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6편
우리 동네 명소/ 주덕빈
브리즈번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불꽃놀이 행사가 이곳의 명물인 브리즈번 강 근처에서 열린다고 했다. 한 달에 두 번 발간되는 브리즈번 뉴스에는 각종 이벤트 소개가 많은데 이런저런 핑계로 그동안 ‘강 건너 불구경’식으로 지나쳤었다.
그런데 올해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브리즈번에 와서 우리와 함께 사는 젊은 친구들이 흥미를 갖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한번 가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티는 평소에도 복잡한데 행사가 있는 날은 더 복잡할 것 같아 운전은 엄두가 안 나고 운동 삼아 걸어가자니 아내가 싫어할 것 같았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택시를 이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민폐일 것 같아 망설이는데 아내가 불쑥 “동네 언덕에 가면 볼 수 있을걸.” 했다.
“아! 거기 좋겠다.” 맞장구치며 사전 답사를 제안했다.
브리즈번의 지형은 롤러코스터 같아서 같은 동네라 해도 집마다 고도의 차이가 상당하다. 한국처럼 눈이 온다면 위쪽의 차들은 꼼짝 못 할 정도다. 다행히 이곳은 눈이 없고 높은 곳일수록 전망이 좋아서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언덕 위의 집을 선호한다고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땅은 평평해야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올챙이 이민자인 우리는, 우연찮게 경사가 가파른 집을 방문하고부터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 집은 겉보기에는 평범했지만 내부에 들어서니 전망이 좋아 휴양지처럼 느껴졌었다.
집 보는 안목이 조금 넓어지기는 했지만 전망 값이 비싸니, 두 번째 이사 역시 평평한 낮은 곳으로 왔다. 그래도 시티와 가까워서 차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돌다 보면 시티가 훤히 보이는 지점들이 몇 군데 있어, 가끔 차를 멈추고 한눈에 들어오는 주변 경관을 감상했는데 그 점을 착안하여 아내가 불꽃놀이 관람을 제안한 것이다.
집으로부터 완만하게 경사진 도로를 2~3분 걸으니 집과 집사이로 시티가 언뜻언뜻 보였다. 잘 가꾸어진 부잣집 정원을 구경하며 언덕의 정점에 도착했을 때는 숨이 가빴지만,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갑자기 한기가 돌 정도로 아래와 위쪽은 기온이 달랐다.
가깝게 브리즈번의 명물인 스토리 브리지(Store Bridge)가 강철의 위용을 자랑하며, 그 주변으로는 시티의 높은 건물들이 경쟁하듯 도열해 있고 강 건너 사우스 뱅크의 일부도 보였다. 이만하면 충분히 편하게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소를 결정하니 내용이 궁금했다. ‘불꽃 축제를 즐길만한 안성맞춤인 장소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까? 구경꾼이 많아야 어울리는 재미가 있는데 이 동네 사람들은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까?’ 등등 다가올 저녁 7시가 기다려졌다.
저녁 6:50분쯤, 우리는 10분쯤 걸어 답사 지점에 도착했고 거기 모인 인파에 깜짝 놀랐다. 집 앞 잔디밭은 물론 오르막 차도까지 사람들로 가득했고, 군데군데 음악 소리는 축제분위기를 고양시켰다. 9월의 저녁 바람이 아직도 차가워서 담요를 두른 아이, 두꺼운 털옷을 입은 노인, 맥주나 와인을 들고 흥에 겨워 음악에 박자를 맞추는 반팔 차림의 젊은이들까지 동네사람이 모두 모인 것 같았다. 우리는 스토리 브리지가 잘 보이는 오르막 차도에 자리를 잡았다.
라디오에서 카운트-다운을 알리자 모인 사람들은 손을 높이 들고 소리를 높여 합창했다. “ 5,4,3,2,1와!!”
스토리 브리지에서 시작된 불꽃은 삽시간에 시티로 그리고 맞은편 사우스 뱅크까지 형형색색으로 번져나갔다.
팡팡 튀는 불꽃을 숨죽이며 때론 환호하며 20분 정도 즐기다가 한꺼번에 자리를 뜨면 복잡할 것 같아 미리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시티 쪽만 바라보다 뒤쪽을 보니 더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높은 곳에 위치한 집 베란다에 가족들이 음악을 크게 틀고 행인들에게 손을 흔들며 마음껏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이웃이라도 반갑게 인사하고 자리를 나누며 함께 즐기는 모습이 하늘 높이 솟은 불꽃만큼 아름다웠다.
집을 향해 내려오는 길, 불과 7~8분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들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행인들의 들뜬 발걸음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득 그 장소를 알아낸 아내의 눈썰미가 고마웠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만한 좋은 장소가 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집안에 머물기만을 고집했다면 이 가슴 벅찬 소속감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스스로 찾고 노력하면 얼마나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인가? 이방인이고 낮은 곳에 살아도 열린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 언덕 또한 고마웠다.
내 사랑 룰루/ 주 덕빈
룰루의 퍼피스쿨(Puppy School) 졸업식 날이다. 졸업식인데 꽃 없으면 서운할 것 같다고 아내는 꽃 머리띠를 목걸이로 만들어 준비하고 쉐어 식구들과 함께 떠들썩하게 훈련장에 갔다. 트레이너는 졸업식을 위해 검정색 학사모와 메달을 준비했는데 싫다고 물어뜯고 날뛰는 룰루를 달래서 겨우 사진 몇 컷 찍었다. 졸업인증서와 기념품 그리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차에 올랐다. 사진 찍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룰루는 이내 아내 무릎에서 잠들었다.
룰루는 8개월 된 우리 집 강아지로 6개월 전 지인을 통해 분양받았다. 어렸을 적 ‘뽀삐’라는 강아지와 산책하며 운동했던 즐거운 추억이 많아 더 나이 먹기 전에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었다. 근처에 개 공원도 있고 뒷마당도 넓어서 강아지 키우기에는 좋은 조건인데, 나만 좋다고 데려올 수는 없어 가족의 의견을 물었다.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반면, 아래층 쉐어 여성들은 반색하며 심지어 본인들이 돌볼테니 걱정 말라고 아내를 설득하기까지 했다. 모두 적극 찬성하니 아내는 할 수없이 승낙해서 한 식구가 되었다.
눈 크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강아지가 귀엽고 신기했는데 당장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고 할 일도 많았다. 우선 배변훈련이 급했는데 뒷마당이 잔디밭이니 그곳에서 해결하면 좋을 것 같아 1층 세탁실에 텐트를 치고 3개월 동안 강아지와 함께 잤다. 새벽에 한 두 차례 일어나서 용변 보는 반복 훈련을 통해 배변문제는 확실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것만 해결하면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좀 커지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짖어댔다. 공교롭게도 옆집 앞집이 공사 중이라 각종 소음이 끊이지 않으니 같이 소리치기로 작정한 듯 짖었다. 밤이면 괜찮을까 싶었는데 뒷마당 큰 나무에 야행성 포섬가족이 살고 있으니 세(勢)를 과시하듯 심심하면 또 나가 짖었다. 바람 불어 나무가 흔들리거나 빨래가 펄럭이거나 심지어 하늘에 달이 뜨는 것도 신기한지 혹은 두려운지 끝없이 짖었다.
룰루가 짖을수록 아내의 잔소리와 볼멘소리는 늘어났고 마침내 그녀는 “둘이 나가라”며 화를 냈다. 가족은 물론 이웃에게까지 민폐를 끼치니 유튜브를 뒤적이며 ‘짖을 때 교육’하는 법을 시도해 봤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퍼피 스쿨에 가면 특별한 교육법이 있을까 싶어 조카딸의 도움을 받아 등록했다. 매주 토요일 1시간씩 5주 과정으로 생각보다 가격이 쌌다.
‘이 과정을 마치면 좋아지겠지’ 크게 기대했는데 트레이너는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교육시켰다. 강아지 교육은 반복과 보상이라고 했다. 이름 부르기, 매트에 앉히기, 기다려, 누워, 인형 물어오기, 산책하기 등 끊임없이 반복하고 칭찬하며 조금씩 상황에 적응했지만 짖기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수의사에게 조언을 구하니 어린 강아지는 호기심이 많아 1년 동안은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훈련시키라고 했다.
그런 어려움 가운데에도 룰루 덕분에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우선 아침저녁 20~30분 정도 주변을 산책하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동네 이곳저곳을 발로 살피니 주위가 더 친근해지고 자주 만나 인사하는 이웃도 생겼다. 거기에 꾸준한 교육 덕분인지 룰루가 좀 의젓해져 말썽을 덜 피우니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다. 땅 파기를 좋아해 흙투성이 되면 으레 샤워실로 들어가고 흥분해서 날 뛰다가도 지시에 눈치 보며 순한 양이 되기도 한다.
뚝딱 밥그릇 비우고 정해진 자리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는 룰루를 보면 고요와 평화를 느낀다. 이번 주말은 오랜만에 비소식이 없다. 가까운 산에 가서 긴 장마 끝 어렵게 찾아온 가을을 맞이해야겠다.
산책길에서/ 주덕빈
“컹 컹 컹 컹 ......!”
조금 전까지 놀이에 열중이던 룰루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앙칼지게 짖는다. 시계를 보니 4:10분, 산책시간이다. 강아지 키우기는 배변훈련, 사료먹이기 그리고 산책이 매우 중요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룰루는 무엇보다 산책이 필요해서 좀 한가한 오후가 되면 틈틈이 데리고 나간다. 그랬더니 습관이 되어 4시 언저리만 되면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짖어댄다. 정확하게 시간을 알아내는 것이 신기해서 다음 동작을 기대하며 딴청부리면, 조바심 나서 먼저 계단을 내려간다. 그리고 창고에 걸려있는 강아지 목줄과 내 모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빨리 나가자고 조른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 돌며 냄새도 맡고 좋아하는 풀도 뜯고 친구도 만난다. 문제는 사회성이 너무 좋아 만나는 친구나 사람들에게 일일이 아는 체를 한다. 상대방 개는 주인이 “Say Hello?" 하며 강아지에게 의사를 물으면, 그제서야 살며시 다가와 빙빙 돌며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는다. 그런 와중에 룰루는 천방지축으로 앞발을 번쩍 들고 펄쩍펄쩍 뛰며 주위를 맴돈다. 난처해하는 나에게 상대방 주인은 “아직 강아지라서 에너지가 넘치지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라며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선배답게 이해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간다.
‘에너지 넘치며 귀엽고 사랑스럽다’니 덩달아 으쓱해서 때론 끌려 다녀도 어려운 줄 모른다. 밖에서 누굴 만나도 두려워하거나 난폭하지 않으니 일단 안심하며 빨리 자라길 바란다. 좀 자라면 얌전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며 숙제하듯 가급적 비슷한 시간에 산책을 시켰다.
그렇게 동네 골목길을 서너 달 연습시킨 다음, 좀 익숙해진 것 같아 주말에 근처 큰 공원으로 갔다. 새로운 환경이니 우리 부부는 바짝 긴장해서 목줄을 꽉 잡았는데 룰루는 마냥 신기해서 이리저리 날뛰었다. 이런 모습을 본 젊은 청년이 자신의 강아지를 데리고 우리에게 왔다. 목줄이 없어 자유로워 보이는 그 강아지는 흰 바탕에 검정색 무늬의 작은 개로 이름이 ‘도리또’며 7살이라고 했다. 산책길에서 개들을 만나면 으레 나이와 이름을 묻는데 7살이어서인지 산책매너가 아주 좋았다.
‘얼마나 훈련시켰으면 목줄 없이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주인을 따라오는 걸까?’ 신기하고 부러워서 그를 쳐다보았다. 노련한 훈련사인 그는 자신이 우리 강아지를 돌볼 수 있으니 과감하게 목줄을 놓으라 했다. 잔뜩 긴장했지만 그를 믿고 목줄을 놨다. 동시에 대 자유를 얻은 룰루는 오빠(도리또)를 따라다니며 뛰고 뒹굴며 즐겁게 놀았다. 도리또 또한 덩치는 작지만 우리 강아지를 리드하며 잘 데리고 놀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 지 지켜보던 우리는 안심하고 박수치며 좋아했다.
그는 간단하게 두 강아지를 몇 바퀴 뛰게 한 다음, 오후 5시에 동네 개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처음 개를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개들끼리 자주 어울려서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하라고 조언하며 룰루의 목줄을 잡고 앞장섰다. 걱정 반 기대 반, 든든한 그를 믿고 따라가니 정말 많은 개들이 큰 운동장에 모여 끼리끼리 냄새 맡으며 뛰고 뒹굴며 놀고 있었다. 주인들 역시 삼삼오오 정담들을 나누는 모습이 마치 유치원 학예회 같았다.
사냥개 종류의 큰 개를 비롯하여 작은 개까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룰루를 보았다. 나름 환영식인데 큰 개를 본 순간 꼬리를 바짝 내리며 긴장하던 룰루는, 젊은 청년의 손짓에 따라 한숨 고르더니 이내 무리에 섞여 바쁘게 뛰어다녔다. 가끔씩 멈춰 두리번거리며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 같아 손을 번쩍 들어 안심시키며 동태를 살폈다. 역시 룰루는 아직도 상대방 개에게 함부로 달려들어 무리에서 약간 소외당하는 것 같았다. 걱정스러워 달려가면 아직 강아지라서 호기심 때문에 그러니까 걱정 말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어쨌든 노련한 훈련사를 만나 룰루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무리에 섞였을 때의 룰루 행동을 파악한 우리는, 상대방에게 달려들지 않는 매너 있는 개로 훈련시키겠다는 단기 목표를 세웠다. 쉽지 않은 목표지만 요즘은 애완동물 훈련에 관한 유튜브 동영상이 많으니 열심히 보면서 참고하면 될 것 같다. 대소변 잘 가리고 참을성 있게 이도 잘 닦고, 잠도 잘 자는 대견한 강아지니까 이 목표도 충분히 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득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가르쳐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우리의 애완견이 매너가 부족해서 무리와 어울리지 못하고 집안에서만 맴돈다면, 그건 두 동물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으니 바짝 긴장해서 똑바로 가르쳐야겠다.
김치와 고기/ 주덕빈
난 식성이 까다롭지는 않다. 술 담배를 많이 하니 입맛이 없어 너무 적게 먹어 걱정인 사람이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는 "나이 들어서는 기본 체력이 중요하니 좀 더 먹으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입이 짧아서 정량을 넘기면 속이 불편해 숟갈을 놓는다. 다행히 고기와 김치를 좋아해서 호주 오기 전에는 삼겹살에 김치 볶음을 매일 먹다시피 했다. 물론 거기에 반드시 소주 한 병은 기본이었는데 기름기가 많아 지방간이나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을 것같아 어느 순간 끊었다.
호주에 오니 가끔 그것들이 그리웠지만 삼겹살이 비싸고 특히 소주는 한국보다 몇 배 더 비싸. 부드럽고 순하며 가격이 좀 저렴한 와인을 즐기게 되었다. 호주에서 한식을 고집하면 생활비가 많이 드니 빵도 먹고 멀건 스프도 좀 먹었다. 입맛도 없고 양도 적어 뭘 먹어도 크게 문제될 것 없으니 김치만 있으면 우유, 계란, 커피등 비교적 단출한 장보기가 일상이었다
그런데 강아지 룰루가 우리 집 식구가 된 이후부터는 장바구니가 무거워졌다. 벌크 닭 가슴살 두 팩. 사각형의 애완용 mix 고기 한 팩, 닭 목뼈 한 팩 등 고기류가 많아졌다. 한 달에 한번 닭 가슴살을 건조기에 말려 간식으로 주며 폭 삶아서 사료와 섞어준다. 너무 닭고기만
주면 질릴까봐 mix 고기와 목뼈도 주고 간이나 똥집 같은 육류 부산물도 삶아 주고 있다.
어쩌다 고기가 빠지면 밥그릇을 본 체 만 체한다. 처음에는 사료도 잘 먹었는데 중성화 수술 후 너무 힘들어하는 것이 안타까워 몸보신용으로 매번 육류를 주었더니 입맛이 사람보다 더 고급이 되었다. 우리가 습관을 잘못 들인 탓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의 장보기는 100불 미만인데 룰루 고기를 사면 200불 이상이다. 돈도 문제지만 비만인 것 같아 독한 마음먹고 밥그릇에 고기를 안 넣어본다. 그러면 식탁 밑에 다소곳이 앉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꼬리를 흔들며 입맛을 다신다. 냄새만 풍기고 정작 고기를 주지 않는 것은 학대며 고문일 것 같아 딱한 마음에 계속 섞어주고 있다.
이런 룰루의 고급 식단에 비해 나는 계란과 김치. 나물 한 가지에 떠먹을 국이 있으면 한 끼를 때운다. 거기에 멸치조림이나 생선이 있으면 중급수준, 주말에 한번 고기반찬이 오르면 고급수준이다. 급수에 상관없이 반드시 김치는 있어야하는데 이 식성을 계속 고집하면 나중에 김
치 없는 호주요양원은 적응이 어려울 것 같다. 반면 룰루는 고기 없으면 급하게 어디에 맡기기도 어려울 것 같다
최근 룰루는 예전에 비해 자주 물은 변을 본다. 사료는 강아지에게 가장 안전한 음식인데 사료보다 고기 비율이 높으니 배탈이 잦다. 지금이라도 사료위주의 식단을 다시 시도해 보면 좋은데 아내는 장 기능 개선제를 사왔다. 아침저녁 빈속에 두 번 먹이는데 신기하게도 "약 먹
자."하면 얼른 소파로 올라와 머리를 소파에 박고 있다. 먹기 싫다는 소리다. 그 모습이 귀여워 깔깔 웃는다. 예전 강아지들은 먹다 남은 사람음식 가리지 않고 모두 먹어도 잘 살았으니 20년 남짓 산다는데 비록 식료품비가 우리의 두 배라도 좋아하는 것 실컷 먹고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면 좋겠다.
에어비엔비(Airbnb)/ 주덕빈
이사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이 집을 구입하기 위해 인스펙션을 할 때 Dual Living House라서 호감이 갔다. 듀얼 리빙이란 구성원들이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방, 거실, 욕실, 부엌이 각 층마다 갖춰진 주거형태다. 우리는 가족은 많지 않지만 여유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짭짤한 수입은 물론 시티에서 가깝다는 것도 큰 매력이어서 이 집을 선택했다.
우리의 예상은 적중해서 이사 후 1층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머물고 있는 한국 젊은이들이, 2층은 우리 부부가 살았다. 1층은 방이 2칸이니 최소 3명은 살 수 있어서 그들과 1년여 동안 동고동락했다. 1층의 쉐어 룸(share room)이 정착되자 2층의 비어 있는 큰방의 쓰임새를 생각하다가 에어비엔비를 운영하기로 했다. 이곳에 이사 오기 전에 경험이 있어서 큰 부담 없이 호스트(host) 등록을 마치고 반응을 기다렸다.
첫 번째 손님은 이란계 호주인으로 60대 남자였다. 일주일 예약했는데 일이 늦어져 10일간 머물렀다. 그는 호주에서 40년 동안 약국 운영과 건강에 관련된 이런저런 일들을 해서 아는 것이 많았고 그만큼 자기 자랑도 많았다. 머무는 동안 특히 사프란(Saffron)이라는 모국의 식물과 그것을 말린 차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설명을 했다.
이란에서 그것은 만병통치약으로 쓰인다고 했다. 얼핏 보면 실고추 같은데 꽃 수술을 말린 것으로 물에 넣으면 노란색으로 변했다. 가격이 꽤 비싼데도 자랑스러움인지 아니면 비슷한 연배인 우리에게 호감을 느껴서인지 아낌없이 주고 갔다. 덕분에 이란의 토산물도 알게 되고 한동안 그의 설명대로 만병통치약으로 믿으며 열심히 마셨다.
시티와 가깝고 근처에 큰 병원이 있어 우리 집은 손님들에게 꾸준히 인기가 많았다. 한국인 특유의 깔끔함과 친절함은 그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해 리뷰 또한 좋았다. 대부분 손님들이 집을 선택할 때 리뷰를 참고하기 때문에 한동안 의사, 간호사, 기술자등 주로 직장 일 때문에 오는 외국인 손님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23세의 젊은 일본인이 우리 집에 왔다.
그는 영어를 배우려고 브리즈번의 북쪽 도시 케언즈에서 1년 동안 학원을 다녔다고 했다. 가라테(Karate) 선수며 물리치료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운동선수답게 신체가 단단하고 튼튼해 보였다. 일을 찾으려고 이곳에 왔다고 했는데 동양인이고 영어 수준이 우리와 비슷해서 틈틈이 우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시락 사업을 하는 부모이야기부터 예쁜 여자 친구까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친근하게 굴어서 우리도 친절하게 대했다.
특히 김치를 좋아해서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김치를 먹었고 아내로부터 김치볶음밥도 배웠다. 아내는 한 술 더 떠 젊은이가 2주 동안 김치만 먹으면 기운을 못 쓴다고 응원하는 의미로 삼계탕까지 끓여 먹였다. 성격도 좋고 긍정적이어서 금방 잡을 구할 줄 알았는데 일도 못 구하고 여자 친구와 가족이 보고 싶다며 2주 후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조만간 다시 오면 우리 집에 꼭 오겠다고 약속하며 우리 부부와 기념사진도 찍었다.
에어비엔비는 다국적 민족들과의 연결고리다. 가끔은 신경 쓰이고 귀찮기도 하지만 그들 나라의 위치와 주변국도 한 번씩 관심 갖고 찾아보니 상식도 풍부해지고 문화도 알게 된다. 특히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영어도 어쩔 수 없이(?) 사용하다 보니 그럭저럭 어휘와 자신감도 느는 것 같다.
최근 경기가 좋지 않아 이직과 이사, 관광 등 유동인구가 적어서 많은 호스트들이 에어비엔비 운영을 중단하고 장기임대로 전환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우리는 ‘손님이 오면 수익과 이야깃거리가 생겨 심심치 않아 좋고, 뜸하면 신경 쓸 일 없어서 좋다’라고 편하게 생각하며 운영 중이다. 긍정적 생각 덕분인지 꾸준히 문의가 오고 예약이 체결된다. 다음 손님은 인도네시안 여학생으로 10일간 머물 예정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조만간 그녀의 나라를 방문할지 모를 일이다. 섬나라 인도네시아에 대해 미리 공부 좀 해야겠다.
참외밭 파수꾼/ 주덕빈
오늘도 어김없이 무엇인가가 화단의 참외를 갉아먹었다. 누구 짓일까? 궁금하고 아까워 주변을 서성이는데 곁에 있던 룰루가 느닷없이 레몬나무에 매달려 으르렁거렸다. 포섬이든 까마귀든 분명 짐승의 짓이라는 걸 룰루는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막 단내를 풍기다가 1/3 쪽 상처 입은 이 참외는 지인이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에서 발아하여 열매를 맺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열려 보는 재미가 좋았다.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 뭔가가 쫀 듯 갉아먹은 듯해서 당연히 까마귀나 포섬 짓인 것 같아 철망을 씌웠다.
과일은 한번 상처 나면 그 냄새를 맡고 벌레들이 꼬여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다. 먹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식물들을 위해 원인을 찾아야 해서 철망을 치고 지켜보는 중이었는데 그 밑으로 뭔가가 드나드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동물보다 더 작은 뭔가가 틀림없는데 ‘혹시?’ 순간, 쥐가 떠올랐다.
룰루가 위를 보며 맹렬하게 짖는 걸 보니 쥐란 생각이 들어 철망을 치우고 참외넝쿨 주변에 치즈를 넣은 쥐덫을 놓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룰루는 이내 치즈를 달라고 마구 짖었다. 밖이 소란하니 “제발 혼내줘, 못 짖게 해.”라며 아내가 소리쳤다. 나와 룰루의 작전이 뭔지도 모르면서 소리만 지르는 아내가 얄미워 반드시 쥐를 잡겠다고 마음먹었다.
밤 10 시쯤, 사방은 조용한데 냄새와 소리에 민감한 룰루가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옳거니, 왔구나’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뒤좇아 가니 기다리던 쥐가 ‘후다닥’ 펜스 위를 달렸다. 직접 쥐를 본 룰루는 흥분해서 근처를 수없이 살폈고 크게 놀란 쥐는 며칠 잠잠했다. 더불어 흥미진진한 나는 “덫을 치우고 야생에서처럼 룰루가 직접 생포하게 할까? 아마 큰 추억이 될 것 같은데.”
짓궂은 제안에 아내는 손사래를 치며 본능을 깨우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아지가 근처에 있으면 쥐가 꼼짝하지 않으니 안에서 동태를 살피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잠복근무를 하는 건데 주인의 의중을 알지 못하는 룰루는 안에 갇혀 낑낑거리다가 부스럭 소리만 나면 짖어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이른 아침, 계획대로 문을 열고 룰루를 풀어놓았다. 해방감에 부지런히 밖으로 뛰어나간 룰루는 쥐덫을 발로 차고 머리로 굴리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드디어 범인은 잡혔고 죽은 쥐는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룰루의 활약으로 화단은 다시 평화를 찾았다. 2년 만에 제대로 한 건 한 셈이다.
최근 뉴욕과 시드니, 서울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대도시에 쥐가 들끓는다고 한다. 비상대책 중 하나가 ‘고양이를 이용한 쥐 잡기’인데 고양이들이 쥐를 봐도 더 이상 잡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애완동물이 되면서 야성을 잃어 제 몫을 못한다고 한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본성대로 살면 민폐가 되는 요즘, 가끔은 주인의 안전을 위해 짖어대고 사냥하는 룰루가 대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