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1년 전 일도, 5년 전 일도, 심지어 10년 이상된 일도 그냥 무심코 떠오른다. 그렇게 떠오른 기억은 대체로 기분 나빴던 상황이 많아서, 가만히 있다가도 미친 사람처럼 이불 킥을 하거나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안 좋은 기억들은 왜 잊히지도 않고 갑자기 떠올라서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인지.. 기억력이 참 유별난 곳에 특화되었다.
그래도 이불 킥을 하게 한 일은 참을만하다. 그냥 '내가 진짜 미쳤지 그땐 왜 그랬나 몰라'하고 넘기면 그만이다. 문제는 할 말을 제대로 못했던 상황이나 부당한 일을 참고 그냥 넘겼던 일들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만큼 마음이 괴롭진 않지만 생각을 지금까지 끌고 온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다. 어차피 이미 지나간 일들인데 그냥 잊히면 얼마나 좋을까. 한동안 잊고 있던 기억들도 왜 그렇게 줄줄이 떠오르는 것인지.
한번 생각에 늪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퍼져나간다. 그리곤 그때 못했던 말들을 정신없이 퍼붓고 또 퍼붓는다. 그 소리는 점차 자기 비하로 바뀌어 밤새 나를 괴롭힌다. 맘대로 멈출 수 없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나는 세상을 왜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살아가는 것인지, 안 그래도 힘든 세상 좀 편하고 단순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 내 특화된 기억력은 토통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생각에서라도 자유로워져 평정심을 찾을 수 있다면 잠이라도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을 힘들게 보내는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두 가지 방법이 나에게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첫째는 '생각은 고통이다'라는 말을 생각에서 벗어날 때까지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속으로 책을 읽듯이 속발음을 하는 것이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해 밖에 있을 때도 써먹을 수 있다. 불현듯 떠밀려온 과한 생각에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가 시작됐다는 느낌을 받으면 지체 없이 되뇐다. 그렇게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던 생각에서 처음으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둘째는 나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방법은 생각이 막 차올라 느닷없는 분노에 휩싸였을 때 효과가 좋았다. 생각에 빠져들어 고통받을 때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곧 지나갈 감정임을 인지하고 이렇게 화나고 열받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일단 내 감정을 알아차리자 생각과 분노를 컨트롤 하기가 더 쉬워졌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애초에 이러한 감정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당황하면 중요한 순간에 말문이 턱 막혀 스스로에게 화가 나지만, 해야 할 말은 꼭 하고 넘어가려 한다. 그 상황이 이미 끝났더라도 괜찮다.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을 메모장에 잘 정리해서 카톡으로 보내면 된다. 말보다 글이 편하기도 하고 혼자 생각하는 동안 정리가 끝났기 때문에 내가 하려던 얘기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다.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꼭 하고 넘어가는 연습을 하다 보면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 댈 일들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나는 신중한 사람이라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그 신중함은 되려 나에게 더 많은 말들을 퍼붓고 생각에 늪에 빠지게 만들었다. 생각 속에서 아무리 퍼부어 대봤자 그 말은 결국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 쏟아진다. 그리곤 그 상처는 고스란히 내가 떠안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은 그런 고통 속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생각에서 자유로워져 더 풍요로운 꿈을 꾸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