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게 자람에 감사하되,
귀하게 자라려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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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안녕, 그동안 별일 없었니?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려고 해.


얼마 전에 얘기를 나누다가, 어떤 사람을 보고 ‘곱게 자란 것 같다’라는 얘기를 하는 걸 들었어.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 어떻게 저 사람을 보고, 곱게 자란 것 같다, 귀하게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나랑 그걸 비교해서 말씀하실까.(그때 얘기하던 상황이, 나랑 그 사람을 두고 하는 얘기 었거든)


네가 더 잘 알겠지만, 너 그렇게까지 ‘막’ 자란 것도 아니야. 오히려 꽤나 귀하게, 곱게 컸지. 요즘 흔히들 하는 말로 금수저는 아니지만(아, 금으로 된 수저 물고 태어났다는 말로,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같은 말들도 있어. 들어보면 알겠지만, 뭐가 됐든 간에 별로 좋은 느낌의 단어들은 아닌 것 같아. 어떤 수저를 물었든 간에, 나는 그 수저를 문 사람이 더 중요한 거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돈 때문에 크게 고생한 적 없었고, 아르바이트라고는 부모님 가게에서 일하는 거 말고는 경험 삼아 몇 번 짧게 했던 것뿐이고, 그렇다고 가족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범하고, 무난하고,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사람으로 자랐었던 것 같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지.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은 어려서부터 아르바이트도 꽤 많이 했었거든. 돈 벌어서 자기 좋아하는 신발도 사고, 옷도 사고 했는데 너는 막내라고 형 옷 입고, 형 신발 신고, 가지고 싶은 거 있으면 부모님이 사주시고. 형이 사주고.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그래서 문방구 사장님도 너를 참 좋아했었지. 당시에 꽤 비싼 장난감이어도, 가격을 물어보면 조금 있다가 아버지한테 돈을 받아서 사러 왔으니까.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조르고, 사달라고 드러눕고 그럴 일도 없었어.


이런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사춘기가 덮쳐서 ‘중2병’에 걸리고 했던 적도 없었고, 갑자기 인생에 큰 위기가 온 적도 없었어. 서울에 있는 적당한 대학교에 입학했고, 원래 졸업시기보다 1년 늦게 입사하기는 했지만 회사도 입사했고 말이야.

인생이 무난했고, 무탈했어. 그래서일까, 20대가 되어서야, 직장인이 되어서야 어렸을 적 고민했으면 좋았을 것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잘하는 것, 또 못하는 건 뭘까. 그런 내가 진짜 되고 싶은 건 뭐지. 내가 잘하는 일은 어떤 거고, 어떤 일은 때려 죽어도 하기 싫은 걸까. 내가 삶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돈일까, 일상의 행복일까, 명예일까 등등.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다 찾았다는 건 아니지만,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부터 내 삶의 방향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고민들을 시작하고 나서, 회사도 그만뒀고 독일로도 떠나온 거기도 하고 말이야.


독일에 도착한 후에 내가 처음으로 일했던 곳은 한식당이었어.

도착했을 때는 한인 민박에서 지내면서, 혹시 몰라서 한국에서 뽑아온 이력서를 가방에 넣어두고 다녔어. 그러다가 ‘워킹 홀리데이 구인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던,광객들한테 독일 제품을 파는 곳에 들어가서 이력서와 함께 지원했지.


그때는 사장님이 안 계셔서 직원분이 전달 주신다고 했고, 조금 있다가 연락이 와서 찾아뵀는데, 지금 이 곳에는 사람이 안 필요한데 한식당도 같이 운영하는 데 그쪽에서 일해보는 건 어떠냐고 하시더라고.


당장 한다고 했어. 어떻게 보면 되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그전까지 어디에서 서빙이라고는 해볼 생각도, 해본 적도 없었어.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학생 때 돈이 필요할 때는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지냈었고, 대학 등록금도 국가장학금 제외하고는 다 부모님이 내주셨었지.


그런데 그때는 어떤 생각을 했냐면, 이게 꼭 내게 기회 같았어.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안 해봤던 내가 부모님이나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이제야, 손님이 오시면 인사도 드리고, 안내도 드리고, 서빙도 하는 일들을 해볼 수 있는 기회.

아, 한식당에서 일했다는 얘기는 아직도 부모님께는 한 번도 안 했어. 독일에서 생활하는 게 어렵지 않냐고 어느 정도 자리도 잡은 지금도 부모님은 걱정하시거든.


오랜 기간 일한 건 아니었지만,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고 배운 것도 있었어.

작게는 식당에서 쓸 수 있는 몇 가지 독일어를 생활에서 배울 수 있었고, 크게는 일하는 데 새삼 태도가 중요하구나 느낄 수 있었어.

식당 뒤에는 호텔이 있어서, 한국 손님 말고도 외국 손님들도 오곤 했는데, 그때 내가 일하는 시간에 일본인 손님들이 오셔서 '맛있게 드세요' 같은 말을 정말 짧은 일본어로 전해드렸는데 그렇게 좋아해 주시더라고. 내가 여행 갔을 때 외국인 서버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만 말해도 괜히 오- 하면서 기분 좋았던 것처럼 말이야.


또 파독 광부, 간호사로 오셨던 1세대 어르신분들이 단체로 점심 식사를 하셨을 때가 있었어. 그때 어르신들이니까 당연히 말씀드릴 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하는 것처럼 반무릎을 꿇고 말씀드리고 필요한 것 없으신지 살피고 했었는데, 한 어르신이 부르시더니 독일 온 지 얼마나 됐는지, 얼마나 있을 예정인지 여쭤보시더라. 그래서 ‘음 왜 물어보시지’하면서도 답을 드렸지. 나가시기 전에, 그렇게 여쭤보신 어르신 옆에 계신 어르신이 본인도 식당을 하시는 데 일종의 스카우트 제의를 하고 싶으셨다는 거였어.


때쯤에는 내가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하기로 정해진 상태여서, 정중히 거절을 했지만 기분 좋은 일이었어. 복잡하지 않은 일도 조금만 긍정적으로 열심히 하면 누군가는 알아봐 주시는구나라는 마음이 들어서.


독일에 와서 나는 한국에서 배웠던 것들, 한국에서 해왔던 일들에 갇혀서 일을 구해본 적이 없어. 새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런 것들을 배웠고, 해왔기 때문에 독일에서도 이런 일을 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일을 구하지도, 하지도 않았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일단 시작했고, 해왔어.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다른 기회가 주어지고, 그 일을 다시 해내다 보니 다른 기회가 열리기 시작하더라.

당연히 나랑 관련이 없는 일이니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니까 나는 못할 거야 라고 생각했거나, 주변 친구들은 벌써 이런 일, 저런 일들을 하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지내면 뒤쳐지는 거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면 못했을 일들. 그런 너 자신만의 생각이 너를 가둬버릴 수 도 있어.


부모님이, 상황이 너를 귀하게, 편하게 성장할 수 있음에는 감사해야지. 나는 내 인생의 첫 번째 행운이 항상 우리 부모님께 태어나고 자란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너를 계속 귀하게 자라고, 가두는 건 너 자신일 거야. 네모난 수박은 어렸을 적부터 네모난 틀 안에서 키워서 네모난 데, 네가 원하는 게 길쭉하고 커다란 수박이라면 그 틀을 깨는 것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원해도 그 갇혀있는 틀을 깨지 않으면 너는 동그랗게, 길쭉하게, 커다랗게 자랄 수가 없어.


그럼 또 연락할게. 날도 더운데 건강 조심하고, 네가 좋아하는 수박도 한 조각 썰어먹고.


날이 더운 어느 여름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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