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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Jun 04. 2020

파로넬라의 꿈

나의 소박한 꿈


파로넬라의 꿈 / 김동관
 
"여보, 당신 꿈은 뭐야?"
"여보, 그런 질문 좀 그만하면 안 돼요?"
 
1948년 8월 23일, 파로넬라는 6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호세 파로넬라 (Jose Paronella), 스페인의 작은 마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던 성(castle)에 대한 이야기는 어린 호세의 가슴에 자신의 성을 짓겠다는 꿈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가난한 가정형편 탓에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20세에 제빵사가 되어 일하던 중 호주에서 근로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신청하여 25세 되던 해에 배를 타고 호주로 오게 되었다.
 
당시 호주의 중요한 산업이었던 사탕수수 생산을 위해 퀸스랜드 북부지역의 농장에서 사탕수수를 베는 고된 일을 수년간 하면서 손수 익힌 기술과 그의 탁월한 사업적인 재능으로 호주 도착 13년 만에 사탕수수 농장주가 되어 큰돈을 벌게 되었다.
 
그제야 고향을 떠나 올 때 결혼을 약속했던 여인을 만나러 스페인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 여인은 호세를 기다리다 지쳐 호세가 오기 3년 전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 후였고 이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그녀의 부모는 친척 중 젊은 한 여인을 소개해 주어 호세는 자기보다 17세나 어린 마가리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6개월 동안이나 유럽 여러 나라의 성들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성을 구상하였고 아내와 함께 호주로 돌아온 호세는 퀸스랜드 북부 도시 케언즈에서 남쪽으로 약 110 km 떨어진 Mena Creek의 폭포 옆에 오랫동안 꿈꾸고 구상해 왔던 자신의 성을 짓기 시작했다.
 
폭포 위 쪽에 다리를 놓고, 폭포를 이용해 수력발전소를 만들어 전기를 공급하고, 폭포 아래에서 모래와 자갈을 직접 퍼올려 계단을 만들어 집과 성을 짓고, 성 옆에는 연회장을 만들고, 폭포 아래는 수영장과 성 앞엔 분수대와 테니스장도 만들고, 옆 야산엔 멋진 카우리나무(Kauri)등 7,500그루의 나무를 심어 산책길과 정원을 만들고, 야산에 터널을 뚫어 연인의 터널이라 이름 짓고, 딸 테레사에게는 생일 선물로 작은 폭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6년간의 오랜 공사 끝에 그의 꿈의 성은 완성되었고 이것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여 당시 퀸스랜드 북부지역의 유명한 사교장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10년 후인 1946년에 큰 홍수로 Mena Creek이 범람하여 파로넬라 성이 크게 파괴되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6개월간의 피나는 재건의 노력으로 파로넬라 성을 다시 오픈할 수 있었지만 그의 평생의 꿈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인지 위 암을 얻게 되었고 2년 후인 1948년 6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 후 이 성은 화재로 건물 내부가 전소되었고 태풍으로 건물 지붕과 벽이 무너져 내려 앙상한 뼈대만 남아 흡사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물처럼 흔적만 간직한 채 슬프게 서있다.
 
얼마 전 케언즈로 여행 중 들렸던 이 Paronella Park의 이야기가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나도 호세처럼 25세의 젊은 나이에 거의 무일푼으로 혈혈단신 호주로 온 이민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난 무슨 꿈을 꾸었고 어떤 꿈을 이루었나 생각해 본다. 호세처럼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낭만적인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영어실력을 키워 세계인들과 삶을 맘껏 논해 보는 것과 그러기 위해 세계여행을 해 보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런 돈 안 되는 꿈은 충분치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이룬 듯하다. 한 동안 영어로 밥 벌어먹으며 살아 보았고 세계의 여러 나라도 여행해 보았으니...
 
어느덧 인생 후반전에 들어서 버린 나이가 되어 또 나의 꿈은 무엇인가 물어본다. 이젠 혼자가 아니기에 꿈도 같이 꾸어야겠다는 생각에 종종 아내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그런 질문 좀 그만하라는 핀잔을 듣곤 한다. 그럴 때면 이 나이에 꿈을 갖는다는 게 정말 필요한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밋밋하고 단조로운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젊었을 때 꾸었던 꿈 중에 못 이룬 것을 떠올려 보고 또 새로운 꿈을 꾸어보는 것은 어쩜 건조하고 고단한 이민자의 삶에 활력을 주고 남은 생의 방향을 잡아주기도 하는 듯하다.
 
그러나 가난한 스페인 이민자였던 호세 파로넬라처럼 너무 큰 꿈을 꾸고 그 꿈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음으로 인해 건강을 잃고 삶을 너무 빨리 접어버린 그런 생은 또한 살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도 싶다.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는 나의 꿈은 더 이상 20대의 낭만적인 꿈이 아닌 아주 현실적이고 절박한 꿈으로서 아내와 함께 '죽는 날까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여보, 당신 꿈은 뭐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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