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은 일요일이었고 날씨가 조금 흐렸어. 집에서 혼자 밥을 해 먹고, 과일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거 말고는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었지. 말 그대로 한량이었네.
너에게 일요일은 아버지, 형과 혹은 아버지와 단둘이서 사우나를 가는 날이었을 거야. 뜨거운 사우나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아버지의 일어났냐는 전화를 받으면 으레 10개를 사면 1개를 더 줘서 미리 사놓았던 그 사우나 티켓을 두, 세장 뜯어내어 우성슈퍼 앞에서 만나, 1020번 버스를 타거나 혹은 차를 타고 사우나로 향했지. 산 아래 있어 등산객이 유난히도 많던 그 사우나가 물이 좋다며, 언제부턴가 동네 지하 사우나보다는 그곳으로 갔었지.
너도 불평불만은 안 했어. 오는 길에 사 먹는 빵집의 빵이 유난히도 맛있었거든. 남들이 사우나 끝나면 박카스나 바나나 우유, 삼각 커피우유를 먹듯, 넌 꼭 그 빵집의 빵을 한 봉지 가득 들고 집으로 향했었어. 아마 그래서 사우나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일요일의 사우나를 기다리고는 했었던 것 같아.
빵 말고도 사우나 끝나고 나와서는, 어머니의 일요일은 밥하기 귀찮다며 밥은 꼭 먹고 오라는 말씀에 근처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었어. 등산객 중에 식도락이 많다며, 산 아래 식당은 맛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택시 기사님의 말마따나, 한 번 먹어서 탐탁지 않은 곳은 어김없이 몇 개월 뒤에는 꼭 문을 닫더라고. (사실 식당이 안 그런 곳이 없겠지만, 시내에는 은근히 그런 곳이 좀 있거든)
그래서 그 근처에 꽤 오래 영업을 하는 곳들이면 믿고 갈만했어. 아, 한 곳 예외가 있었다면 생긴지 얼마 안 됐던 그 매운탕 집. 그 매운탕 집은 처음 갔을 때 가정집에서 쓸 것 같은, 뚜껑에 빨간 장미 그림이 그려진 자기 냄비에 매운탕을 내었고,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처음 간 날 자리에 앉아 형과 눈이 마주쳤을 때, ‘아 잘 못 골랐다’라는 암묵적인 눈빛을 나눴었지. 첫 한 입, 별로였어. 그런데 매운탕은 끓이면 끓일수록 더 깊어지고 맛있어지잖아. 다 먹을 때쯤에는 묘하게 그 냄비와 어울리는 식당이라고 생각했어.
식당에서 내놓는 맛처럼 자극적이지 않았고, 된장을 베이스로 삼아서인지 끓일수록 구수하고 가정집에서 내놓는 매운탕 같았거든. 그래서 그 이후로 몇 번은 더 갔었지. 별미였어.
그런데 그때는 사실 토요일에 약속을 갔다가 들어오면, 하루 남은 주말인 일요일에 혼자 쉬고 싶기도 했었어. 그래서 아버지에게 오늘은 안 가겠다고 한 적도 있었지. 그런데 독일에 오고 나서 자주 그때가 생각나. 별로 바쁜 것도 아니면서 일주일 중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때가 그때뿐이었던 것 같거든. 평일엔 저녁 식사를 아버지와 함께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학교 다닐 때는 밖에서 먹고 오는 날이 더 많았고,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울산으로 내려가 있어서, 서울에 가더라도 출근 때문에 다시 일요일에는 울산으로 내려가야 했었으니까.
사실 너에게 주어진 일요일의 사우나는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몰라. 형도 독립하고 나서는 아버지 등 밀어드릴 아들내미도 없다고 생각하면 그때 더 자주 갈 걸 그랬나 싶어. 너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더 없어질 거야.
아버지 혼자 사우나를 다녀오신 날에도, 낮잠에서 깨서 거실에 나와보면 소파 위에 하얀색 빵 봉지가 있었고, 그 건 온전히 너를 위한 거였어. 아버지는 그때도 너를 생각했던 거겠지. 당연한 게 더는 당연한 게 되지 않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는 것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