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언제나 왜곡된 것들이 제일 앞에 있었습니다.

by 서리달

명절까지 쇠고 나니까 연말연시의 싱숭생숭한 기분도 사그라지는 듯하다. 그저 때가 되면 오고 가는 시기일 뿐인 연말연시만 되면,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는 기분에 시달리는 편이었다. 특별하다고 할 만한 사건이 있든 없든 간에, 그저 무던하고도 잔잔하게 흘러가는 나날이라도 난 늘 그랬었지. 연말연시에 어떤 의미를 품고 사는 것도 아니건만 그 즈음마다 이게 뭐지, 싶은 기분에 시달려왔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똑같았다.


들떠있는 주변에 어울리며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지만, 현실을 가늠할 때마다 저 아래로 추락할 것만 같다는 불안이라 말한다면 적절한 걸까. 뭐라고 할까, 이렇게 말하는 것도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지. 나는 아직도 나의 기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저런 기능이 추가돼 업그레이드된 성능의 번역기가, 그때그때의 내 기분을 번역해 주면 좋겠다는 망상까지 할 정도지. 그러고 보면 어릴 적부터 난 늘 그랬다.


지금 머금고 있는 기분의 좋고

나쁨을 분류하는 일에 매번 느렸다.


기분 좋은 일이 생겨도 얼마쯤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확실히 인지했었지. 기분 나쁜 일이 생겨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모욕적인 상황에 처해도 그냥저냥 넘어가버리곤 했다.


덕분에 남들로부터 ‘성격 좋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는데_ 얼마쯤의 시간이 지나고서 속이 다 뒤집어지도록, 혼자 열병 앓듯이 앓던 밤을 떠올리면 성격이 썩 좋은 것도 아녔지. 하여튼 간에 나는 아직도 나의 기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연말연시마다 반복되는 갈피 없는 기분의 원흉을 아직도 잘 모른다. 어디까지나 그런 기분의 시작을 체감하고 시달리다가 끝이 났을 즈음에야 다행이라며 안도할 뿐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똑같았다. 그래도 뭐, 명절까지 쇠고 나니 연말연시의 싱숭생숭한 기분은 사그라졌는데_ 이제는 그 원흉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할 것도 같지.


언제까지나 영문도 모르는 채로

시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 기분 정도는 똑바로 이해하고

살아가야 될 즈음이 됐으니까.






마땅한 근거도 없이 시간을 의심하는 찰나가 늘었다. 조금이라도 더 느리게 갔으면 하는 마음이 이토록 지독한데, 절대로 그러지 않을 시간이란 걸 너무 잘 알아버렸으니까. 뭐든 간에 부정하고 보는 애라도 된 듯이, 마땅한 근거도 없이 시간을 의심해버리는 요즘이다. 어떤 때에는 10분이 지났다는 시계의 정직함을 두고서도, 고장이 난 걸지도 모른다며 시간을 검색하기도 했었지.


체감으로는 아직 1분과 3분 그 어디쯤일 텐데,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는 시간이 늘 의심스러웠다. 아직도 어제의 일처럼 선명한 그때가, 날짜를 셈하면 셈할수록 먼 과거의 일이 됐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다.


마치 크게 속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지.


하지만 내 기분은 한 조각의 의미도 없는 기분일 따름이었고, 도무지 믿기지 않아 의심스럽기만 했던 시간은 거짓을 몰랐다. 애당초 거짓이란 사람의 전유물이었지. 사람에게나 통용되는 것이 사람이 아닌 것에 있을 리가 없었는데_ 그럼에도 의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는

시간을 흘겨보며 의심하고 있다.


오후 3시에 첫 문장을 써내 겨우 몇 문단밖에 써내지 못했건만, 곧 해가 질 즈음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리법칙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 일정하게 흘러야 될 시간이 가속하는 현상이 벌어진 게 아닐까. 이딴 뜬구름만 같은 생각을 머릿속 어딘가에 꽂아놓고서 의심스러운 시간을 따라 걷는다.


조금이라도 더 느리게 갔으면 하는 마음이 이토록 지독한데, 절대로 그러지 않을 시간이란 걸 너무 잘 알아버렸으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뭐든 부정하고 보는 애라도 된 듯이, 마땅한 근거도 없이 시간을 의심해버리고 마는 지금이다. 살아가는 만큼 성숙해지는 게 사람이라고 배웠던 것도 같은데_


그런 배움을 다 비워내고 다시

애가 된 듯이,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의심으로

시간을 흘겨보고 있는 오늘이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든 간에 허구일 때가 아름다웠습니다. 제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그랬고, 나쁜 이야기라도 예외가 될 순 없었습니다. 물론 가능성의 범위와 확률을 따져보면 현실이 아닌 이야기가 얼마나 있겠냐면서, 안에서부터 솟구치는 반박과 비난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는데_


그럼에도 저는 늘 그랬습니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든 간에 허구일 때가 아름다웠습니다. 현실에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이 좋았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이야기도 그럭저럭 좋아하지만, 거기에 아름답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아내는 현실로 이야기를 지었다든가, 혹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이야기로 다뤘다면 흥미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최근에 제작된 영화나 드라마들의 내용이 꽤 그러하던데_ 덕분에 돈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 어설프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구매할 바에는 차라리, 질리도록 봤던 오래된 판타지 영화 3부작이나 소설을 읽는 게 나았습니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애니메이션을 자주 봤던 것도 이런 성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는 대부분 허구였고, 현실을 모방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이야기를 표현하는 수단이었을 그림. 그림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왜곡’이란 게 너무 짙어서 그랬을까요. 예술의 여러 형태들을 제가 좋아하는 순으로 나열할 때마다, 언제나 왜곡된 것들이 제일 앞에 있었습니다.


이런 탓에 이야기도 현실적인 것보다는 너무나도 허구적인 이야기가 좋았고, 그게 그렇게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제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그랬고, 나쁜 이야기라도 예외가 될 순 없었습니다. 물론 가능성의 범위와 확률을 따져보면 현실이 아닌 이야기가 얼마나 있겠냐면서, 안에서부터 솟구치는 반박과 비난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는데_


그럼에도 저는 늘 그랬습니다.


허구적인 이야기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오로지 상상력의 주변을 공전하는 세계가 너무나도 어여뻤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그랬던 걸까요. 저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사람의 인생사를 듣는 것만큼 그 사람의 꿈을 듣는 게 좋았습니다.


여태 간직해 왔던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눈은: 아주 오래된 여름날에 봤던 바다만큼 푸르렀고, 구름마저 추위에 틀어박힌 겨울날의 하늘만큼 맑더라고요. 제일 먼저 버려도 좋았을 꿈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선 ‘아름다움’이 확실하게 있었습니다.


지금 꾸고 있는 이 꿈이 이뤄질 수 있는 꿈인지, 애당초 존재한 적도 없는 것을 꿈꾸는 건 아니겠는지. 의심하면서도 꼭 부여잡은 채로 살아가는 삶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그럼, 자신의 꿈을 이뤄낸 사람은 더 이상 아름답게 볼 수 없는 걸까요.


잠시 할 말이 없어져 담배를 깨물긴 했습니다만, 아마도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태껏 지켜왔던 꿈을 기어코 이뤄낸 사람들은 대부분,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이뤄내려 애쓰곤 했었으니까요. 한 편의 허구적인 이야기를 현실로 일궈낸 그들은:


곧바로 속편이 되어줄 다음 이야기를 집필하는 사람들이었고, 저는 그들이 부여잡고 있는 ‘허구’가 언제나 아름답게만 보였습니다. 이렇게 이런저런 나를 죽죽 늘어놓으니까, 허구에 이끌리는 이 마음의 윤곽을 조금은 알 것도 같네요.


아마도 저는 허구에 뒤엉켜있는

‘가능성’에 이끌렸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