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힘이 있거든요

말의 힘

by 라온

요즘 오늘의 웹툰이라는 드라마를 열심히 챙겨보고 있다.

주인공인 온마음 PD와 웹툰 작가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아주 재밌게 시청하고 있다.


그러다 극 중 등장인물인 임동희 작가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작가 지망생으로 10년 동안 데뷔하지 못하고 다른 작가의 작업실 고인물이 된 임동희 작가는 부정적인 말, 자조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인물이었다. 바로 나처럼.


작업실에 새로 들어온 신대륙 작가는 임동희 작가가 부정적인 말을 할 때마다 어떻게 자기 입으로 저런 소리를 내뱉나 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 올해 안에 데뷔할 건데요? 올해 안에 데뷔할 생각 아니었으면 굳이 여기 어시스턴트로 안 왔어요."

"야 패기 넘치네 아주 데뷔가 그렇게 쉬운 거였으면 뭐 아무나 다 했겠어."

"전 아무나가 아니니까요."

"그럼 나는 아무난가 보네 10년째 여기 있는 거 보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돼요. 그걸 입 밖으로 내뱉으면 더 그렇게 되고요. 말에는 힘이 있거든요."


"이번에 또 떨어지는 거 아냐?"

"왜 항상 그런 말을 해요? 자신을 낮추는 말. 부정적인 말."

"네가 나중에 데뷔하면 나 어쉬로 써주라."

"그럴게요. 써드릴게요."

"야 형이 농담한 거잖아."

"아무리 농담이라도 진심이 아닌 말은 입에 담지 마세요. 말에 힘은 강하거든요. 나쁜 생각을 내뱉으면 그 말대로 돼요. 자신이 한 말에 저주받은 것처럼."


"난 언제 데뷔하냐..."

"넌 아직 어리잖아 나처럼 한 10년은 해야지."

"형은 무슨 그런 저주를..."

"들었죠. 이제 그런 농담 하지 마세요. 남들이 들었을 때 저주로 느껴지는 말을 스스로 10년 동안 해온 거예요."

-오늘의 웹툰 중에서-


신대륙이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네가 이렇게 된 것도 다 네 탓이라고. 너의 부정적인 말이 너를 저주했기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임동희처럼, 생각하고 있던 말을 꼭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머릿속에 붕붕 떠다니던 부정적인 말을 꼭 내뱉어야 직성이 풀렸다.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이 날아와도, 말이 씨가 된다는 잔소리를 들어도 그때뿐이었다.

진심이 아닌 말들이었지만 매일이 그랬으니까, 난 그런 말 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대륙의 말처럼 부정적인 말은 힘이 세서, 점점 그 몸집은 커져만 갔고 그 기운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부정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계속해서 생겨났고 우울함과 달라지지 않는 모든 것들이 부정의 씨앗이 되었다.


임동희 작가도 그런 말을 내뱉긴 싫었지만 저절로 그렇게 말이 튀어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현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만약 자조 섞인 말 대신 긍정적인 말을 했다면 그는 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을까?

지금과는 상황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와중에 신대륙의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어두운 과거가 있는 듯 음침하고 불안한 상태나, 고시원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대륙도 마냥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또한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치고 그림실력이 좋지 못함에도 자신의 상황을 부정적이게 바라보거나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의 목표가 뭔지 명확히 알고 있었고 스스로를 믿을 줄도 알았다.


신대륙은 신작 데뷔를 앞두고 있고 임동희는 결국 꿈을 포기했다.


이쯤 되니 정말 10년 전부터 무심코 내뱉었던 말들이 지금에 나를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얼마나 비관적이게 삶을 살아왔던가. 생각만 해도 그렇게 될 일들이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를 진짜로 불운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는지.


물론 지금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삶이 반드시 나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정적으로만 삶을 바라본다면 그 말속에 갇힌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안다.


모쪼록 내가 만든 저주에 나를 가두고 아프게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좋은 말 예쁜 말을 들으면 건강하게 쑥쑥 자라는 식물처럼 나에게도 예쁜 말 좋은 말만 들려주면 어느 날 갑자기 예쁘게 꽃피어 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