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에 들어온 너
"아무런 의미 없는 일상에 들어와 줘요, 그대와 함께하고 싶은 게 참 많은걸요"
- 죠지 〈바라봐줘요〉 中 –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입술에 나의 입술이 닿은 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수많은 걱정거리들과 무게가 가득한 삶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평안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지난 7개월을 쉴 틈 없이 달려온 나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원래는 저녁을 먹고 예쁜 카페에 가려 했지만, 시간이 애매해 일단 차에 타서 어디로 갈지 생각하기로 했다. 차 안, 그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 입술을 맞췄다.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짝 감쌀 때마다 향기로운 그녀의 샴푸향이 스며들었고, 계속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표정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녀도 내 얼굴을 감싸며 잘생겼다고, 특히 내 수염이 좋다고 말했다.
수염은 늘 내게 콤플렉스였다. 얼굴의 반을 덮는 수염은 늘 나를 노안으로 보이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마스크로 수염 자국을 가렸고, 대학교 신입생 때도 복학생이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그런 나의 수염이 이제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이자, 자신감의 원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내 수염을, 내가 이상형이라 여긴 그녀가 좋다고 말해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차 안에서 우리는 거의 한 시간을 이야기했다. 장난과 스킨십이 뒤섞인 우리의 대화는 구체적으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했던 말들과,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눴던 순간들은 선명하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8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카페에 가기엔 시간이 애매해 아쉬웠지만, 결국 그녀의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서울의 야경은 늘 보던 풍경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로맨스 영화처럼 아름다웠다. 한 손은 핸들을, 다른 한 손은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용인으로 향했다.
밤 10시, 그녀의 집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Thank you for everything today. I was so happy all day with our perfect first date."
그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우리는 다시 한번 진하게 입을 맞췄다. 그녀와 더 있고 싶었지만, 우리는 내일 출근을 해야 했다.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 진한 포옹을 나눈 뒤,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서로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사는 용인에서 내가 사는 부천까지 1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키스를 많이 해서 그런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입술이 계속 건조해 립밤을 몇 번이고 발랐다. 집에 오니 피곤했지만, 기분 좋은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아직 2025년이 5개월이나 남았지만, 2025년 최고의 날이라고 말할 수 있는 행복한 하루였다.
그다음 날부터 우리의 연락 속도는 더 빨라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Good Morning" 혹은 "Buenos Días"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퇴근 후 그녀와 통화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고, 전화할 때마다 각자의 하루와 앞으로 같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랑에 빠지면 이성적 판단이 어렵다 보니 나 역시도 쉽게 흔들렸다. 첫 데이트 후 며칠 동안 이성을 잃은 채, 여행보다 그녀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을 준비한 여행을 단 한 번의 데이트로 미루고 싶어 했던 내 모습은, 지금 돌이켜보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증거처럼 느껴진다.
첫 데이트로부터 3일 후 그녀에게 조심스레 한국어로 물었다.
"나 여행가지 말까?"
그녀는 망설임 없이 영어로 대답했다.
”No, you absolutely have to go on your trip. If you don’t go because of me, then I won’t see you. We started this relationship knowing you’d be traveling.“
그녀의 단호하고 솔직한 대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며칠 동안 잃었던 이성도 되찾은 기분이었다. 내 오랜 꿈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감사하게 여겼다. 우리는 서로의 관계를 더 천천히 정의하기로 했다. 그 대신에 서로에 대해 더 깊게 알아가기로 했다.
두 번째 데이트는 첫 데이트로부터 2주 뒤, 8월의 두 번째 토요일에 하기로 했다. 장소는 우리가 처음 마주쳤던 이태원 몬드리안 호텔. 마침 그곳에서 열리는 8월 첫 번째 풀파티가 우리의 두 번째 데이트가 되었다.
그날을 위해 2주 동안 다시 몸을 열심히 만들었다.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또 보고 싶었기에, 몸도 마음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드디어 두 번째 데이트 날, 8월의 두 번째 토요일 아침.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 드리워져,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했다. 마치 우리의 두 번째 이야기를 시험하려는 듯이.