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27일 차
26일 차 아침. 취리히 호스텔 체크아웃을 하고 계속 호스텔에 있었다. 아직 다 보정하지 못한 사진들을 보정해야 했다. 그리고 이미 취리히를 다 둘러보았기 때문에 시내로 꼭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었다. 오전 내내 사진 보정을 하고 점심 먹을 때쯤. 시내로 향했다. 점심 먹기 전에 성당 두 곳을 들렀다. 먼저 간 곳은 사랑의 성모 성당. 한 어린아이 말고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성당. 기도하기 너무 좋은 조건이었다. 기도를 하고 나와 트램을 타고 성 베드로 성당으로 향했다. 여기엔 사람이 많아서 기도하기에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예쁜 성당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 나와서 취리히 첫날 사람이 꽉 차서 가지 못한 식당으로 갔다. 거기에 앉아서 맥주를 너무 마시고 싶었다. 강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다 마시고 결제하려고 하는데 결제가 안 된다. 이유는 잔액 부족. 이상했다. 어플에는 잔액이 충분히 있는데 결제가 안 된다니. 여러 번 시도해도 안 돼서 직원이 현금으로 뽑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해서 아이폰 맡겨두고 현금을 인출하려 했는데 그 마저도 안 됐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카드가 안 된다고 했다. 잘 안 터지는 통신. 일단 기다려보라는 아빠. 난 급한 마음에 직원에게 호스텔에 가서 다른 카드를 갖고 오겠다고 말하고 아이폰을 식당에 맡겨두고 급하게 호스텔에 갔다 왔다.
어이가 없었다. 잔액이 있는데 결제는 안 되고 취리히 마지막 날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왕복 40분 걷고 전철 타고 해서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직원이 전화가 엄청 왔다고 한다. 다행히 결제가 되었다. 결제 후 아이폰을 돌려받아 확인하니 아빠의 부재중 통화가 거의 10건 정도. 하나 카드사에 전화해보니 원화가 안 빠져나간 거라고 했다.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돈을 넣어줬을 거고 그럼 난 굳이 호스텔에 다녀오지 않았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이성적으로 판단을 못한 내 잘못. 여행은 변수가 정말 많다. 폴란드에서 런던 가는 비행기가 취소되었었고, 파리 혁명기념일엔 데이터가 안 터져서 친구를 못 만났고, 독일에서 취리히 가는 기차는 지연 그리고 오늘 결제까지. 여행하면서 정말 다양한 변수를 겪는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이겠지.
기념품 가게에 가서 기념품을 사고 호스텔로 돌아가 짐을 챙겨 취리히 중앙역으로 갔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로 가는 야간열차에 탑승.
이 좁은 칸에 6명이 다 탔다. 내 자리는 왼쪽 중간 침대. 이 침대에 누워서 11시간 30분을 있어야 했다.
다행히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이 다 조용하고 친절해서 편하게 갔다. 내 옆 침대에 누웠던 에릭은 키가 185였는데 정말 공간이 좁아서 불편하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처음으로 키 작은 내가 마음에 들던 순간ㅎㅎ 난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잤다. 그렇게 26일 차 여행은 기차에서 마무리되었다.
27일 차 아침. 기차 안에서 시작하는 하루. 같은 칸에 류블랴나에 사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내렸다. 역에서 나가면서 어디가 좋은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호스텔에 체크인을 했다. 체크인은 24시간 가능한데 방 배정은 오후에 가능하다고 한다. 24시간 가까이 씻지 못한 나는 샤워를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다행히 샤워는 가능하다고 해서 가방에서 필요한 것들을 꺼내 공용 샤워실에서 샤워를 했다. 샤워하고 나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류블랴냐 여행 시작. 비가 내렸던 오전. 그래도 습하지 않아서 여행하기 괜찮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식당을 찾았다.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아랍 음식점이 눈에 들어와서 아랍 음식을 먹었다. 신기하게 한국 사람들은 아랍 음식 잘 못 먹는다고 하던데 난 진짜 맛있게 먹는다. 한식 생각 안 나는 것도 신기하다. 정말 난 여행 체질인가?
아랍 음식 먹고 나오니 비가 조금씩 그쳐서 류블랴나 성에 올라가 보았다. 걸어서 5분이면 올라가는 류블랴나 성. 비가 와서 그런지 성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그렇게 이쁘지는 않았다. 성에서 내려와 잠시 낮잠을 청했다. 기차에서 푹 못 자서 피곤했고 또 땀도 많이 흘려서 더 걷기가 힘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완전 엉망. 곱슬인 나는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관리하기가 불편해서 머리를 짧게 자른다. 이번 여행 오기 전 유럽에서 머리 잘라보자는 목표가 있었는데 마침 자를 시기가 왔고 타 유럽에 비해 저렴한 류블랴나에서 머리를 자르기로 마음먹었다.
호스텔에서 가장 가까운 미용실은 예약을 해야 해서 나와야 했다. 근처 미용실에 가니 그곳은 머리를 자를 수 있다고 해서 들어갔다. 중년의 여자가 친절하게 머리를 감겨주고 정성껏 머리를 잘라주었다. 가격은 23유로. 우리나라 미용실이 정말 저렴하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내 마음에 들게 머리를 잘 잘라주어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여행 와서 이런 경험을 해보다니. 너무 즐거웠다.
다시 시내로 나갔다. 머리가 마음에 드니 자신감도 생기고 기분도 좋았다. 시내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올라간 류블랴나 성. 이번에 티켓을 끊고 전망대에 올라갔다.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할인이 가능하다! 성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류블랴나는 정말 예뻤다. 내가 동화 같다는 표현을 정말 자주 쓰는데 류블랴나도 동화 같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류블랴나 성에서 내려다보는 류블랴나. JPG
성에서 내려와 저녁으로 햄버거와 맥주를 먹고 오늘을 마무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