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넷플*스를 보는데 전에는 보지 못했던 기능이 생긴 걸 발견했다. (스마트 TV로 시청할 때만 보였던 것 같아서 찾아보니 TV 애플리케이션에만 시험 적용되었다는 것 같다.)
셔플 플레이라고, 그간 내가 시청해 온 데이터를 토대로 추천작이나, 내가 보다가 더 이상 보지 않는 시리즈 등을 랜덤으로 재생해주는 기능이라고 하는데, 새삼 '아, 전 세계적으로 나처럼 로고(BGM:두둥!)만 보면서 헤매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했다.
영상은 정말 정말 많은데 감상보다는 뭘 볼지 고르는 데 허비되는 시간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TV만 틀어놓으면 선택의 폭이 몇 개 안되다 보니 그중에서 그나마 재미있어 보이는 걸 틀어놓고 보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조금 보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꺼버리고 다른 걸 찾고, 이것도 저것도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 보지 않게 되다 보니 이제는 플레이하기가 망설여진다.
오히려 선택 폭이 너무 넓어지다 보니 문제였다. 나는 넷플*스와 *튜브 프리미엄, 디즈* 플러스 이렇게 세 가지 구독 결제를 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다. 볼 건 정말 많은데, 당장 내가 지금 볼 게 없다. 한국에 사는 형 얘기를 들어보면 왓*나 웨*브 등의 OTT 서비스를 추가로 구독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어차피 서비스가 되지 않는 독일이니 고려할 대상도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더 추가되면 외려 스트레스가 올 수준이겠다 싶었다.
얼마 전에 내가 음악을 즐겨 듣는 걸 아는 한 직장 동료가 최근에는 어떤 음악을 듣냐고 물었다. 마침 물어본 그 날 당일 꽂혀서 듣던 음악을 추천해주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최근에 내가 찾아서 듣는 음악, 즐겨 듣는 음악이 없었다. 음악이 듣고 싶을 때는 *튜브에서 음악 플레이리스트 만드는 채널들을 구독해놓고, 그렇게 만들어진 플레이리스트를 찾아들었다.
고등학교 때나 군 복무할 때 CD를 사서 여가시간이면 트랙리스트를 외울 정도로 자주 듣던 음악들은 이제 내게는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사용하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가 있긴 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음악이나 앨범들을 자주 듣곤 했는데, 요즘은 내게 너무 많은 선택권에 음악을 고르는 것도 일이라고 느껴져서 그런지 남들이 만들어놓은 플레이리스트만 듣는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고 싶은 감정이나 상태, 혹은 상황에 추가로 '플레이 리스트'라는 단어만 적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음악으로 잘 채워 넣은 플레이 리스트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첫 번째로, 리스트의 첫 곡이 내 귀를 사로잡는 곡이 아니면 넘기게 된다.
두 번째, 세 번째, 마지막 곡에 아무리 보석 같은, 내 취향의 곡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수많은 리스트들을 하나씩 모두 들어보고 플레이하지 않기 때문에 첫 곡에서 내 스타일이 아니다 싶으면 지나쳐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플레이 리스트를 틀어놓고, 모두 들어보고 판단하면 되지 않겠나'싶지만 내가 넷플*스에서 처음 5-10분 정도에 몰입이 되지 않으면 다른 영상으로 넘기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모든 곡을 듣기보다는 내 취향에 맞는 다른 곡을 찾아가게 된다.
두 번째로, 내가 마음에 드는 곡, 아티스트를 리스트에서 찾게 되어도, 나중에 듣고 싶어서 찾아볼 때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 문제는 사실 해결할 방법이 여러 가지 있고, 내 기억력의 문제에 있기도 하다. 캡처를 한다든지, 그 플레이리스트를 북마크 해둔다든지, 혹은 아티스트명을 어딘가에 메모해둔다든지. 그렇지만 문제라고 생각되는 건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내 취향의 곡을 만났다는 것의 의미가 가벼워졌다고 느껴진다. 게다가 그 음악을 들었던 리스트마저 쏟아지는 새로운 리스트들 속에서 찾기가 힘들어졌을 때는 아쉬운 감정만 남게 된다.(내가 지금 그런 감정에 휩싸여있는데, 최근에 계속 한 곡이 머리에 맴도는데 이제는 멜로디도 생각나지 않고 그 당시 내 감정만 남아있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구독하게 되는 건 결국 그 아티스트가 아닌, 그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사람이다.
처음에 몇 개의, 혹은 단 하나라도 내 마음에 드는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했을 때 이 사람이 만드는 건 앞으로도 내 취향에 맞겠지 하는 생각에 구독도 하게 되고, '좋아요'도 누르게 된다. 그런데 플레이리스트를 제작하는 사람은 온전히 나와 취향이 같은 게 아니다. 다양한 사람이 많이 들을만한, 그리고 찾을만한 음악을 선곡해야 하는데 우연히 그중 하나가 나와 맞았을 뿐인데 나는 그 사람의 선곡에 의지하여 다시 찾게 되고, 때로는 점차 추가로 내놓는 플레이리스트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 실망까지 하게 된다. 그들은 나만을 위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분명 내가 내 취향을 다시 찾으려는 노력은 순전히 나의 문제이고, 내가 충분히 해결해나갈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문제일 것이다. 다양한 미디어가 범람하는 세상 속에서도, 음악을 천천히 다시 들어보고 음미하고, 영상을 좀 더 깊게 볼 여유를 가지는 것 등의 노력이 있다면 어쩌면, 다시금 '내 취향은 이런 거야'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내 취향은 이런 거야'라고 말해야 될 필요는 없다. 가령 나는 음악 취향이 없어. '이것저것 다 듣는 편이야'라고 말해서 그게 틀린 것은 아니니까. 그게 취향인 거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씁쓸한 건 내가 느끼기엔 지금 나는 너무 많은 취향들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고 느껴진다는 것, 어쩌면 남들의 취향을 내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고,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것들에 의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옅어져버릴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 취향을 찾고, 나아가 지켜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인생에서 꽤나 비중 있게 지켜봐야 할, 혹은 싸워나갈지도 모르는 나만 아는 내 세계의 '작은 전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자기애는 우리의 견해가
비난받을 때보다도
우리의 취향이 비난받을 때
못 견디게 괴로워한다.
-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 (프랑스의 모랄리스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