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 하루는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고 나서 가장 오랫동안 떨어져 있기 시작한 첫날이야.(몇 년 후의 내가 이 글을 본다면 웃길만큼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 이 사람을 만나고 나서 내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볼까 봐.
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결혼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결혼 생각 없다’, ‘비혼주의다’라고 그냥 쉽게 말했었지. 음, 사실 너는 비혼주의도 결혼 생각도 없는 게 아닐 수 있어. 그냥 그렇게 말하는 게 좀 더 있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마치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결혼을 피하거나 혹은 결혼이라는 것은 너와 절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사실 너는 그냥 결혼이 무서웠던 거야.
어떤 한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과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만큼 오랜 시간을 보낼 거라며, 나와 상대방이 아는 수많은 사람, 거기에 그 두 사람의 부모님들이 아는 사람들까지 불러내어 성대하게 그들 앞에서 서약하는 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 둘이 만나서 이제는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르고, 주민센터에서 뽑는 푸른 주민등록등본에도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히게 되는 일. 언젠가는 이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지는 그런 일. 그걸 결혼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한 사람과 평생을(물론, 평생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막연하게 평생이라고 생각했지) 함께 살아가는 그 엄청난 일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두려웠지.
그리고 어떻게 이 사람이 내 인생의 동반자라는 걸 확신할 수 있지? 지금 이 사람이 서로의 삶에 곁에 두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고 서약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너는 이미 결혼한 인생 선배들에게 자주 묻곤 했어. 지금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게 되리라는걸, 이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냐고. 다들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 그냥 알게 된다고, 아 이 사람과 결혼하겠구나 하고 자연스레 알게 된다고. 막연한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아 저 사람들도 왜 결혼한 건지는 잘 모르는 거겠구나’하고 생각했지.
아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결혼에 대해서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던 건 아니야. 지난 인연 중 ‘아 이 사람과 결혼을 하면 어떨까?’ ‘결혼하고 살면 이런 건 맞겠고, 저런 건 안 맞겠다’ 생각도 해봤었지.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아 이런 건 안 맞겠구나 라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졌었어. 그래, 물론 완벽하게 잘 들어맞는 사람은 없겠지만, ‘음, 이 사람과 결혼을 하고 함께 살아가면서는 이런 건 계속 삐그덕하겠구나’하는 것들은 더더욱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잃게 했지.
작게는 식습관부터 시작해서, 생활패턴, 크게는 가치관까지 나와 정확히 맞지 않는 것이 한두 개도 아니고, 게다가 나 혼자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데,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함은 내게 어쩌면 짐이 아닐까. 나는 그냥 결혼보다는 혼자 살아가는 게 더 맞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지.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을 거다. 비혼주의다 라며 결혼으로부터 도망을 갔었어. 맞아, 겁이 났었을 거야.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거든.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결혼이라는 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며 인생을 같이 그려간다는 게 그렇게까지 두려운 일이거나 미친 짓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깜깜한 방 안에서 불빛에 비친 공룡 인형의 커다란 그림자만 보고 진짜 커다란 공룡을 만난 듯 겁에 질린 아이처럼,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실제보다 너무 커다란 부담을 가지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그때의 너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꼭 결혼하면 많은 걸 책임져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어깨에 ‘짐’이 지워진다고. 내 자유는 반납되는 거고… 그러니까 그냥 하지 말라고. 어쩌면 인터넷에서 밈(Meme)처럼 떠도는 결혼에 대한 우스갯소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미 결혼한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응? 그거 우스갯소리 아닌데 사실인데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늬들은 결혼하지마라. 왜. 그냥 --
하지만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은 좀 다르거든.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겠다’도 아니고, ‘결혼하고 싶다’도 아니고, ‘평생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으니 결혼을 해야만 하겠다’야. 그리고 이 사람을 만나며,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내 편견을 바꿀 수 있었어.
결혼은 내가 혼자서 둘을 책임지고, 끌고 가야 하는 게 아니구나,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앞에 보이는 수많은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오르내리는 여정을 함께 하는 거구나. 내가 이 사람보다 지도를 잘 본다면 내가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내고, 이 사람이 나보다 흥정을 잘해서 더 값싸고 좋은 숙소를 찾아내서 더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맛있는 걸 먹여주며 하루를 끝낼 수 있는 그런 여정을 함께 하는 거구나.
어렸을 적부터 결혼식에 가면, 주례말씀에 수없이 들었던, 부족한 점은 서로 채워주고, 곁에서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그런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게 결혼일 텐데,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가까운 친구들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네가?”라며 놀라더라. 그만큼 넌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이었고,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기도 한 사람이었으니까. 누군가와 지금 함께 살고 있다는 게, 그리고 결혼을 계획 중이라는 게 놀라운 일이었지. 그런데 함께 살고 있다고 해서, 결혼한다고 해서 네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니야. 지금 난 오히려 혼자 있을 때보다, 더 나다운 걸 느껴. 이 사람은 내가 글 쓰는 걸 누구보다 기다려주고, 좋아해 주고 춤추고 까불고 노래 부르는 나를 가장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주거든. 심지어 동영상을 찍어서 보여줬는데 나는 피해버릴 수밖에 없는 그 모습까지도 몇 번이나 사랑스럽다고 봐주더라. 세상에.
그런 생각도 하곤 해. 내가 이렇게 결혼에 대해 지금 생각이 바뀐 것처럼 몇 년 뒤에 다시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까? 몇 년 전의 결혼에 대해 후회할 수도 있을까?
첫 번째로, 일단 ‘지금의 나’로서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두 번째로, 만약 후회하게 된다 해도 이 사람과의 결혼을 선택했는데도 후회한다면, 누구와 했어도 후회했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지금 나는 이 사람이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
게다가 내가 너에게 보내는 이 편지도 너는 못 보는데, 몇 년 뒤 내가 지금의 나한테 무슨 얘기를 한다고 해서 내가 지금 듣겠니.
너는 이렇게나 달라졌어. 사랑하는 사람과 오늘만 생각하지 않고, 내일을 생각하는 그때 네가 생각한 ‘틀에 박힌’ 그런 사람이 되었어. 그런데도 나는 그때의 너보다 오늘의 내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 이렇게 우린 어제보다 오늘 더 변했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변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