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NHS 정신과 상담과정 (2) - 첫 상담을 받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 에피소드에는 죽음, 범죄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마음에 동요가 일 것 같다면 이 글을 읽기보다는 자신을 한번 돌보아주세요.)
Triage 상담 후 내게 상담사 B가 배정되었다. B는 다음 주 월요일 아침 11시 45분에 내 전화벨을 울렸다. 너무 이른 아침도, 너무 한낮도 아닌 적당히 어정쩡한 시간에. Triage 상담을 마치며 내가 고른 시간이었다. 목요일은 일주일 내내 상담 때문에 긴장을 하며 보낼까 봐서. 월요일 오전 8시는 정신과 상담을 받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시간이라서. 적당히 늑장을 부리면서도 남은 한 주의 무게를 더는 시간에 상담이 시작된다.
첫 통화에서 B는 Senior Psychiatrist와 회의를 통해 결정된 내 치료 프로그램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내게 앞으로 6회 차의 CBT를 진행한다고 Triage 상담 내용을 상기시켰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B가 내게 묻는다.
"제게는 내담자 분의 안전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서요. 요즘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때가 있을까요?"
이 어두운 질문이 참 가볍게도 날아든다. 예상치 못한 부조화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묻는 질문은 은밀하고 묵직하게 속삭이듯 물어야 하는 줄 알았다. 지붕이 무너져 내리진 않았다. 강도를 당한 것도 아니다. 최근에 온수가 끊겨 성가시긴 했다.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낄만한 일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폭탄이 날아드는 변방의 소식이 뉴스를 타고 날아든다. 어제는 10대 소년이 9살 소녀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뉴스를 읽었다. 그 전날에는 호주의 한 해변에서, 사람들이 동물처럼 사냥되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나는 죽을 상황에 놓여있진 않았다. 서둘러 "노."라고 대답했다. 너무 다급해 오히려 사실을 숨긴다는 인상을 남길까 눈치를 보면서.
나중에 깨달았지만 이 질문은 외부의 위협뿐만이 아니라 내가 나를 해하려는 마음이 없는지도 묻는 질문이었다. 숨은 뜻이 어찌 되었든 변화 없는 톤으로 묻는 안부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가 다치지 않고 잘 살아있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 내가 나의 가장 큰 위협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참 쉽게 잊는다. 나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치료를 받으러 온다. 스스로 지옥문을 여는 변수를 제거하고 나면 적어도 내가 사는 세상은 안전해 보이는 착시가 인다. '그래, 그래도 나 비명횡사할 일은 없어.' 죽고 싶은 허상에 가려진 진심이 고개를 든다. 나는 살고 싶은 거다.
이어서 세션 24시간 전 제출한 불안 및 기분 측정 설문을 두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했다. B는 지난번 설문과 비교해 불안은 많이 낮아졌지만 우울은 여전하다고 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모르겠다는 답밖에 할 수 없었다. 별 이유 없이 괜찮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머릿속이 텅 비어있었다. 머릿속이 비었다고 말하는 선택지들을 골랐다. B는 괜찮은 내 마음을 헤집어 안 괜찮은 구석을 들추었다. 다시 한번 질문을 이어갔다. 왜? 어째서? 무슨 이유로?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 쏟아졌고 나는 말할 기운을 소진해 갔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른다는 말이 오늘만큼 절실하게 와닿은 날이 없었다.
첫 상담을 마치며 우리는 문장완성 검사를 했다. "지금 내게 가장 큰 문제는?, " "불안한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신체반응은?, " 내 답을 받아 적은 그는 오늘 완성한 검사를 기반으로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자고 했다. 그는 전화를 끊기 전 내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 모든 과정의 운전수가 나라는 말이다. "Sounds good, " 하며 답했지만 '제발 떠먹여 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융통성 없는 인간 소리를 들을까 봐 '그래, 좋아.'를 습관처럼 달고 살았다. 한두 번은 괜찮다고 말하며 수 천 번 마음에도 없는 동의를 하고 보니 내 문제에도 괜찮다고 답하고 있다. 떠먹여 줄 수 없다는 사람 앞에 앉아 배가 부르다고 거짓말하는 어린애처럼.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혼자서 떠먹는 법을 배우는 치료가 CBT 아닐까. 상담사는 나를 돌봐줄 이가 없는 차가운 사실을 가르친다. 스스로 숟가락 드는 근육을 기르라 한다. 첫 상담을 마치며, 나는 아직 손가락 하나 들기도 벅찬 아기가 된다. 허나 이미 세상에 던져졌으므로, 자궁을 떠난 아기는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 탯줄은 끊겼다. 아직 덜 여문 것만 같은 배꼽 주변을 훑다가 숨을 몰아쉰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 깊은 곳까지 빨려든다. 내가 존재하는 걸 안다. 이미 세상에 던져졌으므로. 숨을 곳이 없는 나를 추슬러 내 손에 숟가락을 꼭 쥐어주어야 한다. 그 힘으로 굶지 말고, 아프지 말고 잘 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