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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Mar 22. 2021

소소한 행복의 모멘트- BGM

 지금은 좀 덜한 편이지만, 아니 이제는 조금이나마 깨달은 바가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퇴사를 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행복에 대해서 굉장히 집착했었다. 행복에 관한 책을 사서 읽고, 유튜브에 행복에 관한 강의를 찾아보는 등 말 그대로 행복을 찾아 헤매었었다. 그럴 때마다 거의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행복은 큰 한 방의 '스트레이트'에서 오는 게 아니라, 소소하고 자주 던지는 '잽'에서 오는 것이라 했다. 학교에서 도덕 시간에 배운 내용들처럼, 머리로는 '그렇지, 그렇지'하면서도 실제로 와 닿는다거나 생활 속에서는 '정말 그런가'싶기도 한 내용이었다.


 지금은 행복에 대해 집착하는 것 자체가, 행복으로 가는 길에 철조망을 치는 일이라고 생각해 이제는 조금 그런 부담을 버렸다. 최근 읽은 장기하 씨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산문집을 통해 추천받게 된 'Tame Impala'라는 가수의 'Nothing That Has Happened So Far Has Been Anything We Could Control'(정말 길다) 이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모든 사람은 행복해요. 행복이 갑자기 목표가 되기 이전까지는 말이죠.' (Every man is happy until happiness is suddenly a goal.)

 행복하려는 삶은 오히려 행복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실 삶 속에 매 순간순간이 행복하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가령 오늘 점심쯤 회사에서 아주 기분 나쁜 일이 있어, 하루를 망쳤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저녁에 사랑하는 사람과 평소보다 더 맛있는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기분이 나아지자 이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에 문득 감사하다가도 다시 내일 회사 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나빠지는 오늘 나의 하루는 행복한 것인가 아닌가를 두고 보자면 오늘 하루는 행복한 하루였던가. 그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의 행복도를 수치화해 평균을 내어야 하는 것일까. 혹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눈을 감을 때 그래도 괜찮은 하루였어 한다면 행복한 하루였던 것일까.


 여하튼 서론이 길었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혹은 행복에 가까운 그 감정들은) 일상 속에서 문득 문득 마주치는 순간에 감사, 혹은 더 나아가 감탄을 느끼는 그런 '모멘트'들이다. 일반적인 반응들이 그렇듯, 이 행복이라는 감정의 아웃풋에는 어떤 종류의 인풋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평범한, 조금은 쌀쌀하고 흐린 출근길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마치고 회사로 향하는 U-Bahn(지하철)을 타고 회사를 가는데 그 날따라 본 적도 없던 카우보이 비밥의 OST를 듣고 싶어 져서 유튜브를 켜고 OST MIX를 듣기 시작했다. 왜 듣고 싶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약간은 다운된 텐션을 높이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회사 근처 역에 내릴 때쯤, 이제 하늘은 흐리다 못해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우산을 챙기지 않았기에 비를 맞으며 걷기 시작하는데 이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RAIN'이라는 곡이.


COWBOY BEBOP OST - RAIN


 좋아하던 음악인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이전에 들어 본 음악도 아닌 이 곡이 재생되는 순간 나는 그 순간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모든 상황이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연 속에서 맞아떨어졌을 때 그런 모멘트.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행복을 느꼈다.

 비가 내리고, 날은 흐려 앞에 보이는 풍경은 마치 내 눈에 흑백 필터를 껴놓은 듯 보이고, 귀에는 애절하고 어떻게 들으면 처절하기도 한 보컬의 목소리, 그리고 거친 보컬과는 반대로 너무도 성스러운 오르간 소리가 더해져 회사로 걸어가고 있는 일상 속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순간을 느꼈다. 그저 갑자기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이 순간이 감동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틱한 순간이 아니더라도, 나의 순간순간에 배경음악은 이런 모멘트를 자주 만들어준다. 일을 하다가도 지칠 때쯤 우연히 듣게 된 다이내믹 듀오의 음악이 그랬고, 유난히 하루가 힘들었던 퇴근길에 들려온 Chet baker의 음악이 그랬다. 그 짧은 순간 동안의 음악은 삶이라는 나만의 영화 속에서 BGM이 되어, 그 순간을 온전히 내가 받아들이고 감사히 여길 수 있게 했다.

 우리가 행복에 조금 더 다가가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나는 몇 가지의 답을 하더라도 그중에 음악이라는 답 하나는 꼭 포함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 또 어떤 게 필요할까. 차근차근 생각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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