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의 노래에 처음으로 호감을 갖게 됐던 건, 어느 유명한 아이돌과 불렀던 프로젝트 곡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그의 이름과 노래는 유명했지만 어렸을 적의 내 귀엔 그저 소음 같은 고음만 내지르는 노래였을 뿐, 이따금씩 그의 공연 영상을 봐도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매력적인 저음을 가진 가수이건만 어째서 그토록 악을 써대는 노래만 부르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가수였는데_
열다섯 살의 어느 가을밤, MV만 연달아 틀어주는 음악전문 채널을 보다가 처음으로 그의 노래에 호감을 갖게 됐었지. 물론 소음 같은 고음이 좋아진 건 아녔다. 어디까지나 그가 악을 쓰며 부르짖는 이유를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열네 살의 겨울, 고향이었던 부여를 떠나 머물게 된 새로운 장소. 이것도 저것도 온통 낯선 것밖에 없는 이곳에서 한없이 겉돌고만 있던 처지였기 때문이었을까. 울음을 꾹 참는 듯한 목소리로 “나 억지로 웃어본다”면서, 악을 써대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때부터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의 노래를 찾아 듣는 버릇이 생겼던 건, ‘이별마저 참 나답다’는* 그의 울분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어째서 그의 고음이 소음에 가까운 울분이어야만 했던 건지, 타인에게 다가가는 그의 방식이란 왜 그토록 서툴기만 했었는지. 몇 번씩 생각해 보다가 더 나아가 찾아 듣고, 처연하게나마 그의 노래에 공감할 수 있게 된 건 모두 그때부터였다.
웬만하면 모든 일에 쿨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거짓인 적 없던 감정으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던 열다섯 살의 어떤 밤.
단조로운 기호의 나열이던 취향에
한 줄의 서사가 덧붙여졌다.
살아온 세월이 짐작되는 목소리를 좋아했다. 줏대라고는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음악 취향에 그나마 자리하고 있는 나름의 기준이었다. 너무나도 추상적인 기준이란 것쯤은 안다. 그래서 요즘엔 그냥 제멋대로 골라 듣는다고 번역해서 말한다. 어쩌면 번역된 이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네. 하여튼 살아온 세월이 짐작되는 목소리를 좋아했다.
가장 이상적인 창법으로 부르거나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수들이 좋긴 해도,
유난히 내 마음이 기울어지는 쪽은
늘 그런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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