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원

작품 5편

by 김동관

잘 가시오, 우리 엄마/ 정종원

저런
우리 어머니가 저곳에 앉아 계실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네
꽃을 좋아하셨던 내 어머니가
꽃들에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계시지 않는가

그래
우리 어머니는 참 고우셨었지
내게는 진짜로 엄마이셨어
임종하실 때까지도
아들 손을 꼭 쥐며
아들, 엄마 걱정은 하지도 말고
에미에게도 화내지 말고
잘살소, 응? 하시지 않았는가

허어
누구의 말마따나
내가 이제는 진짜 세상에 부모가 없는
고아가 되어 버렸구나
그 서러움을
어찌 감당해야 하나
좋아하시던 꽃들에 둘러 쌓여 있는
엄마를 물끄러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눈시울이 뜨겁다

엄마
잘 가시오. 내가 여러 번 말씀드렸지?
이 아들 걱정은 하시지도 마시라고
내가 엄마한테 받았던 것들을 나도
엄마가 그렇게도 예뻐하던 손주들에게

돌려주리다

엄마,

날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참 고마웠소
꽃피는 봄이든
바람 부는 여름이든
단풍 드는 가을이든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이든
언제든
아들의 가슴속에 오셔서
함께 삽시다

사랑해, 엄마
사랑해, 엄마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앞서
글도 못쓰겠네
잘 가요, 엄마
잘 가





그리움/ 정종원


벙어리가 되어

언덕에 올라보자


하늘을 향해

누군가를

소리내어 불러보자


벙어리 입에

말문이 뚫리도록


부르다 부르다

그래도

부르던 사람이

오지 않거든


그곳에 주저앉아

목청이 터져버리도록

울어 버리자


어버버버

어버버버

어버버버





장승의 겨울/ 정종원


아무도 탐내지 않는

자투리 땅 마을 어귀


너는 언제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려

서있었는고


벌건 대낮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치고

내리던 비가

눈이 되어 내리던 날도

나는 이 모습 이대로

이곳에 우뚝 서있었노라


사람의 형상으로 태어나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니

어찌 오욕칠정이 없겠으며

어찌 물욕이 없었겠는가마는


타고난 것은 어찌할 수 없으니

마음에 메어둔 것들은 다 부질없어


때만되면 찾아드는 계절에도 무심했거늘

오가는 온갖 잡배들의

토사와 방뇨에도 무심했거늘


세월앞엔 장사가 없다는 말에

산촌마을을 돌아 나온 겨울바람이

키 큰 장승의 마음을

유독 서럽게 한다





동천 외로운 달/ 정종원


잘 익은 감자마냥

잠든 아내의 뽀오얀 얼굴마냥

차가운 겨울하늘

구름에 너울대는 달빛은

포근하기만하다


내가 아내를 처음보고 어째 낯익다하여 좋았더니

추위에 생글거리는 저 달이 어딘가 낯이 익어

산골에 태어난 내가

어머니 품안에 젖을 빨며 바라보던 달이었을지

도회로 이사 온 후

네모난 옥상에서 멀거니 바라보던 달이었을지

춥고 기나긴 밤

깨어 외로운 자

너만은 아닐 것이니


벗 삼아 가자구나

그대는 구름에 실려

너울너울

나는 새근새근 잠든 아내의 모습에 취해

생글생글

길고 외로운 밤을

홀로 보내나니




먼지/ 정종원



뽀얀 햇빛이 드는
안방 구석구석

다소곳한 먼지에도
품위가 있느니

바람 잦을 일 없는
바깥세상의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을 피해
나는
고요한 방구석의
먼지가 되었노라

볕드는 구석지에도
세월의 연륜이 쌓여
한 해 두 해 두툼한 층이 되었나니
건드리지만 말아라

드세지도 않고
날뛰지도 않고
앉은 채 수명을 다 할 것이니

세상에
먼지만도 못한 놈들이 있어
나를 슬프게 하나
저들 또한
한 줌 바람 속에
먼지 같이 사라질 것이니

이래저래 불어대는 바람에
휩싸이지 않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방구석의 한 톨 먼지가 되어
죽기까지
행복해 할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