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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Mar 14. 2021

너와 나 사이 거리 - 암막 커튼

 나는 지금 여자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많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지도 않았던(?) 나의 지금까지의 연애에 있어서 이렇게까지 떨어지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또 이렇게까지 다툼 한 번 없이 잘 지내고 있는 연애가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이 글을 여자 친구도 볼 것임을 알지만, 우리가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었기에 이미 다 아는 이야기 일 것을, 게다가 읽고는 기분 나빠하지 않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전 나의 연애에 대해 조금 끄집어 내보자면 난 이기적이었고, 지금보다 철이 없었고 어렸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 나를 만났던 여자 친구들에게는 생각해보면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든다.

 물론 이전에도 연애를 하며 그렇게까지 자주 다투거나, 영화나 드라마처럼 자주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했던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진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혹은 상대가 서로에게 맞추는 연애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이지 않고, 상대도 '나'이지 않은 연애는 그렇게 서로에게 맞추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나'로 돌아가고 그러다가 툭하고 인연의 끈을 놓아버리는 연애였던 것 같다. 음, 대게는 그 인연의 끈은 내가 놓곤 했던 것 같다. (물론, 상대 생각은 좀 다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함께 지내고 있는 여자 친구, 나아가 내가 '결혼을 해도 괜찮겠지'라는 마음보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게 만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내게 어떤 점에서 다른 걸까 생각해보고는 하는데. 사실 우리는 아직 다툰 적이 없다. 한쪽이 약간 삐지거나 한 적은 있을지 몰라도(이 조차도 한 시간도 못 갔지만), 감정싸움이나 아주 사소한 티격태격 다툼도 아직은 없었던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다툴 일이 없었다.

 이런 이유에는 당연히 단순하고 명확하게 '이 것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우리는 지금 독일에 살고 있고, 아무래도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커플이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도 않지만, 얼굴을 비춰야만 하는 모임이 하필 주말에 잡혀서, 못 만나게 되면 그걸로 다툼이 일어날 수 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혹은 결혼 전부터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동거'가 한국이라면 서로가 각자 부모님 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다거나, 주변의 시선 때문에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주변에 눈치 볼 필요도 없고, 함께 사는 삶이 우리에게 더 좋다면 선택할 수 있는 '거주 형태'였다.


 그런데 나는 이런 모든 것에 앞서서, 우리 서로의 관계, 그중에서도 그 안에서의 거리가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크게 보면 원룸 형태의 집인데, 그 안에서도 나름 거실이자, 작업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과 침실로 나눠진다. 그 두 공간 사이에는 아마도 지어졌을 당시에는 벽으로 나눠져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그 벽을 사각으로 뚫어서 흡사 '문'없는 '문'처럼 보이는 침실로의 출입구가 있다. 그 출입구를 바라보고 바로 오른쪽에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가끔은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는 작업공간인 책상을 벽에 붙여놓았다. 그럼 침실에 누워서 눈을 뜨면 그 책상에 앉아있는 내가 보이는 것이다.

 우린 이 출입구에 암막 커튼을 달았다. 위쪽에 커튼봉을 달고 아래에 연한 회색의 암막 커튼을 사서 달자, 보다 명확하게 공간이 분리가 되었다. 이 암막 커튼은 빛만 막아줄 뿐 아니라, 약간의 소음을 막아주는 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어쨌든 나는 이 암막 커튼이 우리 관계를, 우리 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친구는 밤잠이 없는 대신 아침잠이 많다. 나는 반대로 밤잠이 많은 대신 아침잠이 없다. 주말이 되면 여자 친구는 늦잠을 자는 편이지만(그런데 요즘은 여자 친구의 기상시간이 빨라졌다. 예전에 한창 잘 때는 주말 오후가 되어서야 눈을 뜰 때도 있다고도 하던데 요즘은 거의 매번 나보다 삼십 분 혹은 한두 시간이면 일어난다. 어찌 됐든 내가 일반적으로 더 먼저 일어나긴 한다.) 나는 이르면 여섯 시, 혹은 일곱 시쯤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1유로짜리 거품기로 윙윙 거품을 내서 라테 한잔을 만들어 마신다.


 우리의 일반적인 주말 루틴의 시작인데, 암막 커튼이 없을 때는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평일에도 일찍 깨는 날에는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공부를 하기도, 책을 읽기도 한다. 모두 암막 커튼 덕분이다.

 커튼이 양쪽에 하나씩 매달려있어 가운데를 살짝 젖히면 침실 안에서는 바깥의 불빛이, 바깥에서는 누워있는 상대의 실루엣이 보인다. 암막 커튼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지만, 그 뒤에는 내가, 그리고 여자 친구가 여전히 있다는 것을 안다.

 주말 아침에 혼자 일어나 라테 한잔으로 하루를 열며 이런저런 것들을 하는 걸 즐긴다. 여자 친구가 그 시간에 잠에 들어있는 것이, 늦게까지 잠을 자는 것이 나와 패턴이 달라서 서운하다거나, 싫다거나 하지 않다. 오히려 내가 여자 친구의 잠을 방해할까 최대한 조심하려고 한다. 반대로 여자 친구도 자고 있는 시간에 내가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거나, 연필로 뭔가를 끄적대는 소리를 내는 것에 불만을 느끼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너무 오래 자서 미안하다고 한다.

 아주 단편적인 이야기지만 이렇게 주말 아침을 보낼 때면 나는 우리가 잘 지내고 있는 큰 이유가 이런 건가 싶다.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 내 20대 연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또 머리로는 알던 것일지는 몰라도 상대에게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했던 것.




 물론 우린 이렇게 다른 점 말고도 비슷한 점이 더 많다. 음악이나 영화 취향이라든가 사람들을 만날 때는 다분히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집돌이, 집순이라는 성향적인 면도 그렇고, 감성,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포인트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다른 것들이 분명 있다.

 우선 나는 정리 정돈을 정말 잘 못하는 편이다. 여자 친구는 청소, 정리하는 데서 힘을 얻는 사람이다. 나는 요리하는 유튜브를 즐겨보고, 요리를 꽤나 즐기고 좋아한다. 여자 친구는 나를 만나기 전에는 굳이 밥을 챙겨 먹기보다 대강 빵으로 끼니를 때우던 사람이다. 나는 집을 꾸미거나, 가꾸는데 큰 관심도 재능도 없어 여자 친구에게 집 꾸미기 관련해서는 모든 것을 맡기고자 한다. 다만, 여자 친구는 주방용품에 선정 및 구매에 있어서는 내게 일임했다.


 결국 집안일을 할 때도, 내가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요리할 때는 내가 헤드 셰프를 맡고 여자 친구가 수셰프를 맡는다. 청소 및 정리정돈은 여자 친구가 메인을, 내가 보조를 맡는다. 서로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기 때문에 불만이 생길 일도 없거니와 이과적 표현으로는 효율적인 측면에서도 훨씬 도움이 된다.

 집을 꾸미는 데 내가 신경을 쓰고, 꾸미려 해 봐야 어차피 백번 고민해서 선택한 제품이 여자 친구가 한 번에 꽂혀서 산 제품보다 더 나을 리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여자 친구가 여기에는 어떤 걸 놓을 거야, 저기에는 어떤 걸 놓을 거야 해도 맡긴다. (물론 가끔은 내가 '이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할까?'라는 반문으로 장바구니를 비우게도 만든다.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여자 친구에게 송구스럽다는 심심한 사과의 말을 남긴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말은 못 하겠다.)



 아무리 함께 살고 있는 우리라도, 정말 잘 맞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우리일지라도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우린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서로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다르다. 겉이든 속이든 잘났다고 , 혹은 못났다고 느끼는 것도 다 다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나 포스터 표어로도 많이 봐왔고 수많은 현자들의 가르침 속에 있었던 그 말이 내게 와 닿아 느껴지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다른 것을 존중하고 배려하기까지, 연애에 적용하기까지는 더더욱 오래 걸렸다.


 지금은 일요일 오전 여덟 시고, 나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으며 암막 커튼 너머로 여자 친구는 잠들어있다. 우린 몇 발자국 거리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지만, 동시에 다른 공간에 있다. 암막 커튼은 아주 두툼하지도, 그렇다고 팔랑거리지도 않은 두께로 두 공간을 나눠준다. 그리고는 내가 침실을 나서며 열려있는 아주 약간의 틈새로 서로가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다. 우리 사이에는 암막커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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