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이렇게 또 편지를 보내네. 주말에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 나는 지금 행복한가 물어봤는데, 새삼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오늘은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해.
회사를 입사하고, 일을 시작하며 이 일이 내게 맞나,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게 맞나 끊임없이 고민할 때 즈음부터 너는 행복에 대해서 탐구하고, 갈구했었지. 행복에 관한 TED 강의를 찾아보고, 책을 찾아서 읽고, 주변에 묻기도 하고 말이야.
독일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어. 한국을 떠나, 이 연고도 없는 독일에 사는 이유가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였는데, 그 행복을 찾았는지 항상 생각해왔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고 퇴사를 하고 한국을 떠나서 독일로 나온 걸 보면 그때 행복하지 않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지. 하지만 독일에 와서가 문제였지. 독일에 와서도 밥벌이는 해야 하니, 직장은 계속 다녀야 했고, 독일에 살면서 독일어는 배워야 하니 퇴근하고는 학원도 가야 했어. 간혹 마주치는 ‘외국인’으로서 받는 불합리함에 곤혹스럽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에 당황하기도 했지.
그런데 말이야. 독일에 와서 살면서 내가 알게 된 몇 가지가 ‘나는 지금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아.
첫 번째로는 행복은 갑자기 어느 한순간 완성되는 게 아닌 것 같더라.
사실 이건 한국에 있을 때부터 생각했던 건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면 행복해질 거다. 군대에 있을 때는 전역만 하면 행복해질 거다. 대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행복해질 거다. 막상 취직하고 나니까, 다들 결혼하면 안정적이고 행복해질 거다 라는 말들을 하더라.
합격증, 전역증, 사원증을 손에 쥐었을 때, 그 순간만큼은 너무 행복하다 싶었어. 그런데 그런 기쁨은 오래가지 않더라. 그래, 그건 행복이라기보다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었어. 그 감정의 최고점을 찍는 순간은 오래가지 않더라고.
행복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어. 로또 1등 당첨 같은, 인생의 두 번은 못 만날 엄청난 행운을 마주친 사람이나, 사고로 인해 반신불구가 되는, 생각만 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불운을 겪은 사람이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본인이 느끼는 행복도는 다시 평균치로 돌아온다고.
한 순간의 사건은, 경험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일상의 만족도가 중요한 것 같아.
두 번째로는 행복의 기준은 우리 모두가 다르다는 것.
이건 확실히 독일에서, 아니 독일이라 서라기보다 한국에서의 내 삶과 멀찌감치 떨어졌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해.
나는 한국에서 알게 모르게 타인과의 비교를 쉼 없이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상황도 그랬고. 누구는 어떤 학교를 들어갔고, 누구는 또 어떤 회사에 입사를 했고, 누구는 결혼을 했고 또 누구는 돈을 얼마나 벌었다더라. 듣지 않아도 되는 소식들, 듣고 싶지 않은 소식들도 아는 사람을 통해서건, SNS를 통해서건 들을 수밖에 없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너무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도 뭐라도 더 배우고, 뭐라도 더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다들 여행을 다니는 것 마저 스펙 같고, 여행도 가지 않으면 나는 뒤쳐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던 것 같아.
그런데, 타지에 살면서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듣기보다는 온전히 내 삶에 집중하게 되면서, 맹목적으로 많은 돈을 버는 걸 목표로 하기보다 내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돈을 벌어서 살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취미생활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해보고 여가시간은 그것들로 채워가고, 인맥을 위해서 가기 싫은 술자리, 약속을 가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을 때 가끔씩 만날 수 있는 이 삶이 내게는 더 맞더라.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건 내게 오늘이 행복하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인 것 같아.
마지막으로, 행복한 삶이라는 게 매일이 완벽하고,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는 것.
예전에 배우이자, 산울림 보컬이신 김창완 씨가 직장생활로 살이 쭉쭉 빠진다는 라디오 청취자가 보낸 사연에 답장을 이렇게 하셨었어. 종이 한 장에 그 청취자에게 글을 쓰시고는, 여백에 동그라미를 그려봤다. 그랬더니 47개더라. 그중에서 완벽한 동그라미라고 할 만한 건 2개 정도 되더라. 회사생활 47일 중에서도 완벽하다 싶은 날은 이틀 정도 될 수 있다. 그래도 내가 그린 동그라미를 누가 네모나 세모라고 하겠냐고. 완벽한 동그라미는 아니어도 나머지 45개도 동그라미라고.
매일이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완벽한 날일 수는 없다는 이 교과서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나는 이제야 서른이 넘어서야, 받아들였어. 동시에 내가 다니고 있다는 직장이 전혀 문제없고, 100% 만족할 수 없다는 것도,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해서도 모든 게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것도 이제야 받아들였지.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것, 타협하는 것에 수긍한 거지.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진 것 같아.
나는 행복이 커다란 다이아몬드 하나를 찾아내는 거라고, 그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해야 되고, 갈구해야 된다고만 생각했었어. 그런데 지금은 그냥 내가 가는 이 길 옆이나, 저기 들판에, 혹은 저 멀리 산에 피어있는 풀들, 자그마한 꽃들, 운 좋으면 아주 색도 예쁘고 커다란 꽃들도 하나씩 모아서 엮어다가 꽃다발로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해. 남들이 봤을 때 보잘것없을 수 있는 들풀도 내가 마음에 들면 그 꽃다발에 넣어두기도 하고, 누군가는 쌈으로 먹는 거 아니냐는 저 산나물도 내가 마음에 들면 꽃다발에 넣어서 엮어내는 거지. 어차피 내가 만드는 꽃다발은 내 마음에 들면 되는 거니까.
오늘은 힘들 수 있겠지만, 내일도 힘들라는 법이 없고, 반대로 오늘이 너무 꿈같은 날이어도 하루 만에 롤러코스터처럼 곤두박질칠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모든 날들이 네 삶이니까, 너도 나도 오늘 하루는 감사하며 살아보자. 그럼 또 연락할게.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