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관 Mar 13. 2023

2. 결혼과 시부모

나의 인생 이야기 / 김맹임 87세

2. 결혼과 시부모


내가 열 일곱살 되던 해에 옆 동네 중매쟁이가 와서 중학교 나온 학교선생인데 선을 한번 보라고 해서 엄마와 큰 오빠가 보러갔었다. 신랑을 본 후 엄마는 신체가 약해 보여 별로 맘에 안들어 했는데 큰오빠가 사람 괜찮은데 왜 그러냐고 해서 만나보기로 했다. 그래서 신랑이 우리집으로 어머니와 함께 선을 보러왔는데 나도 맘에 들었는지 결혼하기로 했다.


결혼식은 그해 음력 1953년 11월 12일 월평마을 우리집에서 치뤘다. 신랑은 걸어서 우리집에 왔지만, 나는 결혼식 마친 후에 하루 자고 다음 날 가마를 타고 신랑집으로 갔다. 집은 33가구가 사는 전남 나주군 다도면 판촌리 상판 마을의 가장 끝에 있는 감나무가 13그루 있는 초가삼간 집이었다. 이렇게 결혼해 8남매를 낳고 68년을 함께 살다가 먼저 간 신랑 이름은 김양길인데, 1933년 5월 24일(음)에 태어나 2022년 2월 10일(양)에 세상을 떠났다.


결혼 당시 동네 사람들은 내가 친구들 중에서 제일 시집을 잘 갔다했지만, 결혼 후 내 인생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져버린 것 같았다. 여섯 형제 중 막내 외동딸로 태어나 엄마 아빠의 특별한 사랑을 많이 받고 살다가 시집을 왔는데, 결혼 후 난 남들 사는 삶을 하루도 못 살고 고생만 했다.  


난 욕심이 많아 결혼전에 농사일, 배짜는 일과 살림하는 것들을 다 배웠었다. 시집 와서 농사일과 함께 배 짜는 일을 했는데, 목화를 키워 솜을타서 배를 짠 후 팔아서 생활비로 썼다. 난 열 일곱에 키도 다 커서 여섯필짜리 배를 짤 때는 온 몸을 다 써서인지 삭신이 다 아팠는데 시어머니는 하나도 도와주지 않으셨다. 결혼 후 신랑은 일은 안하면서 고등학교를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가장이 되어 소 키우고 농사와 배를 짜며 신랑이 나주 원예고등학교를 졸업하도록 공부를 시켰다.


시아버지 함자는 김성진, 시어머니 함자는 한귀례이다. 시아버지는 장남이었는데 남동생이 한명 있었다. 그는 젊어서 일본에 건너가 돈을 많이 벌었지만 빨리죽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시아버지의 아버지가 지었는데 집을 뺑 둘러 감나무 13그루가 있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우리집을 감나무 집이라고 불렀다. 덕분에 우리 식구들은 감을 실컷 먹었는데, 떫은 감을 된장에 묻어두어 감 장아지를 만들어 반찬으로 먹기도 했고 대봉은 홍시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아서 가용으로 썼다.


시아버지는 젊어서 힘이 세 상머슴값을 받고 일을 하셨다는데 몸을 너무 써서인지 일찍 몸을 상해 내가 결혼해 왔을 때는 농사일을 전혀 하지 못하셨다. 그래도 집에서 손주들은 다 봐주셨는데, 막내 천성이까지 다 키워주셨다. 86세에 광주 방림동 집에서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딸 둘 아들 하나 낳고 살았지만 효도 한번 제대로 못 받고 6년간 치매로 앉은뱅이가 되어 사시다 정월 초하루 전날에 돌아가셔서 그날 바로 출상했는데 그때가 81세 셨다. 너무 불쌍하게 사시다 돌아가셔서 내가 많이 울었다.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가 평생 고생만 하시고 좋은 옷 한벌 못 입고 사신 것이 마음 아파서 내가 시장에 가서 제일 비싼 옷을 한벌 사와 시어머니 묘지에 가서 태워드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1. 나의 어린 시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