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처음은
“The magic of first love is our ignorance that it can ever end.” – Benjamin Disraeli
“첫사랑의 마법은 그것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른다는 데 있다.” - 벤자민 디즈레일리
영종도 파라다이스 시티 촬영이 있던 날. 영종도로 향하는 길 위, 좋아하는 흑인 아티스트들의 R&B 음악을 들으며 운전했다. 살짝 옆을 볼 때마다 스쳐가는 하늘과 바다의 풍경이 어찌나 예쁘던지, 낯선 풍경도 아닌데, 설레는 마음이 나의 모든 감각들을 깨워 더 아름다워 보이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
파라다이스 시티 촬영을 마치고 오후 12시 50분. 그녀가 사는 용인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꿔 시티팝을 들었다. 마침 영종대교를 지나는데,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인천의 시티뷰가 참 예뻤다. 흘러나오던 시티팝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용인으로 가는 길은 은근히 멀었지만, 빨리 도착하고 싶어서 1차선으로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일까, 고속도로에서 출구를 두 번이나 놓쳐 원래 도착 예정 시간보다 20분가량 늦어졌다. 아직 초보 운전이라 네비를 보는 것이 서툴렀다. 급한 마음에 계속 1차선으로만 달리다 보니 오른편에 있는 출구를 놓치기 더 쉬웠다.
급할수록 흥분하기 쉬우니, 속도를 늦추고 심호흡을 하며 진정했다. 출구를 두 번이나 놓친 스스로가 바보 같아 화가 났지만, 그녀를 만나기 전에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아직 안 늦었잖아. 지금은 기분이 안 좋지만, 그녀 얼굴만 봐도 바로 좋아질 거야." 그렇게 혼잣말을 되뇌며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민소매 블라우스에 하얀 쇼트팬츠 그리고 하얀 운동화까지. 온통 하얀색으로 꾸며진 그녀의 모습에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마치 천사가 내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차를 가지고 나선 데이트는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다. 아직 운전한 지 오래되지 않아, 작은 실수라도 사고로 이어질까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그녀와의 대화가 너무 자연스럽고 편했던 덕분에 긴장이 금세 풀렸다. 그녀는 풀파티에서 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남성적인 스타일과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나도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You are definitely my ideal type, that i wanted to ask for your instagram but i couldn't. And that i was so grateful and happy when you followed me."
처음 한국에 언제 왔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와 같은 기초적인 질문들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연애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몇 명을 만났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사랑을 했는지.
날씨가 좋아 롯데타워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에게 서울스카이 전망대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묻자, 한 번 가본 적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야경을 보러 간 적은 없다는 그녀. "나중에 야경 보러 갈래?"라는 내 질문에 수줍게 웃으며 좋다고 답하던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반포대교를 지나기 전 드디어 서로의 나이 이야기를 했다. 내가 몇 살인지 물어보니 당연하게도 몇 살인지 맞춰보라고 했다. 솔직하게 말할까, 아니면 1~2살 낮춰서 말할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25 or 26?"
"26."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녀에게 내 나이도 맞춰보라고 했다. "28 or 29?"
그녀의 대답에 순간 빵 터졌다. 아무래도 클래식한 옷차림에 머리는 늘 왁스를 발라 스타일링을 하며, 수염도 기르니 내 나이보다 들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누구나 나를 그렇게 보기는 하지만 그녀가 너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하니 웃겼다.
왜 웃냐고 묻는 그녀에게 말했다.
"To be honest, I'm younger than you."
많이 놀란 그녀. 내가 2000년생이라고 하자 전혀 예상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타일도 그렇고 대화하는 태도가 성숙해서 당연히 오빠일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이는 상관없다고 했다. 오히려 성숙해 보이는 나의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망설임 없이 입 밖으로 꺼내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남산 3호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요즘 시대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계적으로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는 연애가 점점 늘어나는 것에 대해 나는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나는 진지한 연애를 하고 싶고, 언젠가는 결혼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많은 남자들이 자신에게 진중하게 다가오지 않았다고 했다. 대부분 가벼운 만남을 원하거나 성적인 관심만 보였다고 했다. 그 말을 하던 그녀의 표정이 순간 조금은 슬퍼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I'll always treat you seriously and gently."
그녀는 내가 가볍게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고 했다. 내 진심이 그녀에게 닿았고, 그 진심을 알아봐 준 그녀에게 많이 고마웠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그녀의 왼손 새끼손가락을 살짝 잡았다. 그녀도 싫지 않았는지, 내 손가락을 놓지 않았다.
전시장 건물에 도착해 잠시 손가락을 놓고 주차를 했다. 우리는 함께 전시장으로 올라갔다. 그라운드 시소 센트럴에서 열린 요시고 사진전 2. 티켓을 받아 입구로 들어가는데, 직원이 우리를 보며 물었다.
"한국어 설명 괜찮으세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저 한국인이에요"
순간 줄 서 있던 사람들, 직원, 나도 그리고 내 옆의 그녀까지 모두 빵 터졌다. 그녀는 누가 봐도 외국인으로 보이고, 나는 뚜렷한 이목구비와 수염 때문에 자주 외국인이나 혼혈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꽤나 익숙한 상황에서 터진 웃음이 그녀와 내 사이에 있는 벽을 더 허무는 듯했다.
웃긴 해프닝이 지나고 우리는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요시고 전시였지만, 사실 전시보다 그녀와 함께 있다는 설렘이 더 컸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그녀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팔짱을 꼈다. 이미 설레서 죽겠는데, 더 설레게 만드는 그녀. 순간 그녀의 손을 잡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팔짱 낀 그녀의 손을 자연스럽게 내려 그대로 잡았다. 그냥 잡은 게 아니었다. 서로의 손가락을 깍지 낀 채, 우리는 전시를 보기 시작했다.
보고 싶었던 전시였지만, 정작 전시에는 하나도 집중하지 못했다. 나의 모든 시선은 그녀를 향해 있었고, 나는 그녀의 머리와 손등에 입을 맞추기에 바빴다. 전시장에서 함께 셀카도 찍고, 다른 관람객에게 부탁해 우리 사진도 찍었다. 우리를 찍어주시는 분이 작은 목소리로 "여성분 너무 예쁘시다"라고 말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전시를 보고 나와서 잠시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I have to tell you something.”
그녀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Are you gay?”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져 나와 이렇게 답했다.
“Why did I kiss your head and hand if I am gay?”
서로 한바탕 웃고 난 뒤, 나는 다시 진지한 톤으로 말을 꺼냈다. 10월 마지막 날부터 세계여행을 간다고. 너와의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하는 게 너를 배려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솔직히 말한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여행 잘 다녀오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관계가 이어지는 데 아무런 지장은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말해주는 그녀를 보며 다짐했다.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을 보여주고, 우리가 더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저녁을 먹으러 용산으로 향했다. 용리단길 끝자락에 위치한 키미라는 식당을 예약해 두었다. 소개팅 성지로 유명한 곳. 특히 핑크색 식탁보로도 유명해, 나 역시도 첫 데이트이니 핑크색 식탁보를 꼭 깔아달라고 요청사항에 남겨두었다.
우리는 팀발로와 밤 퓌레 보리 리조또를 주문했다. 운전하는 나는 콜라를 그녀는 레드 와인을 마셨다. 와인을 마시지 못해서 괜찮냐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너의 입술에 묻어 있으니 괜찮아"라고 느끼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녀는 자기 옆으로 오라고 도발적인 멘트를 날렸다. 아쉽게도 식당에 우리 외에도 소개팅 중인 두 팀이 있어 옆으로 가지는 못했다.
팀발로는 소스가 정말 맛있었고, 밤 퓌레 보리 리조또는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무슨 맛인지 정의 내리기 어려운 맛이었다. 밥을 다 먹을 즈음, 에어컨 바람에 추워하는 나를 본 그녀가 춥냐고 물었다. 나는 “추우니까 밖에 나가면 나 좀 안아줘"라고 말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그녀는 잘 먹었다며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안아주며 내 왼쪽 볼에 키스했다. 나는 주저 없이 내 입술을 그녀의 입술로 다가갔다. 우리는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 신호등에서 첫 키스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