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4편
연꽃/ Linda Shin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게 한 너
여릿여릿 조그마한
꽃 한 송이가 빼죽이 나와
나의 시선에 들어왔다
캠시에서 브리즈번으로
비행기 제일 뒷좌석에 숨어있다
승무원의 제지로
강제 이동을 당해
내릴 때는 물이 흥건히 흘러
서로를 당황케 했다
승무원들이
한국인임을 알고는
BBQ를 좋아한다고
브리즈번의 음식점을 알려달라며
초콜릿도 주고 웃음으로 마무리되어
공항을 나왔다
우여곡절 우에 우에
소중히 모셔와
그동안 얼마나 갈증을 느꼈을까
물을 주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애지중지 사랑을 주었다
한송이 피면 지고
한송이 피면 지고
또 한송이 피면 지더니만
그들의 올여름 여행을
끝으로 가을에 잠드려 한다
이파리만 남기고
더 이상 나오질 않네
돌아오는 여름에는 또 찾아오려나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련다
구름/ Linda Shin
하늘빛 위에 하얀 구름들이
뜨개질하듯 자수를 놓고
자연이 빚어낸 수많은 장신구들이
생각 못 한 모양으로 태어난다
강아지, 고래, 용머리,
그러나 흩날리는 꽃가루처럼
넓게 흩어지는 구름들,
너는 어쩌면 천재였는지 몰라
님이 집에 가는 길에
너와 마주치면
한 폭의 치맛자락처럼 붉게 물들어
너는 세상 으뜸의 화공이었을 거야
따스한 햇빛, 산뜻한 기분이 드는
파아란 하늘,
곧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이
모여들겠구나
곧 비가 오려나
먹물을 흩뜨려 놓은 듯한 하늘이
남쪽으로 모여들고
석양이 느릿느릿 넘어간다
눈부신 노을은 바람의 향기가 되고
빨갛게 달아오른 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이제 달님이 마중 나오려 한다
소리/Linda Shin
해 오르면
동그란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밤새,
유칼립투스 잎에 취해
노래하는 소리
아이고~ 예뻐라
아이고~ 예뻐라
새야
너는 그 나뭇잎을
떨구지 말아라
뒹구는 낙엽이
사부작 사부작
소리를 만들고
너는
다른 구름 속으로
숨을까 슬프다.
나의 추억/ Linda Shin
요즘 축구가 한창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2002년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떠 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홀로서기를 시작하며 유난히 힘들던 때였지요.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정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시기였습니다.
친구와의 불화로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가진 것 전부인 이불 한 채를 옆구리에 끼고 아는 동생과 여행가방을 밀며 울릉가바, 퀸스랜드의 오래된 집으로 이사하던 날이 있었습니다. 휴대전화에 카카오톡도 없고, 한국 TV도 볼 수 없던 시절, 세상과 뚝 끊긴 듯한 막막함 속에서였습니다.
짐을 풀던 중이었습니다. 밖이 유난히 소란스러워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저마다 국기를 어깨에 두르고 들뜬 얼굴로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해 있는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빨리 나오라고, 시티가 완전 한국 축제 분위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분도 꿀꿀하던 참이라 바람이나 쐴 겸 나가 보았습니다. 헝그리잭 옆에는 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었고, 어디서 다 모였는지 브리즈번의 한국인들이 모두 집결한 듯했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빨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지요. 바로 그 유명한 2002년 월드컵 4강전이었습니다.
원래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던 저였지만, 이사하느라 쌓였던 피로도 잊은 채 그 열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모르는 사람과도 서로 껴안고 어깨동무하며 춤을 추니, 그야말로 축제 그 자체였습니다. 비록 4강에서 멈췄지만 우리는 마음껏 환호했습니다. 어디선가 꽹과리와 북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강강술래를 돌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짜릿함은 지금도 또렷합니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알게 된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날의 시티 축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누나, 그때 북 치던 사람이 바로 저예요.”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포츠 중에서도 축구는 참 신기합니다. 흩어져 살던 사람들을 한순간에 한민족으로 묶어 주니까요. 없던 애국심도 불쑥 솟아나 애국자가 되게 합니다. 힘들던 타향살이 속에서, 저는 그렇게 축구를 통해 평생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