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 mark Mar 06. 2021

외향적 집돌이

 나를 잘 알지 못하거나,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종종 내 혈액형을 알게 되면 하는 얘기는 "A형 아닌 줄 알았어요" 혹은 " A형 안 같아"였다.


 요즘은 혈액형보다는 MBTI 검사로 이런 꼬리표를 붙이곤 하는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사실 혈액형이든 MBTI 검사든 사람을 유형화하는 걸 그다지 맹신하지는 않는 것 같다. MBTI 유형에 대해서는 모르니 혈액형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자면 어쨌든 유형화가 되어있고 그 사실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나의 혈액형을 들었을 때 반응을 보고는 '아,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느끼고 있구나'정도는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A형이지만 A형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 그렇다면 A형 '같은' 사람의 특징은 어떤 걸 말하는 걸까. 나도 안다. 혈액형은 다 편견이고, 사람마다 모두 맞지는 않다는 걸. 하지만 어쨌든 간에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는 A형의 특징을 한 번 나열해보자.


소극적이며 주관이 뚜렷하지 못하다

소외감 느끼는 거 싫어한다

싫은 소리 잘 못함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런 것들 말고도 정말 많은 특징들이 나열되어있던데, 보면서도 근데 누구나 이런 거 아닌가 싶은 것들이 많았다. 어쨌든 가장 대표적인 A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A형은 소심하다'의 소심, 소극적이 대표적 키워드다.


 그렇다면 'A형 같지 않다'는 말은 나를 보면 소극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소리이겠구나 싶은 거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심지어 잘 알지만, 그렇다고 정말 친한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을 만날 때 나는 뭐랄까, 외향적 스위치가 켜진다. 아마 스무 살이 넘어가고 대학교를 거치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남들에게 보이는 성격이 하나하나 '무장'되어가면서 생긴 습관 같다.


 어느샌가부터 모임이 생겨서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없을 때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해나가기도 하고, 먼저 질문도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나에게는 어렸을 때의 내가 이제는 기억나지 않을 만큼 나를 소극적인 사람이나 내향적인 사람으로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쨌든 좋게 보면 다행이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보통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거다. 그 외향적 스위치를 켜는데 에너지가 든다. 예전보다는 훨씬 익숙해졌고, 사람들을 대하는 게 수월해졌지만 그래도 사람을 만나면 기를 받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에너지를 쓴다. 여자 친구도 나와 같은 스타일이다. 우리 둘을 만나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 우리 둘은 우리 둘이 집에서 같이 있을 때가 가장 편하기도 하고 가장 에너지가 생긴다.

 서로가 스위치를 켜야 할 필요성도 없고, 특히 내 입장에서는 글을 쓸 때나 다른 취미생활들을 할 때 집중하고, 다소 심각해지거나, 혹은 우울해지기도 하는 내 개인적인 모습들을 여자 친구 앞에서는 보여줘도 나라는 사람 자체로 봐주기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나가기 전까지도 귀찮고, 둘이 손을 맞잡고 심호흡을 한 번 해야 하지만 막상 나가면 또 잘 논다. 여자 친구나 나나 남들 이야기 잘 들어주는 편이고, 이야기도 못하는 편도 아니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맞장구, 리액션은 내가 생각해도 이 동네 넘버 원이다.

 그렇게 집을 돌아오면 '아 참 잘 놀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가기 싫었을까'하는 이야기들을 하지만 다음번에 다른 약속이 잡힐 때가 되면 또 나가기 싫은 데를 외치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맥이 빠진다.


 여기까지 들으면 만나기도 싫은 사람들을 억지로 만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내가 독일에 살면서 어떻게 보면 가장 만족스러운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건데. 나는 독일에 와서는 만나기 싫은 사람은 아예 만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만나기 싫어도, 술자리를 가지고 싶지 않아도 일 때문에, 서로의 관계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원하지 않는 자리에도 나가야 했었다.

 저렇게 나가기 싫어하면서도 꾸역꾸역 나가는 건, 그래도 만나면 재미있었고 이야기도 잘 통하는 경우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편한 사람들, 예를 들어 가족, 지금의 여자 친구, 내 손에 꼽는 정말 친한 친구들이 아니기에 어쨌든 에너지는 소모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 모습에 비춰보았을 때, 내가 스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아 이 사람은 어떤 성격의 사람이구나' 혹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판단은 쉽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오늘 만난 사람이 이 자리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도, 그 사람은 어쩌면 집에서 쉬는 게 훨씬 그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일지 모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취향의 소용돌이에서 길을 잃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