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은 특별히 편지를 읽기 전에 노래를 한 곡 틀어줬으면 해. Ennio Morricone의 Love affair Piano solo로.
이 음악은 들어보면, 아마 익숙할 거야. 맞아, 형이 자기 전에 한 번씩 듣던 음악이지. 이 노래 말고도 Jim Chappell의 Lullaby도 그렇고. 잠들기 전에 들으면, 꼭 좋은 꿈을 꿀 것 같은, 혹은 그런 꿈도 꾸지 않고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음악들이었어.
어제 Ennio Morricone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사람도 아니고, 그 유명한 시네마 천국도 아직 보지 못했으면서, 또 그의 음악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 소식에 아침부터 마치 잘 아는 사람의 죽음 인양 충격받았고 슬퍼했어.
아마 누군가의 죽음이 슬픈 이유는 그와 공유한 기억이 있어서 인 것 같아.
내게는 그의 몇 음악들이 그랬어. (정확히는 그와 공유한 게 아니라 나 혼자서 간직한 기억이지만) 심야시간에 라디오를 틀면 종종 들을 수 있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형이 듣던 음악에도 녹아있었지. 모두가 영화 음악이었지만, 음악이 영화보다 더 잘 알려진 경우가 많았고, 음악 때문에 영화를 알게 되어서 찾아보게 된 것도 있었어. 너도 들어보면 알겠지만, 귀에 익은 노래들이 많을 거야.
나이가 한 살씩 먹으면서, 가족, 아는 사람, 그 아는 사람의 가족, 그리고 멀게는 방송, 인터넷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나만 아는 사람들의 죽음까지 전해 듣곤 하지. 그런데 어떠한 죽음도 내게 전혀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야. (물론, 누구에게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겠지만)
누군가의 죽음이 슬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다시는 그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시는 그 사람에게 고맙다, 반갑다, 사랑한다고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다시는 그 사람의 새로운 연기, 음악,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그런 사실까지도 우리를 아쉽고, 슬프게 만들겠지.
말하자면 그 사람과의 기억이 (나와 그 사람 모두가 가지는 기억일 수도, 나 혼자만의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기억에서만 머무르고, 더 이상 현실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 되기에, 슬퍼지는 게 아닌가 싶어.
그래서 타인의 죽음은 항상 안타까움을 남겨.
그때, 말로만 밥 한번 먹자고 하지 말고, 할 말이 많지 않더라도 밥 한번 먹을 걸. 그때 친구들과 놀기 바쁘다고, 혹은 귀찮다고 안 갔는데 그러지 말걸. 그 가수 콘서트 있을 때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말걸, 그랬어야 했는데 하고 자꾸 아쉬움을 남겨.
가끔 나는 너무 확실한 사실을 잊고 살 때가 있어. 우리의 삶은 짧든, 길든 끝이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잊고 내 주변 사람들부터, 가까이에 있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
누군가의 죽음 뒤에는 안타까움, 후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변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끝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살면, 지금 이 순간이 생각보다 더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유럽에 와서, 오랜 기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서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무덤덤해지고, 중간에는 지겹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얼른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막상 갈 때쯤 되니까 아쉽더래. 끝이 가까워오니 그 시간들이 다 소중했다는 걸 느낀 거지.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자체가 가장 긴 여행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천상병 시인이 귀천에서 말했듯,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일 수도 있는 거고. 짧든 길든 잠시 왔다가는 거니까.
우리는 태어나서, 한 번의 삶을 살고 죽어. 종교에 따라서는 천국을, 지옥을 가기도 하고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도 한다고 하지만, 어쨌든 이 삶에서 사는 내 인생은 이번 한 번뿐인 건 변치 않잖아. 내 삶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항상 너에게도, 그리고 누구에게도 죽음은 필연적이라는 걸, 그렇기 때문에 오늘 네 곁에 있는 모든 이가 내일도 곁에 있지는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지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