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보고 있어야 할 너는 과연 지금의 나를 좋아할까? 이십 년쯤 전에는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도 같고, 십 년 전쯤에는 그냥 돈이나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지금의 나는 뭐가 된 걸까? 실망하겠지만,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안됐어.
아무것도 안된 주제에 너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내 말을 귀 기울여, 아니 들리진 않을 테니 주의 깊게 보기나 할까 싶네. 맞아. 서른하나인 나는 지금 특별히 돈을 많이 번다거나, 끝내주는 직장을 다닌다거나, 혹은 흔히 말하는 철밥통을 동여맸다거나 하진 않았어.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어.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자기소개서부터 시작해서, 인적성검사, 면접에 이르는 그 난관들을 넘어보겠다고 스터디 그룹까지 몇 개씩 만들었었지.
그렇게 이름 있는 기업, 좀 더 포괄적으로는 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혹은 취업을 뽀개 준다는 유명 인터넷 카페에 면접 후기 하나 올리면 조회수며, 댓글이 빵빵하게 터지는 그런 기업들. 그 기업들의 사원증 한번 걸어보겠다며 동기들 몇 명이 모여서, 빈 강의실에서 자소서를 (가장한 자소설을) 공장처럼 찍어냈어. 인적성 검사에서는 인성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며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들어서 1순위로 협업, 2순위로 적응력 순으로 순위를 매겨서, 이전 문항에 제대로 답했는지 체크까지 하며 새로운 나를 만들어냈었어. 면접에서는 몇 번 탈락 후에 제스처, 목소리 강약부터 시작해서 녹화까지 하면서 한 장면을 연기하듯 ‘연출’했지. 그렇게 해서 남들이 들으면 다들 알만한 대기업에 합격했어.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열심히 했지. 다시 한다고 해도 그때만큼 열심히 할 수 없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자소설’을 쓰고, 새로운 인격을 만들고, 너 자신을 연출한 결과였을까.
합격 발표 메일을 받은 그 순간의 짜릿함 말고는, 그 회사를 다니며 행복했던 장면은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더라. 물론, 넌 가족의 자랑이었어. 하지만 생각보다 그 사원증이 너 자신을 자랑스럽게 만들지는 않더라. 별을 보며 출근하고 일에서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다시 별을 보며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취한 채 퇴근하는 일상들 속에서 점점 더 의문이 들었지.
‘이게 정말 내가 되고 싶던 건가. 내가 바라던 건가. 그렇다면 내가 잘 못된 꿈을 꾸고 있었던 거 아닐까.’
아니, 사실 그건 내 꿈이 아니었던 거야. 내가 되고 싶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벽 하나를 넘으면 그 벽 뒤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느끼지 못했던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지. 고 3 때 대학교가 그랬고, 대학교 졸업 후에는 직장이 그랬지. 저것만 얻으면 뭔가 달라지겠지, 더 나아지겠지.
그래서 그만뒀어. 지금에야 그냥 이렇게 그만뒀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 나는 정말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 가족, 혹은 친구들과도 이야기하기 조금 힘들었어. 그래서 휴가를 내고 서울로 올라가는 KTX 안에서 상담센터에 예약을 하고, 그곳에서 보내준 폼에 모든 걸 상세하게 작성해 보냈지.
상담을 하는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이 나이 때에, 이렇게까지 상담을 하겠다고 나선 것부터, 상담 전 작성하는 것까지 빈칸 없이 완성시켜서 보내신 거보니까 정말 고민 많이 하신 것 같더라고. 사실 오늘은 상담이 없는 날인데, 내가 이 날 밖에 안된다고 해서, 나 때문에 나오신 거라고.
고마웠어. 나는 그때 무조건 내편이 되어 줄 사람도, 아니면 지금은 잠시 힘들지만 좀 버텨보라고 얘기해줄 사람도 필요하지 않았어. 그냥 내가 너무 나약해서, 못 버티는 것뿐인지 혹은 퇴사를 고민할 만큼 힘든 건지 객관적으로 ‘판단’ 해 줄 사람이 필요했어. 물론 상담 선생님이 내게 퇴사를 해야겠다, 말아야겠다 라는 답을 주시지도 않을 거고, 주신다고 해도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 해서 간 건 아니었어.
그런데,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가감 없이 내 얘기를 다 하다 보니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내가 나 자신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때 상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각나.
‘제가 지금 퇴사를 하는 게 맞다, 아니다고 말씀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첫째로, 회사나 조직이 발전을 더 할 거라는 희망도 못 느끼겠고 둘째로, 본인의 역량 발전도 못 느끼고 있고, 마지막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친다고 느껴진다면 본인의 생각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쉬면서 생각 정리 좀 할까 싶어서 독일로 1년 정도 오게 되었지.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한국보다 독일에서의 삶이 더 나와 맞더라. 그래서 살게 된 게 벌써 3년 차네.
참 신기하지? 적어도 독일로 떠나오기 전에 나는 외국에서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았고, 대학생 때도 주변에서 한 번씩 가는 유럽여행을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해서 한 번도 안 갔는데 지금은 부산에서 돼지국밥 먹는 것보다, 파리에서 스테이크 먹는 게 더 빠르고, 싸게 먹혀.
여기서도, 똑같이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고 있어. 이직도 한 번 해서 지금 두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고. 세금도 워낙 많이 내는 나라니까, 한국에서 내 손에 들어오던 월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월급을 받고 있는데도 그때보다 나는 훨씬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
시간이 날 때는 이렇게 글도 쓰고 있고, 유튜브로 그림도 배우면서 가끔씩 그리기도 하고, 삶에 쫓기고, 치이는 게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야 '내'가 된 것 같아. 또 연락할게.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