나간다.


평화자동차
평양호텔

평양 시내 관광 10월 10일 오전

- 대동강, 모란봉과 을밀대


평양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식사 전에 안내원 동무와 함께 호텔 가까이에 있는 대동강 강둑을 따라 산책을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대동강에서 낚시를 하기도 하고 배드민턴을 치기도 한다. 대동강은 서울의 한강과 비슷한 폭을 가진 큰 강으로 평양을 가로질러 흘러간다. 그런데 흐르는 대동강 강물을 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물이 탁하고 부유물이 많은 것이 수질 상태가 상당히 오염된 듯 보인다. 옛 조선시대엔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을 팔아먹었다는데 지금은 수질이 나빠 물을 마실 수 없을 뿐 아니라 낚은 물고기도 먹어선 안될 듯싶다.


돌아오는 길에 나이 들어 보이는 부부가 아홉 살 된 여자아이와 함께 산책하다가 내가 관광객으로 보였는지 나에게 Hello 해보라고 한다. 영어 공부를 좀 해서 영어로 대화를 시켜보고 싶어 하는 듯해서 아이에게 영어로 인사하고 몇 가지 물어보니 꽤 영어를 잘한다. 궁금해서 어디에서 영어를 배웠느냐고 물어보니 런던에서 3년을 살면서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아마 부모가 외교관으로 영국에서 살다 온 것이 아닌가 짐작되었다. 아이와 부부의 사진을 기념으로 한 장 찍고 작별인사를 한 후 호텔로 들어왔다.


아침식사를 위해 평양호텔 식당으로 가보니 무척 화려하고 큰 홀이다. 오늘은 특별히 쌍십절 국경일(조선로동당 창건기념일 10월 10일)이라 호텔 입구와 식당 홀에 축하글씨를 부착해 놓아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식당홀의 준비된 자리에 앉으니 토스트 빵과 버터, 딸기잼, 쌀죽, 샐러드, 요구르트와 오믈렛을 커피와 함께 가져다준다. 푸짐하게 아침을 먹으면서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큰 식당 홀에 손님이 몇 테이블뿐이다. 홀 중간 테이블에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아무도 제재를 하지 않는다. 놀라서 안내원에게 물으니 조선에선 식당이나 호텔방, 차집등에서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한다.


세계를 여행하며 알게 된 현상 중 하나가 식당이나, 숙박업소 같은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얼마나 자유롭게 피울 수 있는지, 흡연을 금지하는지에 따라 후진국인지 선진국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것이다. 조선공화국은 이런 걸 볼 때 확실히 후진국에 속하는 것 같다.


아침 식사 후 북한에서의 첫 관광은 그 유명한 '한 많은 대동강' 노래 가사에 나오는 대동강과 모란봉, 을밀대와 부벽루를 보는 것이다. 이번 여행 시 꼭 가서 보고 영상으로 생생하게 찍어 오리라 다짐했던 곳들을 오늘 직접 간다니 기대감으로 가슴은 설렌다.


평양의 중심거리인 창전거리를 지나 모란봉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평양 시민들의 바쁜 출근길 모습은 활기가 넘쳐 보인다. 평양에만 있다는 무궤도 전차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정류장에 길게 줄 서 있기도 하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기도 한다.


거대한 한옥스타일의 건물이 보여 이름을 물으니 인민대학습당(도서관)이라고 한다. 또한 언덕 위에 커다란 동상 두 개가 서 있어서 어디냐고 물으니 만수대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동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절대 안 되고 손가락을 다 펴서 우러러보듯 가리켜야 한다고 한다. 또한 만수대를 갈 때면 옷을 정장으로 입고 가야 한다.


모란봉 정상엔 대동강과 평양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을밀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을밀대란 이름은 옛날 고구려 때 을밀선인이 이곳에서 도를 수행했다는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안내원과 을밀대로 가는 길을 걸어가면서 조선의 국화가 모란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란봉극장도 보았다.


을밀대로 가는 길에 칠성문이 있는데 이곳에서 모란봉에 답사 나온 듯한 중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들을 만났는데 내가 비디오 촬영하면서 인사하니까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면서 부끄러운 듯 웃는 얼굴들이 어릴 적 고향 마을의 순진한 아이들 모습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순간 따뜻해져 왔다.


을밀대에 올라가니 대동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평양이 보이는데 어디서 함성소리가 들려와 아래를 내려다보니 김일성경기장에서 10월 15일에 있을 남북 월드컵 예선 축구경기 응원연습 중이었다. 우리도 경기를 참관할 계획이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유엔 경제제재로 한국에서 중계료를 현금으로 줄 수 없다고 해서 결국 무관중으로 경기가 치러져 우리도 경기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대동강 강변에서 베드민턴 치는 사람들
산책하는 평양시민
모란봉에 있는 을밀대


금강산 가는 길 풍경과 원산 송도원 식당 10월 11일 오전


오늘은 드디어 꿈에도 그린다는 금강산을 향해 출발하는 날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 평양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싸서 호텔 체크아웃을 했다. 2일 숙박비로 미화 150달러를 지불했는데 생각보다 저렴하다.


짐을 차에 싣고 8시 30분에 출발했다. 평양에서 금강산까지는 330킬로 정도 거리로 서울-광주 거리 정도인데 한국에서는 4 시간이면 갈 거리지만 도로 사정이 열악해서 7 시간이 걸린다. 평양의 아침 출근길은 부산하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꼿꼿이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들 어딘가를 향해 행진하는 것처럼 보이고, 대동강을 따라 난 뚝길엔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자전거를 타고 힘차게 달린다. 평양 시내 도로엔 차는 많지 않아 교통체증은 없지만 무궤도 전차와 버스들이 사람들을 가득 싣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거리 어디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어슬렁 거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평양 시내를 빠져나와 원산을 향해 덜컹거리는 도로를 열심히 달린다. 고속도로일 텐데 도로포장 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 시멘트로 듬성듬성 포장했는데 군데군데가 파이고 틈이 벌어져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듯 차가 요동을 친다. 우리가 앉은 뒷좌석에는 안전벨트도 없어 손잡이를 꼭 붙들고 가지만 파인 도로를 지날 때마다 몸이 솟구치고 심하게 흔들린다. 도로에는 차선도, 제한속도 표시도 없고 대부분의 터널에는 전등도 없다. 중간중간 파인 도로는 사람들이 장비도 없이 망치로 깨뜨려 시멘트를 채워 넣어 도로를 땜질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었고 사람들은 벼 수확으로 바쁘다. 낫으로 벼를 베어 논에 세워두고 또는 길가로 가져 나와 볏단을 쌓아 놓았다. 사람들은 자전거에 물건을 싣고 달리고 볏단을 싣고 가는 소달구지도 종종 보인다. 70년대에 내가 살던 시골에서 보던 그 모습이다. 길가엔 코스모스가 피어있고 고장 난 차량을 세워두고 수리하고 있는 낡은 트럭들도 즐비하다. 깜깜한 터널 속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을 지나칠 땐 너무 위험해 보여 깜짝 놀라기도 한다.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경제제재가 어서 풀려 한국의 장비들이 들어와 도로를 정비하여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다.


평양에서 금강산을 차로 여행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옛 시골에 대한 향수와 이곳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교차한다. 평양의 모습과 시골의 모습은 한국의 현대와 과거의 두 세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원산 가는 길 중간에 신평휴게소에 잠깐 들렀다. 아름다운 강가에 자리 잡은 작은 휴게소인데 70년대의 군내 휴게소를 연상케 한다. 주머니에 화장지를 준비하고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본 후 물을 한 바가지 붓는 위생실(화장실)이 추억을 소환한다. 매점에는 여러 가지 음료와 과자류를 팔고 특별히 말린 고사리와 고비, 두릅, 도라지, 참나무 버섯등과 구기자를 판다. 평양보다 훨씬 저렴하여 구기자와 버섯과 나물을 여러 봉지씩 사서 한 가방 호주로 가져왔는데, 참나무 버섯이 특별히 향이 진하고 맛이 좋다는 아내의 후기다.


신평 휴게소를 출발해 조선시대에 마른 명태로 유명했던 살기 좋다는 원산에 도착해 송도해수욕장이 있는 송도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산은 해안 도시로 해산물이 유명한 곳이고 도미탕이 맛있다고 해서 도미탕을 주문하고 가을이라 송이도 있다고 해서 송이와 김치 그리고 종합나물을 시켰다. 주인아주머니는 아주 호탕한 사람인데 낙지(오징어) 무침과 명란젓을 인사(서비스)라고 함께 준다.


먼저 맥주, 소주와 함께 종합나물(도라지, 고비, 두릅)과 송이 볶음, 김치, 오징어무침과 명란젓이 나와서 맥주 한잔에 반찬을 먹어보니 모두 아주 맛이 좋다. 김치맛은 맵지도 짜지도 않고 잘 익어 아주 상큼하고 명란젓과 오징어무침은 삼삼하고 나물은 아주 부드럽고 송이는 맛과 향이 예술이다. 그리고 메인요리 도미탕이 나왔는데 큰 도미 반토막이 들어있어 푸짐하고 정말 황홀하게 맛있는 게 지금껏 먹어 본 생선탕 요리 중 최고의 맛이다.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4명이서 하고 계산서를 보니 미화 48불이다. 비싼 송이와 맥주와 소주를 곁들인 4명의 풍성한 식사비론 얼마나 착한 가격인가! 평양 광천연풍식당의 가물치 샤브샤브에 이어 북한 맛집으로 원산의 송도원 식당 도미탕이 내 리스트에 올랐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일단 원산 송도원 식당에서 도미탕 한 그릇 먹고 나서 금강산 구경하면 금강산이 더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원산 가는 길 들녁
신평 휴게소
송도식당 도미탕


금강산 구룡연 관광 10월 12일 오전

- 삼록수/옥류동/구룡폭포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인 금강산 구룡연과 만물상을 보는 날이다.


금강산 고성항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서 숙소 주위를 산책한 후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가니, 우리를 위해 특별히 금강산 산채 비빔밥을 분탕잡채와 오리고기, 명태조림, 돼지고기 두부조림, 고사리나물, 오이무침과 유란(계란프라이)까지 한 상 차려준다. 전날 밤 내가 산채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메뉴에도 없는 비빔밥을 특별히 준비해 준 것이다. 그들의 정성에 감동의 식사를 한 후 고마운 마음에 서빙해준 봉사원 처자에게 밖에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여 사진을 찍으면서 팁을 살짝 손에 쥐어주었다.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나올때 식당쪽을 무심코 보았는데 그 봉사원 동무(강현희)가 우리를 보고 잘가라는 눈인사를 하여 나도 손을 흔들어 주고 고성항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나와서 배은심 금강산해설원을 다시 차에 태우고 구룡연 주차장까지 올라가 차를 주차한 후 상점에서 2달러를 주고 지팡이를 하나 사서 구룡폭포와 상팔담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해설원이 말하길 백두산은 화산 분출로 생겨난 산인 반면 금강산은 1억년 전에 화산이 분출을 하지 못하고 식어서 그대로 생겨난 화강암의 바위산이라고 한다. 봄엔 새싹이 움터나고 만물이 소생하며 880여종의 꽃이 피는 산의 모습이 보석중의 최고인 금강석 같다해서 금강산이라 부르고, 여름엔 녹음이 우거지고 흰구름과 안개가 봉우리와 절벽을 감고 도는 것이 신선과 선녀가 살고 봉황이 날아드는 것 같다고 해서 봉래산이라 부르며, 가을엔 산이 타듯 골이 타듯 온 산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풍악산이라 부르고, 겨울엔 나뭇잎이 다 떨어진 모습이 뼈만 남은 것 같다해서 개골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눈이 와서 흰 눈으로 뒤 덮인 모습으로 인해 설봉산이라고도 불린단다.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의 높이는 1639미터이다.


구룡연의 기본 경치는 물 경치인데, 천길 벼랑위에서 뚝 떨어지면 폭포고, 누워 흐르면 비단필이고, 부서져 떨어지면 구슬이고, 바람에 날리면 안개고, 고이면 담소고, 마시면 약수라고 하는데 계곡을 오르다 보니 이 말이 이해되었다.


기품있는 소나무들이 늘어선 수림대를 지나 하늘만 우러러 본다는 앙지대를 지나니 수정같이 맑은 물이 화강암 계곡을 따라 흐르고 움푹파인 담소에서는 물이 에머랄드 빛으로 반짝이는데 물이 너무맑아 물고기는 살수가 없다. 삼십분쯤 올라 산삼과 녹용이 녹아 흐른다는 삼록수 약수터에 이르러 물을 한모음 마셔보니 정말 시원하고 맛이좋은 약수다.


금강산의 진짜 경치가 펼쳐진다는 금강문을 지나 구룡연 계곡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옥류동에 이르니 정말 옥구슬이 계곡을 흘러 가는 것 같다. 조금 더 올라가니 선녀가 구슬 두개를 떨어뜨려 생겨났다는 두개의 담소인 련주담과 봉황이 날아가는 것 같다해서 붙여진 비봉폭포가 나온다. 계속해서 오르니 은실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는 은사류가 있고 그 위쪽에는 구슬로 만든 커튼(문발) 같다해서 붙여진 주렴폭포가 나온다.


이렇게 2시간쯤 올라가니 드디어 가파른 계단위에 서있는 정자, 관폭정이 보이고, 관폭정에 오르니 한국의 3대 명폭에 속하는 구룡폭포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진다. 아홉마리 용이 승천하는 것 같다고 해서 구룡폭포라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폭포를 바라보니 과히 용이 꿈뜰거리며 하늘로 오르는 듯 한 모습이다. 높이 74미터 폭 4미터의 폭포 아래는 수 천년간 폭포의 물이 화강암 바위에 떨어지면서 만들어낸 13미터 깊이의 구룡연 담소가 있다.


놀랍게도 관폭정 정자안에는 작은 자판을 놓고 커피와 스낵을 파는 사람이 있다. 우리 일행 4명은 믹스커피를 한컵에 2달러씩 주고 사서 마시면서 구룡폭포를 오랫동안 감상하고 내려와 상팔담을 향했다.


마지막으로 방랑시인 김삿갓이 구룡연으로 올라가다 물소리를 듣고 지었다는 시 한편을 감상해보자.


한걸음 두걸음 세걸음 골마다 서서 정신 잃고 바라보니/ 산은 푸르고 돌은 흰데 사이 사이엔 꽃이 반겨 웃는구나


만약 저 경치를 본따서 화공에게 그림을 그리라 한다면/ 시냇가에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는 또 어떻게 할꼬


금강산 안내원과 함께
고성항 숙소 식당 봉사원과 함께
옥류동
구룡폭포

금강산 관광 10월 12일 오후

- 상팔담, 만물상


금강산 최고의 절경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구룡폭포 위에 있는 상팔담이라고 말할 것 같다. 두 시간 정도 감탄을 연발하며 구룡연계곡을 걸어 올라가면 금강산의 최고명폭인 구룡폭포가 나오고, 그곳에서 30분을 더 올라가면 상팔담이 나오는데 상팔담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그야말로 절경중의 절경이다.


"말과 노래가 끊어진 곳에 금강산이 솟았다"는 의미를 상팔담에 올라 금강산을 내려다 보면 알수있다. 그 황홀한 광경은 'Out of this world'의 모습같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구슬처럼 아름다운 애머랄드빛 여덟개의 담소가 화강암 바위 웅덩이에서 금발미녀의 푸른눈처럼 빛나고, 깎아지른 바위들과 사이 사이에 울긋불긋 물든 단풍나무들은 화려하게 치장한 미인의 모습 같다.


우리를 안내한 금강산 해설원이 상팔담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고 팔담가 노래를 직접 불러주는데 그 노래가 풍경과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답게 울려퍼진다.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서 나뭇가지에 날개옷을 걸어두고 목욕을 하였다는 전설이 왜 이곳에서 생겼났는지 상팔담에서 담소를 내려다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상팔담에서 30분 넘게 우리 일행 4명만이 오로지 이 경치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남한의 금강산 관광이 금지되었고 북한 경제제재로 일반 관광객들이 아주 소수만 금강산을 찾기 때문이다.


언제 다시 남한의 금강산 관광이 다시 재개 될지 모르지만 아마 그때가 되면 이번 나의 여행처럼 특별 대우를 받으면서 여유롭게 금강산을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번 조우한 금강산은 오랫동안 신비속에 살던 전설속 미인을 비밀리에 만난 느낌이었다.


상팔담을 올라가는 30분 거리의 길은 좀 가파른 계단을 여러번 올라가야 해서 조금 힘들 수있지만, 해설원이 말하길 이전에 70대 할머니도 올라왔다하니 절대 포기하지 말고 금강산에 가면 꼭 상팔담까지 올라가보길 바란다.


상팔담에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면서 해설원에게 북한 노래를 하나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불러준다. 단순한 멜로디지만 강렬한 가사의 내용이 좋아 산을 내려오면서 계속 따라 배웠었다. 그리고 호주에 돌아와서도 혼자 산책하면서 또는 운전하면서 계속 불렀는데 지난 주 문득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인 '사랑의 불시착'을 보고있을때 이 노래가 흘러나와 무척 반가웠다.


"인생에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 아 아 그런사람 나는 못잊어.

오랜세월은 함께 있어도 기억속에 없는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 아 아 그런사람 나는 귀중해."


구룡연 입구 주차장 가까이에 있는 목란관 식당에 이르러 늦은 점심을 하기로 했다. 목란관의 별식인 뜨거운 돌에 구워먹는 양념 돼지세겹살과 도토리묵, 금강산 송이구이등을 대동강 맥주와 함께 주문하여 먹고 바로 다음 코스인 금강산 만물상코스로 향했다. 만물상 계곡의 풍경은 구룡연과는 달랐다. 구룡연이 아름다운 여인의 풍경이라면 만물상은 우람하고 강인한 남성의 풍경이었다. 만물상의 최고봉은 천선대인데 왕복 4시간 거리라 시간이 부족해서 만물상의 70프로를 볼수있다는 귀면암까지만 가기로 했다. 만물상 입구에는 장군바위가 지키고 있었고 신선 세명이 바위가 되었다는 삼선암이 기품있게 서있었다. 마지막으로 귀신의 얼굴 모양을 하고있다해서 이름붙여진 귀면암을 본 후, 천선대 정상까지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만물상을 내려와 금강산 안내소에서 해설원과 헤어지면서 내년에 꼭 다시와서 만물상 정상까지 가 보겠노라고 약속했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져 오고 우리는 오늘밤 숙소인 원산 동명려관을 향해 서둘러 출발했다.


지금도 눈에 아른거리는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떠나오면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만물상을 제대로 다 보지 못한것과 금강산 온천에 가보지 못한것이 특히 아쉬웠다. 봄에 다시올때는 금강산 일정을 여유있게 잡아 충분히 즐길수 있도록 해야겠다. 어느덧 어둠이 금강산에 내려 앉았고 원산 숙소로 향하는 길에는 가로등도 없는데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북녘동포들은 줄지어 길가를 걷고 있었다.


상팔담
상팔담에서
귀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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