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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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사실 이 편지를 쓸지말지 몇 번은 고민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첫 번째는 편지를 보내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모든 글에는 화자가 있으면, 독자가 있어야 그로써 글이라는 형태가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쓰는 이 글을 읽기 바라는 네가 이 글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짧게는 몇 년전, 혹은 십 년전, 이십 년 전의 네게, 아니 내게 쓰는 이 편지는 시간을 거슬러 닿을 방법이 없다.


두 번째로는 내가 이 편지를 지금 이 시점에서 써도 후회하지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 나는 서른 하나가 되었다. 한국에서 서른이라는 나이는 꽤나 의미가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어렸을 적 서른은 ‘아저씨’였고 ‘어른’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서른 살은 처음 민증을 받고 술집에 가면 그렇게 당당할 수 가 없던 그 스무살 때에 비해 몇가지의 경험을 더했을 뿐 여전히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물론 겉모습은 이미 아저씨일지라도)


박새별이라는 아티스트의 노래 중 ‘아직 스무살’이라는 노래 가사 중 이런 가사가 있다.



“ 나는 스무 살 때와 변한 게 없는데

왜 모두 나에게 현실을 보라 하는지

왜 나는 스무 살 때와 변한게 없는지

왜 모든 일들이 그저 힘겹기만 한지 ”


- <아직 스무살> 박새별 -


내가 스무 살 때와 달라진 거라고는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를 다니고 인턴을 마치고, 다시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의 회사생활을 거쳐 지금은 독일에서 생활을 하고있다는, 물론 그 때의 너보다는 많은 경험이지만 그 뿐이다. 그 때의 너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았고, 그래서 그 시간을 나의 경험으로 채웠을 뿐 너보다 내가 더 성숙하고, 더 현명해졌다고 확신할 수 없다.


고작 서른하고도 한 살을 더 먹은 지금 이 시점에서, 키다리 아저씨인양, 어른인양 내게 ‘너보다 몇 년 더 살아보니 이런 게 후회되고, 이런 게 맞는거 같더라, 이건 좀 아니지 않냐’라고 ‘꼰대질’하는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는 이유는 네게 편지를 쓰면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단지 선생님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루하루 내게 일어난 일들을 다시 바라보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잘못이 있다면 반성하고, 잘한 일이 있다면 쓰다듬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또 다른 관점에서 다시 나를 바라보기 위함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장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글을 남겼고, 그 글이 지금의 ‘명상록’이라는 이름의 고전으로 남아있다. 물론 감히 지금 내가 쓰는 글을 명상록과 결을 같이 하고자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그 피튀기는 싸움터에서, 오늘 지키지않으면 내일 당장 빼앗길 수 있는 그 진영에서 그 책임감 아래서도 글을 써내려갔는데 내가 오늘 글을 쓰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나는 너고, 네가 자라서 되는게 나라는 사실을 알면 너는 다소 힘이 빠질 수도 있겠다 싶긴하다만, 어쩌겠니. 지금까지 네게 일어난 일들이 지금 나 자신을 만든 걸. 그래서 나도 네게 내가 과거로 돌아가면 하지도 않을 일들을 부탁하거나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가령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대학을 가라거나, 그 때부터 주식공부를 좀 해보라거나, 인터넷에서 무슨 무슨 코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일단 가지고 있는 용돈을 다 털어볼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라는 등의 바람을 담지는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네게 글을 쓰며 나도 모르게 조금 욕심이 생길 수도 있어, 지금은 다시 못할 것들에 대한 부탁을 적어내릴 수도 있다. 가령 다시는 보지 못하는 그 환하게 잘 웃던 후배녀석과 밥을 한 끼는 같이 먹었으면 하는, 혹은 독일로 떠나오기 전 할머니 생신에서 할머니가 널 잘 못알아보더라도 곁에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그 또한 다 후회고, 투정일지라도 네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니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햇살이 좋았다가, 흐렸다하는 초여름 날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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