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 풀파티에서

기회와 용기

by 여행자 빅토르

"A coward is incapable of exhibiting love; it is the prerogative of the brave" - Mahatma Gandhi

"겁쟁이는 사랑을 드러낼 능력이 없다.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특권이다" - 마하트마 간디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7월의 어느 토요일. 친구 세 명과 함께 도착한 이태원 몬드리안 호텔.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보았던 수영장에 들어서니, 가슴이 굉장히 설레었다. 온몸에 태닝크림을 발라 선베드에 누워 태닝도 하고 친구들과 물속에서 장난치고 웃으면서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되자 파티장은 더 붐볐다. 풀파티 겸 네트워킹 파티라서 새로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일하는 이태리인들, 프랑스에서 온 자매들과도 친해졌다. 풀파티가 동반되어서 그런지 일반 네트워킹 파티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더 쉽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그녀가 내 눈에 들어왔다. 핑크색 비키니, 내가 좋아하는 태닝 톤 피부와 그 피부 톤에 잘 어울리는 타투 그리고 운동으로 잘 가꾼 건강하고 섹시한 몸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자꾸만 눈길이 갔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한 남자와 같이 왔는데 연인 사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2,3번째 데이트를 하며 서로 알아가는 사이 같았다. 잠시 그 남자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둘이 부산에서 만났고, 남자가 길거리에서 그녀의 번호를 물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그 남자가 그녀에게 풀파티에 같이 가자고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그녀는 단 둘이 풀파티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다른 친구들과 같이 풀파티에 왔었던 거라고 한다.


잠시 후, 그녀와 인사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서로 이름과 국적 정도만 물었다. 그녀의 이름은 M.

멕시코에서 왔다고 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낯설지 않았다. 과거에 나를 호감 있게 보던 여자들이 가끔 지었던 바로 그 눈빛. 나는 순간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물어볼까 엄청 고민했다. 외적으로는 완벽한 내 이상형이었고, 나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봐준 그녀. 분명 나의 마음도 눈치챈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망설였다. 그녀와 함께 온 남자가 마음에 걸렸다. 만약 내가 그 남자라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와 풀파티에 왔는데(물론 단 둘이 온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남자가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기분이 상할 게 분명했다. 결국 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묻지 않았다. ‘같은 남자로서 도와주자.’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차피 난 곧 떠나니까. 괜찮아.”


풀파티가 끝난 뒤 나와 친구들은 이태원에 한 술집에 들러 술을 한 잔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갑자기 후회가 몰려왔다. ‘내가 왜 그 남자의 마음을 신경 썼을까?’, ‘어차피 오늘 보고 안 볼 사람인데, 왜 내 감정보다 타인의 기분을 먼저 생각했을까?’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이미 지나간 일. 아무리 곱씹어도 달라질 건 없었다. 그저 이렇게 생각하려 했다. “인연이 아니었을 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 여느 때처럼 일상을 보내던 중 인스타그램 알림이 떴다. 새로운 누군가가 나를 팔로우했다는 알림. 누구인지 프로필을 확인해 보니 그녀였다. 순간 너무 깜짝 놀랐다. 어떤 방법으로든 날 찾아서 먼저 팔로우를 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였다. 순간 도파민이 터지며 기분이 너무 좋았고, 지체 없이 맞팔을 한 후 곧바로 DM을 보냈다.


알고 보니, 내가 어제 풀파티에서 찍은 사진을 스토리에 올릴 때 풀파티 페이지를 태그해서 올렸고, 그 페이지가 내 스토리를 리그램 했다. 그녀는 그 풀파티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나를 찾을 수 있었던 것. 어찌 되었든 나를 먼저 팔로우했다는 것은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망설이지 않고 그녀에게 " 어제 인스타그램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너와 그 남자의 관계를 존중하고자 물어보지 않았어 "라고 보냈다. 예상대로 그녀는 "그에게 그렇게 큰 마음은 없어. 그냥 편하게 알아가는 정도야 "라고 했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가 더 확실해짐을 믿었다. 그래서 간디의 말처럼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 어제 정말 대화하고 싶었고 인스타그램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후회했어. 나를 찾아서 먼저 팔로우해 줘서 너무 고마워. 널 처음 본 순간 너가 너무 예뻤고 내 스타일이어서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었어. 데이트할래?"라고 보냈다. 그녀는 곧바로 좋다고 말했다.


(그녀와는 영어로만 이야기한다. 해당 대화에서 내가 쓴 문장 : "I really wanted to talk to you and ask your IG, but I regret so much that I couldn’t. I appreciate for finding me first and following me, i'm so happy bc of that. When I first saw you, I thought you were so beautiful and exactly my type, so I wanted to ask you out. Would you go on a date with me?” )


마음 같아선 당장 이번 주 주말에 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바빴다. 내 삶이 데이트할 시간을 쉽게 만들어주지 않아서 우리는 2주 후에 만나기로 했고, 둘 다 관심 있던 전시 '요시고 사진전'을 보러 가기로 했다.


우리는 2주 동안 매일 연락을 이어갔다. 나도 그녀도 연락이 빠른 편은 아니라 하루에 한두 번 답장하는 연락이었지만, 긴 문장들과 질문들을 주고받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와의 데이트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대와 설렘이 점점 커져만 갔다.


어떤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지, 어떤 카페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지 며칠을 고민했다. 주차 문제부터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는 동선까지 다 생각하기에 2주라는 시간은 충분했지만 기다리기에는 너무 길었다.


참 신기하다. 고작 눈인사 한 번이 전부인 사람인데 DM을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이 너무 편하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확신이 들었다. 그녀와의 첫 데이트는 무조건 성공할 것 같았다.


그렇게 2주가 지난 7월의 마지막 일요일. 데이트 전날에는 마스크팩으로 피부를 정리하고 새로 산 여름 향수와 신발도 꺼내 두었다. 마치 유치원 소풍 전날의 설렘처럼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늘도 내 기분을 아는지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마치 뭘 해도 될 것 같은 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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