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

5. 배터리가 약한 차의 시동을 거는 방법:

by 서리달


배터리가 약해서 불안한 경우에는

시동을 끄기 전에 모든

전장품의 가동을 중단하고 약 10분 정도

아이들링(공회전)을 해두면 안심할 수 있다.

시동모터를 지나치게 돌려서 방전되었을 때는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시동을 건다.*






_단수單手*


간신히 부여잡은 채 겨우겨우 견뎌내는 시간은 자꾸만 길어지는데_ 이러했던 만큼 얻어낸 것이라든가 이뤄낸 것, 그런 게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몇 모금씩 씁쓸해진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과 저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쯤, 알기는 잘만 아는 즈음에 머무는 지금이라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괜스레 복기를 거듭하게 되는 것들만 늘어가는 요즘이다. 몇 줄의 이력과 비전 혹은 실수, 끝끝내 무리수로 정의될 처음이 나의 착수着手였다는 슬픔. 복기를 거듭할수록 선명해지는 어제들이 이런 즈음에 머물고 있는 나를 씁쓸하게 만든다.


간신히 부여잡은 채 겨우겨우 견뎌내는 시간은 지금에도 길어지고 있는데_ 이러했던 만큼 얻어낸 것과 이뤄낸 것이, 다른 누구들의 평균에도 못 미치니까. 썩 유쾌한 기분일 수만은 없는 것도 같지. 문득 비교를 멈추면 행복해질 수 있단 말이 떠올랐지만 어느 래퍼의 말마따나 담배 같은 위안*이었다.


나는 나만의 법칙으로 자전하며

공전한다고 중얼거려봤자

눈을 꼭 감은 채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과 저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이, 이토록 다르다는 사실은 겨우겨우 견뎌내는 시간마다 지독해질 뿐이었지. 이런 탓일까, 괜스레 복기를 거듭하게 되는 것들만 늘어가는 요즘이다.


출력될 이력과 비전 혹은 천일수千日手* 끝끝내 무리수로 정의될 착수가 자충수였다는 슬픔. 복기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선명해지는 어제들이, 이런 즈음에 머물고 있는 나를 씁쓸하게 만든다. 내가 바라보고 있었던 방향과 저 세상이 가리키고 있던 방향이 이토록 달랐었다는 사실쯤, 알기는 잘만 아는 즈음에 머무는 지금이라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단수(單手):

활로가 하나 남았을 때의 바둑 용어.






_불계不計*


거리를 두고서야 비로소 웃어볼 수 있었다.


뭐가 됐든지 가까워야 좋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게 꼭 능사는 아니었음을 이제는 잘 알게 됐지. ‘적당한 거리감’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은 집어치우고, 몇 발짝씩 얼마쯤 물러나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언뜻 소외라는 단어를 빼닮아있더라도 말이다.


무엇이든 가까이 두겠다고 애쓸수록, 어느 누군가의 곁에 머물고자 무리해봤자 괜히 마음만 다칠 뿐이었다. 이른바 친밀함, 그것의 가치는 각별하겠지만 그게 꼭 능사일 순 없었다. 친밀한 만큼 감당해야 되는 것들이 있었고 그런 만큼 드러내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다.


드러내야 할 것들이 영 시원찮은

처지에겐 어지간히도 가혹한 일이었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불합리의 반복이었다. 나는 이만큼인 것에 반해 너는 그만큼일 때가 있었고 나의 한 모금이 너에겐 두 모금일 때가 많았다. 이토록 친밀한 우리라고 믿어도 너와 내가 똑같을 순 없었다.


답도 없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가치였는데, 그것의 가치가 친밀함의 가치를 이겼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랬다, 거리를 두고서야 비로소 웃어볼 수 있었다.


뭐가 됐든지 가까워야 좋은 건 줄 알았는데 꼭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었음을 잘 알게 된 내가 됐지. 적당한 거리감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은 집어치우고, 몇 발짝씩 얼마쯤 물러나있으니 편히 웃어볼 수 있었다.


이러한 내 모습이 언뜻

소외로운 사랑을

빼닮은 것만 같더라도 어쨌든:


몇 발짝 물러난 후에야 웃어볼 수 있었다.


가까이에 있을 땐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것들도 그러면 그런 거란 식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 이런 게 바로 흔히들 떠드는 ‘적당한 거리감’이란 것일는지. 짐짓 짐작해보기도 했는데 이제는 너를, 추억으로 발음해야 함을 깨단해 그토록 애매모호하기만 한 말은 멀리 치워버렸다. 그렇다, 우리는 더 이상 친밀한 사이라고 할 수 없었다.


때문에 너는 어쩔 수 없는 추억이었고

이제야 나는:

너를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거리를 두고서야 비로소 웃어볼 수 있었다.


뭐가 됐든지 가까워야 좋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게 꼭 능사는 아니었음을 이제는 잘 알게 됐지. 애초에 불합리의 반복이 곧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었다. 나는 이만큼인 것에 반해 너는 그만큼일 때가 있었고 나의 두 모금이 너에겐 반 모금일 때가 많았다. 이토록 친밀한 우리라고 믿어도 너와 내가 똑같을 순 없었다.


답도 없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유의미한 가치였는데, 그것의 가치가 친밀함의 가치를 이겼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랬다, 거리를 두고서야 나는 비로소 웃어볼 수 있었다.


이러한 내 모습이 언뜻

소외로운 사랑을

빼닮은 것만 같더라도 어쨌든:


너로부터 다 잊힌 후에야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불계(不計):

바둑에서, 승부가 확실해 집의 수를 세지 않음.






_몰판沒板*


드센 고집의 가장 큰 문제는 굳이 안 봐도 될 꼴을 보게 된단 것이었다.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만 굴러가고 있음을 알아챘을 때. 그때라도 고집을 꺾고 돌아섰다면 볼 일도 없을 꼴을 보게 되고, 그렇게 남김없이 실망하게 되는 게 드센 고집의 결말이었다.


적당히 마음 쏟고 적당히 이어가다

적당한 때에 돌아서면 괜찮았을 텐데,

적당함을 외면한 채로 이어가니까


굳이 안 봐도 될 꼴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난 늘 그런 식이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꼬여가는 중이고 방향도 이상한 곳으로만 굴러가고 있는데 이놈의 고집. 세월 따라 더욱 지독해진 고집으로 말미암아 끝까지 가보고야 마는 게 문제였다.


그 끝에 있는 그게 행복일 거라는 보장도 없건만 맹목적으로 고집을 부렸고 그토록 드센 고집의 결말은: 언제나 볼품없는 꼬락서니였다. 아무것도 건진 게 없고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는 지금이 그것의 결말이었지. 그럼에도 써내겠다는 마음가짐이 그러했다.


일찍이 재능이 있는 누구들은 진작 이뤄낸 것을, 아주 나중에야 겨우겨우 이뤄내고서 안도하는 게 고작이었다. 어떤 활로도 보이지 않아 패배가 확실한 대국에서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악수와 무리수를 두는 삶이었다. 실패를 빠르게 인정하고 돌아서 다음을 기약했더라면, 지금에 맴도는 기분이라도 조금 덜 상했을진대_


혹시 모른다는 희망에 덧붙여진 고집.


도저히 이렇게는 못 끝내겠다는 고집이 문제였지. 드센 고집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었다. 굳이 안 봐도 될 꼴을 끝끝내 보게 된단 것이었다. 이미 망해버린 꿈을 부여잡고서 작디작은 뭐라도 건져내겠다며 애쓸수록, 내 꼬락서니만 더욱 비참해질 뿐이었는데_ 아직도 꺾지 못한 쇠고집은 한없이 몰판에 가까워진 오늘에도 써내는 중이다. 아직 모른다는 희망이 불러올 거라고는 남김없이 서럽기만 한 실망임을 알고 있지마는:


그럼에도 써내고 있는 오늘이다.



*몰판(沒板):

바둑에서, 한 군데도 살지 못하고 지는 일.




*배터리가 약한 차의 시동을 거는 방법:

이센스(E-Sens)의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 업로드된 비행(flight)의 커버 속 문구中


*프라이머리 - 독 (Feat. E-Sens of 슈프림팀)中


*천일수(千日手): 바둑 용어로 대치상황에서 서로 같은 수를 반복적으로 두게 되면 천일 동안 승부를 겨루어도 결판이 나지 않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일상에서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 무의미한 대치나 쓸데없는 논쟁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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