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3편
쇼팽의 야상곡/ 정제인
날카로움 빼앗긴 칼바람
기지개를 켜자 손금이 생긴다
그 사이로 형체를 잃어버린 아픔들
쏟아져 흐른다
돌부리에 부딪혀 소리를 뱉고
고음으로 불평 한마디 툭
태양 빛이 앉아있는 물 표면에
그의 눈물을 쏟는다
구름이 쏟아지고
한줄기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면
참았던 통곡 귀를 찢는다
어둠을 뒤집어쓴 고요
멈출 수 없는 흐름
별이 창을 열고 던진 아득한 추락
부서지고 합체한다
흐르고
달린다
더 이상 추락하지 않을 때까지
달빛이
쉿
입술에 손가락을 댄다
겉과 속/ 정제인
사과 철이다.
종류별로 이름도 맛도 다양하다.
Pink Lady-새콤달콤
Royal Gala-달콤
Jazz -새 새콤달콤
Kanzi -새콤
Granny Smith-새콤새콤
Envy -우리나라 부사와 비슷한 가장 맛있는 맛.
사과를 고르는 눈과 손은 사과의 겉모습을 보고 선택하며 겉모양처럼 신선하고 맛있기를 기대한다.
씻어서 냉장고에 넣기 전에 가장 잘 익고 맛있어 보이는 빨간 사과 하나를 반으로 딱 잘랐다. 어머나! 속부터 병들고 썩었는데 먹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지만, 겉은 여전히 빨갛고 예쁘다.
속이 이렇게 다 썩어가는 동안 겉모양은 어떻게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사람에 비유하자면 암에 걸렸을까? 너무 늦게 발견되어 손도 쓰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이라고 해야겠다. 사과 혼자서 썩어가던 시간이 마음 아파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마음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니 마음을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때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대답을 해야만 했다.
직장에서는 늘 입꼬리가 높은지 눈꼬리가 높은지 경쟁했고, 올라간 입꼬리 속에는 ‘왜 나한테만 일을 다 시키는 거야! 정말 짜증 난다! 정말 너무들 하십니다!’라고 속으로 외쳐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마음속은 숯 공장이 성업 중이었겠지!
퇴근하고 동료들과 한잔하는 자리에서는 겉과 속이 같았다. 서로의 불만을 듣고 위로하고 잔을 부딪치는 소리에 까르르 웃다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차디찬 생맥주가 뜨거웠던 시절.
그 후로도 많은 시간과 사람들 속에서 겉과 속이 같은 사람으로 지내기는 불가능했다. 싫어도 좋은 척해야 했고 가기 싫어도 가야 했고 울고 싶어도 웃어야 했다.
현재는 누군가가 나에게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yes!
지인이나 친구들도 내가 그런 사람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유를 들어보니 아이들이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도 나의 상황이라면 yes라는 대답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정말 그럴까!
가부장적인 남편, 게으르고 게임을 과하게 하는 자녀들, 남보다 못한 며느리나 사위, 등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때문에 속으로 화를 숨기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분노가 일어남도 내가 한 일이요, 행복하다고 펄쩍 뛰고 싶은 순간도 내가 만들어 낸 감정임을 알았을 때가 생각난다. 감정의 조절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열쇠를 쥐고 있다는 의견도 놀라웠다.
타인과 의견 차이가 생기면 속으로 생각하고 상대방 탓을 했던 적이 많았다. 시간을 되돌려 앨범을 보듯 객관적으로 다시 돌아보았다.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들의 선택이며 그들의 인생이다. 내가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할 권리는 없다.
언제부터인지 남편이 설거지 담당이 되었다. 점심때부터 쌓여있던 설거지가 저녁 미사를 다녀와도 그대로 있다. 본인이 하겠다고 말만 하는 남편.
“지금 내가 설거지할까?"
"아니야 저녁 먹고 같이하려고 했어."
"알았어."
"화났어?"
"아니. 화 난 것 같아?"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물어봐 주어서 고마워.”
남편이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면 남편은 내가 화났을 거라고 오해했을 것이다.
사과를 고르는 순간처럼 상대방을 스스로 진단한다. 사과를 반으로 갈라서 속을 보아야만, 확인이 가능하듯이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혼자 생각하지 말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남편은 게임 중이던 TV 화면을 자꾸 쳐다본다. 설거지를 내가 하겠다며 게임 하라고 했더니 식사 후에는 소화할 겸 시간이 필요하다며 설거지를 시작하는 남편.
설거지 화면에 배경 음악을 넣는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고~" 그가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에게 음악이란/ 정제인
한동안 음악과 소원했다.
몇 주 전부터 남편이 피아노 음악을 종일 틀어 놓는데 이제야 클래식 음악이 주는 느낌을 조금은 알 것 같다며 마음이 편하고 차분해진다고 한다.
내 기억에 음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5~6학년 때로 기억된다.
세 자매가 이종환 님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프로의 열렬한 팬이었다.
Frank Pourcel - Merci Cherie 이 곡이 오프닝으로 시작될 때면 우리는 제법 큰 라디오로 들어갈 듯 이불을 펴고 엎드려서 애창곡이 나오면 웃음이 저절로 얼굴을 감쌌다. 우리가 좋아하는 경음악이나 노래가 나오면 제목을 메모지에 적었다. 그 제목들이 20곡 정도 모이면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녹음을 주문했다. 완성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듣고 따라 부르곤 했다.
밤이면 동생은 항상 언니와 나 사이에서 잤는데 본인 머리 바로 위에 라디오를 놓았다. 그녀의 잠버릇은 계속 위로 올라가서 벽이나 물건에 부딪힐 때까지 이어졌다. 잠버릇 때문에 제일 먼저 피해를 본 것은 라디오였다. 엄청나게 큰 라디오였는데 매일 밤 동생의 머리에 부딪혀서 넘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망가졌다. 언니와 나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라디오를 볼 때마다 동생을 째려보았다.
어린이날 엄마는 녹음 기능이 있는 라디오를 사주셨다. 그때부터 우리의 행복은 이어쓰기를 시작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프로를 듣다가 DJ가 다음에 들려드릴 곡은 하며 곡명을 말할 때 우리가 좋아하는 곡이면 숨을 죽이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차곡차곡 앞뒤 테이프에 음악이 꽉 차면 저금통에 돈이 꽉 차는 것보다 더 기뻤다.
70~80년대 유행했던 팝송과 살았다. 녹음된 음악을 하루에도 몇십 번씩, 여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들었다.
그때의 애창곡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Don't Forget To Remember Me- Bee Gees였다.
나에게 음악이란 아빠였고 친구였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었다.
밖에서는 엄청 활발한 성격이고 집에서는 과묵한 편이었다. 나의 성격은 어떤 것일까 늘 궁금했고 밖에서의 내가 나인지 집에서의 내가 나인지 괴리감이 컸던 시기였다. 그 차이를 음악으로 채우려고 애쓰지 않았을까? 음악을 듣는 순간은 진심이었고 나였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LP가 나오고 턴테이블도 생기고 녹음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졌다. 언제든지 듣고 싶은 음악만 골라서 들을 수 있었다.
수백 개의 LP가 있었지만, 동생이 끝까지 가지고 있다가 이사 다니면서 모두 사라졌다. 한동안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핸드폰과 스피커를 연결하면 말 한마디로 듣고 싶은 음악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마당에서 나무를 다듬는 남편이 창밖으로 보인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파바로티의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틀었다. 볼륨을 높이고 스피커를 뒷마당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테너의 굵은 목소리가 온 마당을 공연장으로 만든다.
남편의 손이 멈춘다. 얼굴 가득 담기는 미소가 스피커를 바라본다. 허리를 펴고 구름을 한참 본다. 음악은 또 선물이 되어 남편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조용하던 새들이 화음을 넣듯 짹짹거린다.
나이가 든다는 건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주고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어른스럽게 생각해본다.
점심으로 그가 제일 좋아하는 비빔국수를 만드는데 음악이 잠시 멈추더니 내가 좋아하는 “오펜바흐 천국과 지옥 서곡”이 스피커를 찢을 듯 웅장하게 달린다. 캉캉 부분에서 타악기가 등장하면 플레어 치마를 입고 캉캉을 추던 어린아이가 될지도 모른다.
권태기도 없고 함께 있으면 가슴에 늘 벚꽃이 피는 연애 상대가 음악이다.
오늘은 오펜바흐를 공부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